경제는 우리 사회의 대부분 문제와 연관돼 있고 경제학적인 연구 분석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연구를 하는 대학교수나 연구원들의 논문이나 보고서는 대중들에게 소개되지 않습니다. 내용이 어렵기도 하지만 대중들에게 소개할 통로가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조선비즈는 앞으로 [경제학술 핫코너]를 통해 경제학술 논문과 보고서 등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작년 말 파리에서 극적으로 합의된 기후변화협약은 온실가스 저감(低減·낮추어 줄임)을 통한 기후변화 방지와 같은 이른바 환경 공공재(public goods)에 대한 국가 간의 구속력 있는 약속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파리협약 이전에도 탄소를 줄이자는 교토의정서가 발효됐지만, 당시에도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산업경쟁력 약화 및 소비자후생 감소를 초래할 수 있다는 국내의 정치적 반발을 극복하지 못하고 탈퇴해 결국 반쪽짜리 국제협약이 됐다. 이번 파리협약 역시 수 차례 당사국 총회를 거친 끝에야 가까스로 이해관계를 봉합했다. 비준절차가 진행 중이지만 사실은 당사국간의 동상이몽(同床異夢)으로 피상적 봉합에 불과해 구체적 액션플랜에 대해서는 향후에도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은 불안한 상태라 할 수 있다.

필자도 기후변화 방지를 목적으로 한 배출권거래제, 탄소세 도입 및 운영방안에 대해 토론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장 먼저 받는 반박이 ‘왜 다른 나라들은 가만히 있는데 먼저 나서서 국익을 깎아내리는 규제를 도입하냐’는 주장이다. 사실 전반적인 산업구조 재편까지 생각해야 이러한 규제도 정당화될 수 있기에, 기존 탄소집약적 산업계를 대상으로 ‘다른 일 찾아보시라’며 무책임한 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중국이나 미국이 앞장서서 부담을 져야 실질적인 기후변화도 막을 수 있고 우리와 같은 중견국가들도 부담도 덜 수 있는데, 실제로는 대국들이 한발 빼는 상황이니 우리나라가 앞장서 봐야 혼자 지구를 살릴 수도 없고 국가경쟁력만 뒤쳐진다는 반박이다.

◆ 왜 기후변화 문제를 논의할 자발적 국제협약 기구는 만들어지지 않을까

윌리엄 노드하우스(William Nordhaus)는 이러한 온실가스 절감과 같은 공공목적의 달성을 위한 국제협약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는가에 대해 일종의 클럽(Club) 방식을 제안한다.

사실 국제적으로 이미 수많은 클럽 방식의 국제협약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국가를 포함하고 가입에 강제성이 부과된 이른바 하향식(top-down) 방식의 클럽으로 국제연합(UN), 국제통화기금(IMF), 국제무역기구(WTO) 혹은 이번에 합의된 파리협약 등이 있다. 또한 얼마 전 중국 주도로 설립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환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같은 지역기반 국제금융 혹은 무역기구는 특정 국가들이 배타적인 국익을 보유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만든 상향식(Bottom-up) 클럽이다. 현재 기후변화협약의 가장 큰 문제는 참여의 자발성을 이끌어내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에서, 국가 간의 참여를 유도해 낸 상향식 클럽이 기후변화문제에 있어서는 왜 성립이 안되는지에 대해 먼저 생각해볼 수 있다.

노드하우스(2015)는 그 원인으로 ‘작은 상향식 연합의 역설’(Small Coalition Paradox)을 들어 설명한다. 클럽에 가입하는 국가가 늘어날수록 이들이 책임지게 되는 감축대상 오염물질의 양은 증가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최적 탄소가격은 증가하게 된다. 따라서 자신 외에 다른 국가들이 이미 많이 가입해있는 클럽이라면, 차라리 클럽에 가입해 부담스러운 탄소가격을 감당하기 보다는 탈퇴해 부담은 지지 않고 혜택만 향유하는 무임승차자가 되기를 선호하는 것이다. 국가의 크기에 대한 가정에 따라 결과는 다르지만, 이러한 탈퇴행렬은 대략 클럽에 비슷한 사이즈의 2개의 국가가 남을 때까지 계속된다. 경제학적으론 비교해야할 클럽을 조합하는 경우의 수는 매우 많으나, 단순히 말하자면 게임이론에서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상황이나 다를 바 없다.

