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초과학연구원(IBS)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우주의 4분의 1이 넘는 26.8%를 채우고 있지만 아직 존재를 확인하지 못한 암흑물질 연구를 공동으로 진행한다. 이르면 3년 내에 암흑물질 후보 중 하나인 ‘액시온’ 검출 여부를 판가름하는 데 유의미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0일부터 24일까지 닷새간 제주 서귀포 스위트호텔에서 열리는 12회 ‘파트라스 국제학술대회’에서 야니스 세메르치디스 IBS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장은 “CERN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암흑물질의 유력한 후보로 추정되는 액시온 검출 연구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CERN은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에 있는 거대강입자가속기(LHC) 실험 장치를 통해 2012년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의 존재를 입증한 것으로 유명하다.

암흑물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금의 우주 생성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 암흑물질 검출...우주 생성 초기를 본다

물리학자들은 지구를 비롯해 우주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물질은 전체 우주에서 약 4.4%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27%는 암흑물질, 나머지 68.6%는 암흑에너지로 채워져 있다.

암흑물질은 다른 입자나 전자기력 등과 상호작용하지 않고 오직 중력에 의해서만 상호작용하며 빛이 나오지 않는 물질로 알려졌다. 암흑에너지는 우주가 팽창하도록 만드는 힘을 말하는 데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는 아직 존재가 입증되지 않고 이론으로만 설명된다. ‘암흑(dark)’이라는 말이 앞에 붙여진 이유다.

파트라스 학회에 참석한 악셀 린드너 독일전자가속기연구소(DESY) 단장은 “우주는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회전하기 때문에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은 어느 순간 튕겨 나가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현재 우리가 있는 공간, 또는 우주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며 이를 물리학자들은 암흑물질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야니스 세메르치디스 단장(사진)은 "우리가 사는 태양계는 빛의 속도의 0.1%에 해당하는 초속 약 200km라는 엄청난 속도로 우리은하 중심을 돌고 있는데 우리은하 중심의 중력만으로는 태양계를 우리은하 안에 붙들어 맬 수 없다"며 "태양계가 은하 밖으로 날아가지 않으려면 우리를 잡아 주는 또 다른 존재가 필요한데, 우주 공간을 채우고 있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물질을 '암흑물질(Dark Matter)'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IBS와 CERN이 검출해 내려는 암흑물질 ‘액시온’은 ‘윔프’와 함께 가장 유력한 암흑물질 후보 중 하나다. 김진의 경희대학교 물리학과 석좌교수가 원자핵 내의 양성자와 중성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론상의 입자다. 김 교수는 이를 다른 물질과 반응하지 않는 특성을 지녔다고 처음 주장하며 액시온이 암흑물질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과학자들은 암흑물질의 존재가 확인되면 우주 생성 초기 ‘빅뱅’에서 발생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IBS-CERN 공동 연구로 ‘액시온’ 검출 성공할까

암흑물질을 연구하던 물리학자들은 ‘약하게 상호작용한다(weekly interacting)’는 암흑물질의 특성을 따와 ‘윔프(WIMPs)’와 ‘위스프(WISPs)’라는 이름을 붙였다. 윔프는 약하게 상호작용하는 무거운 입자(Weekly Interacting Massive Particles), 위스프는 약하게 상호작용하는 가벼운 입자(Weekly Interacting sub-EV Particles)를 의미한다. 액시온은 위스프에 속하는 대표 입자로 강한 자기장과 만나면 광자(빛을 내는 입자)로 변할 것으로 추정된다.

CERN과 IBS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액시온을 검출한다. CERN은 액시온을 검출하기 위해 2000년부터 진행해온 프로젝트인 ‘CAST(CERN Axion Solar Telescope)’를 통해 태양에서 방출되는 액시온을 탐색한다. IBS의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은 CAST와는 달리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액시온을 측정하기로 했다.

IBS 액시온 연구단이 KAIST 문지 캠퍼스에 구축 중인 냉동기 내부 모습.

CERN의 CAST 프로젝트는 태양에서 방출되는 액시온이 자기장과 상호작용하며 변할 때 신호변화를 탐색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열이 방출될 수 있기 때문에 열을 줄이는 극저온 기술이 필요하다. 한국의 IBS 연구진은 CAST 프로젝트에 극저온 기술과 신호 처리 기술을 제공한다. CERN과 IBS 공동 연구진은 6월 초부터 LHC에 있는 CAST 프로젝트를 위한 실험 장치 제작에 돌입했으며 이르면 8월부터 가동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IBS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액시온을 검출하기 위한 장비를 KAIST 문지 캠퍼스에 구축 중이다. 장비는 극저온(절대온도 약 –273) 환경을 유지할 냉동기 안에 자기장을 발생시킬 자석과 마이크로파 공진기(금속으로 만들어진 속이 빈 구조물 냉동기)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현재 이같은 장비 2개를 구축했으며 올해 말까지 4개를 추가로 만든다.

액시온 연구단은 우선 장비 내의 자석에서 약 35~40테슬라의 자기장을 발생시킨다. 그런 뒤 마이크로파 공진기를 통해 라디오 채널을 조절하듯 자기장의 파장을 조절하다 보면 액시온이 갖고 있는 고유의 진동수와 자기장의 진동수가 맞아떨어져 빛이 발생하는 데 이 때 찰나의 신호 데이터를 검출하는 것이다.

세메르치디스 단장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실험을 시작할 예정”이라며 “2018년 이후 액시온 검출이 가능한 정도의 데이터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