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저가항공사(Low Cost Carrierr·LCC) 이스타항공은 최근 항공업계에 유례 없던 방식으로 신입조종사 교육비를 선지급받아 논란에 휩싸여있다.

파일럿의 꿈을 목전에 둔 파릇파릇한 새내기 조종사에게 오리엔테이션 첫날 ‘1인당 8000만원을 계좌로 송금해야 최종 합격’이라고 통보했다. 사전에 공지된 내용은 ‘교육비는 자비 부담이 원칙’이라는 말 뿐이었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조종사들은 회사의 통보를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자신들이 낸 돈이 온전히 교육비로 쓰이지 않았다는 건 참을 수 없었다. 교육 최종단계에서 탈락한 동기생이 회사에서 조용히 5100만원을 돌려받았기 때문이다.

‘똑같은 교육 과정을 밟았는데 어떻게 8000만원 중 5100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었을까?’ 의구심을 품은 조종사들은 회사에 교육비 사용 내역을 보여달라고 요청했고, 회사의 불투명한 자금 집행에 폭발했다. 2013년 10월 입사했던 동기생 14명 중 9명은 결국 사표를 던지고 이스타항공과 교육비 반환 소송을 하고 있다. 재판을 맡은 전주지법 군산지원은 지난 5월 27일 첫 재판을 열었다.

이스타항공과 교육비 반환 소송을 하고 있는 전직 이스타항공 조종사 3명이 9일 오후 기자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소송 중인 조종사들은 모두 국내 다른 항공사에서 일하고 있다. 조종사 3명을 최근 김포공항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평상복 차림을 한 이들은 공항에서 마주치는 각 잡힌 조종사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단호하지만 신중한 말투에선 그동안 고민의 흔적도 엿보였다.

-공고에는 ‘교육비는 자비부담한다’는 내용이 있다. 응시하는 입장에서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나.

“일반적으로 국내 LCC의 경우 사업용 면장을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신입 조종사를 채용한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은 애초 사업용 면장도 없는 초보를 뽑아 기초 교육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있지만 LCC는 그렇지 않다. 조종사가 부기장 역할을 하려면 예컨대 B737이나 A320 기종에 대한 한정 자격이라는 것을 사업용 면장에 추가해야한다. 이 과정을 거치고 여객용 면장을 취득해서 최종적으로 부기장이 되기까지 들어가는 비용이라고 생각했다.”

-첫 오리엔테이션에서 교육비 선지급하라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전혀 사전 언급이 없었나.

“조종사 지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들리는 얘기가 있다. 8000만원을 미리 받는 다는 소문도 있었고, 5000만원, 3000만원까지. 심지어 교육비가 없다는 말도 돌았다. 그래서 미리 회사에 문의를 했는데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입사한 뒤 오리엔테이션 처음 참석한 날 이스타항공 직원이 그제서야 말했다. 교육비 8000만원을 선납해야 입사 확정되는 거라고 했다. 처음에 14명이 그런 방식으로 입사했다.”

-비용 지급 방식은 어땠나.

“처음 3000만원을 내고, 두달 뒤에 3000만원, 또 두달 뒤에 2000만원을 냈다. 현금을 회사 계좌에 직접 넣어줘야 한다. 보통 항공사들은 교육비를 따로 받지 않는 대신 근속계약을 요구한다. 훈련에 탈락하거나 근속기간을 못 채우면 교육비용을 물어줘야 한다는 것에 서명하고 그 금액으로 보증보험을 가입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조종사가 돈 낼 일은 거의 없을 듯하다.”

-돈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지방에 작은 아파트가 하나 있었는데 교육비 때문에 팔았다. 조종사 중에서 원래 잘사는 사람도 있지만, 7~8명은 빚내서 마련했다. 현금을 그렇게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나. 돈을 빌려주면서 나중에 월급으로 갚으라는 것도 아니다. 현금을 미리 달라고 하니깐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그 때 조종사들 분위기도 기억난다. 보통 조종사 꿈을 가진 사람들은 어차피 채용 공고 나올 때 입사 지원을 한다. 시험 때마다 마주치게 된다. 탈락한 사람은 서로 위로하고, 붙은 사람은 함께 기뻐한다. 일단 붙었는데도 다들 한숨을 쉬었다. 돈은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고민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이스타항공 여객기

-교육 기간은 얼마나 되나.