따라서 결국 하향식의 클럽으로 가야하는데, 이를 강제하기 위해서 두가지 방식이 제기된다. 첫째로, 기후변화협약이라는 클럽에 동참하지 않는 국가에 대해 물품별 탄소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배출권거래제 틀에서는 수입되는 품목이 생산되기까지 유발된 온실가스 양에 상응하는 배출권을 구매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기존에 탄소 규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역차별 받는 국내 기업을 지원하고자 논의했던 국경세(Border Adjustment Tax)가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는 물품별 탄소발생 기여도를 일일이 계산해야하고 이 역시 국가마다 다를 수 있는 등 실제 실행에 있어서 난관이 많다. 목적 역시 클럽 내의 국가들이 산업별로 국가경쟁력을 잃지 않게 한다던가, 혹은 탄소배출이 장소만 바뀌어 이뤄지는 탄소누출(carbon leakage)을 막는 수준에 그치는 등 협소하고 방어적이다.

다른 하나는 비참여 국가들의 모든 제품에 대해 정률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원리는 간단한 게임이론을 차용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클럽 내의 국가들 사이에서 관세 부과는 안 되며, 클럽 밖의 국가가 클럽 내로 수출할 때만 추가적인 관세가 부과된다. 또한 클럽 밖의 국가가 클럽 내의 국가에 대해 보복성 관세부과는 없다고 가정된다.

목적은 다름 아닌 비참여 국가들의 클럽 참여 자체를 독려하는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국가별 무역현황, 온실가스 방출정도 등을 이용하여 이러한 정률관세가 개별국가의 온실가스 방출이 다른 국가로의 외부효과 역시 내부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래 그림에서 붉은지표는 온실가스 방출이 다른 국가에 미치는 피해(외부효과), 푸른지표는 클럽에 가입했을 경우 이득, 녹색지표는 클럽에서 이탈해있을 경우 비용이다. 내수시장이 크지만 개발도상국인 중국을 제외하고는, 국가별로 대부분 외부효과와 클럽에서 이탈할 때 부담하게 될 정률관세에서의 피해가 비슷한 순위를 보인다. 즉, 해당 국가가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이 클수록 클럽에 참여할 유인이 커지는 것이다.

Nordhaus, William. 2015. "Climate Clubs: Overcoming Free-Riding in International Climate Policy." American Economic Review, 105(4): 1339-70.

이러한 정률관세의 정당성이 인정되어 정책에 적용될 경우 국가들의 참여도 상승은 또한 아래와 같이 시뮬레이션 된다. 클럽 내에서 강제되는 탄소가격이 증가할수록 전반적으로 국가들이 부담을 느끼면서 참여도가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비참여자에 대해 적용되는 패널티성 정률관세가 높아질수록 클럽으로의 참여율 자체는 상승한다. 주목할 점은 정률관세가 0%, 즉 클럽 비참여자에 대한 응징이 없을 경우에는, 아무리 클럽 내에서 적용되는 탄소가격이 낮다 하더라도 항상 참여율이 0에 가깝다는 점이다. 즉 참여하지 않는 국가에 대한 패널티가 없을 현재 상황에서는 아무리 파리협약이 느슨하게 운영된다 하더라도 참여 국가들의 이탈을 막기는 역부족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Nordhaus, William. 2015. "Climate Clubs: Overcoming Free-Riding in International Climate Policy." American Economic Review, 105(4): 1339-70.

◆ 기후변화협약의 성공조건, 자발적 국제협약과 정률관세 부과

기후변화를 방지하기 위한 온실가스 감축이 아니더라도, 이와 유사한 국가들을 망라한 전 지구적인 공공목적의 국가 간 합의에 있어서는 전술한 하향식 클럽의 결성과 정률관세 부과 없이는 안정적인 클럽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우리가 배출권거래제 등 탄소가격제(carbon pricing)을 도입할 당시에는 기업들의 국제경쟁력 약화 혹은 산업공동화 등의 부작용보다는 규제를 통한 친환경산업 부문에서의 선점효과가 클 수 있다는 점을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지금 이 순간 우리나라를 떠받들고 있는 전통적인 산업군 역시 도외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정부의 ‘규제’와 ‘지원’ 외에도 이러한 외교적 측면에서의 판짜기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환경이라는 공공재의 특성상 게임의 룰을 제대로 설정하지 않고는 이제껏 그랬듯 언제나 다른 국가들의 규제 노력에 묻어가려는 무임승차자들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에선 무작정 탄소집약적 전통산업에 집착해서 신시장의 기회를 놓칠 수도 없기 때문에, 산업구조의 전환을 꾀함에 있어서도 이러한 무역을 활용한 경쟁력 손실방지 역시 카드로 들고 있을 필요가 있다.

기왕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며 보란 듯이 고통을 분담하고 있으니 이른바 녹색리더십을 발휘하면서 국제사회에 이러한 하향식 클럽을 선제적으로 제의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한국이 무역집약도가 매우 높고 이미 탄소 규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클럽을 주도적으로 이끌기에도 적임자이고 국익 면에서도 딱히 잃을 것도 없을 것 같다. 기존 산업도 보호해가면서 녹색리더십을 발휘해야 국내에서도 정치적으로 지속가능한 정책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