“회사에선 6~7개월 이내 교육을 완료한다고 했는데, 교육훈련이 가장 빠른 조는 6개월 안에 교육이 끝났고, 가장 늦은 사람은 1년을 넘겼다.”

-같이 입사했는데 왜 이스타항공은 교육 기간이 다른지.

“이스타항공은 전문 학술교관이 2명인데, 그 중에서 1명은 B737기종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사실상 교관 1명이 훈련을 진행해야 한다. 그래서 같은 날 입사했지만, 2명이 한 조가 돼 훈련하는 순서를 정했다. 먼저 훈련 받는 사람은 빨리 끝나고 다른 사람은 교육장에서 대기한다.”

-같은 날 입사했는데, 부기장되는 시점이 달라지면 급여에 차이가 생기지 않나.

“당연히 다르다. 부기장이 되면 부기장 월급을 받는다. 그러니 동기생들도 서로 먼저 훈련을 받고 싶다. 이 부분도 어느 정도 불만은 있었지만, 이미 B737 자격을 가진 입사동기가 4명이었다. 이들은 먼저 훈련받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해 받아들였고, 나머지 순서는 그냥 동기생들끼리 정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이스타항공 홈페이지 안 채용공고 페이지

이스타항공은 선지급받은 조종사 교육비에 대한 부당이득 논란이 일자 일부 매체를 통해 “훈련비용은 원래 본인 부담이고, 소송 중인 조종사들은 계약상의 의무 근무기간 2년을 채우지 않았으니 돌려 줄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실제 소송 중인 조종사들은 2015년 2~5월 퇴사했다.

조종사들은 이스타항공이 뒤늦게 제시한 ‘교육훈련 동의서’를 보여주며 말을 이어갔다.

-교육비에 문제가 있다고 느낀 건 언제인가?

“동기생 한 명이 부기장 임명을 앞둔 최종 심사에서 떨어졌다. 처음엔 조용히 넘어가서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선지급한 교육비 8000만원 중 5100만원을 돌려받았더라. 어떻게 이 많은 돈을 돌려 줄 수 있는 건지 납득이 안됐다. 처음부터 같은 교육을 받았고, 부기장 심사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탈락한 건데 이상했다.

조종사들 요청으로 회사에서 밝힌 교육비 내역을 보니 교육과 무관한 온갖 비용이 다 들어 있었다. 인테리어 비용이 교육비에 포함돼있고, 심지어 부기장이 되고 나서 일한 대가로 받은 급여까지 교육비로 포함시켰다. 유니폼 비용도 있었다. 이걸 어떻게 납득할 수 있단 말인가.”

-정확히 언제 퇴사했나.

“2015년 2월에 회사를 나왔다.”

-결정적인 퇴사 이유가 있는지.

“회사가 해도해도 너무 부당했다. 회사가 2014년 8월에 탈락자한테 5100만원을 돌려주고 나서 갑자기 다음달에 조종사들을 불러모아 놓고 ‘교육훈련 동의서’라는 걸 작성하게 했다. 동의서를 보니 일체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었다.”

-교육비 반환 얘기도 있었나.

“각 교육 단계에서 탈락할 경우 반환비용도 새로 정해놨다. 최종 심사에서 떨어진 사람한테 5100만원 돌려줬는데, 동의서에는 그 과정에서 떨어지면 2000만원을 돌려준다고 돼있었다. 선지급 받은 교육비를 반환해주기 싫다는 뜻이었다. 동의서 작성 시점은 입사 때인 2013년 10월로 쓰게 했다.”

첫 재판에선 이스타항공이 최종 단계 탈락자에게 교육비 5100만원을 반환한 부분이 주요 쟁점으로 부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타항공은 사전 공지한 ‘교육비 자비 부담 원칙’과 달리 거액을 돌려준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야 논란에서 벗어날 전망이다.

조종사들은 “잘못된 건 바로잡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커피숍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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