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취와 휴지 조각이 황량하게 날리는 쓰레기 마을, 모카탐
거대한 바위 밑, 천 명의 콥트교도가 모이는 비밀 교회

버려진 모든 것들이 끊임없이 실려 들어오는 골목. 그러나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실려 나가는 탄생의 입구일지도 모른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에서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장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여우는 어떻게 알았을까? 바람이 많이 불어 모든 것이 흔들리던 카이로(Cairo)의 어느 외곽, 깊숙한 골목을 빠져 나오면서, 잠시 내가 알지 못하던 아름다운 행성을 다녀온 것 같았다.

향기로운 장미와 똑똑한 여우와 착한 왕자가 사는 곳. 귀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마음으로 배워가던 어린 왕자의 행성과 쓰레기 냄새 가득한 카이로의 골목과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여우의 말처럼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두 행성 간의 간격은 눈으로는 가늠할 수 없다. 오로지 마음으로 만나야 하는 곳. 먼지에 휩싸인 깊은 골목. 쓰레기가 켜켜이 쌓인 좁은 골목. 세상에서 가장 낮고 아름다운 행성이 그 골목에 있었다.

◆ 피라미드와 파라오보다 불가사의한 쓰레기 마을

이집트 비자가 3일이 남았을 즈음, 더 이상 갈 곳이 없으면 모카탐(Mokattam) 쓰레기 마을을 다녀오는 게 어떻겠냐고 주인은 말했다. "카이로의 모든 쓰레기가 모이는 곳인데 그곳에는 아주 오래된 콥트교(Coptic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주교제의 기독교 교파, 참고로 이집트는 이슬람 90% 콥틱교 10%)의 동굴교회가 있지" 마치 은밀하고도 귀한 것을 몰래 발설하는 눈빛으로 숙소주인은 말했다.

콥트교의 동굴교회. 이 은밀한 곳에서 그들은 신께 어떤 기도를 할까?

쓰레기마을에 있는 콥트교의 동굴교회. 이 문장에서 말하고자하는 것은 분명 콥트교의 은밀한 동굴교회를 설명하는 것이겠지만, 쓰레기마을이라는데 더 끌리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한때 이슬람의 박해를 받은 콥틱교도들이 뿌리내린 은신처. 더군다나 그곳이 쓰레기 더미라니. 아무래도 다수에게서 밀려난 자들의 외로운 삶의 풍경이 궁금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었다. 전날부터 타흐릴광장 시위대들의 불만이 폭풍처럼 날아올라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 분위기였다. 불안 속에서 이른 아침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는 낯선 길을 찾듯 몇 번이나 같은 골목을 맴돌다가 겨우 도시의 외곽에서 쓰레기 마을을 찾아냈다.

그렇게 택시는 바람에 떠밀리듯 굴러 와서 먼지 날리는 골목 어귀에 나를 부려 놓고, 다시 검은 봉지 날리듯 부웅 사라졌다. 거리는 황량했고, 난데없이 골목이 시작되었다. 악취와 바람에 날리는 휴지조각이 풍기는 기이한 분위기 때문에 선뜻 골목을 들어서지 못한다.

골목 입구에는 빗물이 고여 있다. 작은 트럭이 빗물 안에 고인 하늘을 흩어 놓고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심란한 풍경에 망설임이 일었다. 골목 입구에서 잠시 마음을 가다듬는 동안에도 쓰레기들이 분주히 골목 안으로 실려 들어갔다.

청년들이 몰고 가던 당나귀수레는 마치 마을버스처럼 동네 이곳저곳으로 나를 데려다 줬다.

쓰레기는 때로는 당나귀의 등에 얹혀, 때로는 금방 주저앉을 것 같은 낡은 트럭에 얹혀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악취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삶은 화사하게 피어난다

동굴교회 쪽으로 먼저 발걸음을 옮긴다. 교회로 가는 좁은 비탈 골목에도 형형색색의 쓰레기더미들은 꽃처럼 알록달록 집 안 밖과 골목을 가득 메운다. 그 끝에 동굴교회가 은밀히 숨어있었다. 거대한 바위 밑으로 이어지는 예배당은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예배를 볼 수 있을 만큼 규모가 컸다.

경사진 예배당 안으로 기다란 의자들이 도미노처럼 아래로 아래로 이어진다. 이슬람에게 쫓겨난 콥트교도들은 이곳에 한데 모였다. 그들의 절실한 기도가 낮고 서늘한 동굴의 온도를 높였으리라. 동굴교회는 아직도 그때의 간절함이 식지 않은 듯 온화하다. 그리고 여전히 변함없는 간절함이 매일 이어지고 있다. 어쩌면 그곳은 조금씩 높아질 일만 남았다 싶었다. 깊숙한 예배당을 빠져나오니 조금은 환한 하늘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의 고단한 일상이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골목, 버려진 것들이 새롭게 태어나는 곳이다.

당나귀를 몰던 청년을 만난 것은 동굴교회를 빠져나와 길을 잘못 들어선 지점에서였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비슷한 풍경. 쓰레기더미가 쌓인 집들이 펼쳐져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때 두리번거리며 방향을 살피는 나에게 한 청년이 손을 내밀었다.

청년은 내게 당나귀가 끄는 빈 수레 한쪽을 가리켰다. 환하게 미소 지으며. 그렇게 갑자기 빈 수레에 올라탔던 것만으로 우리는 살가운 동행이 되었다. 삐거덕거리며 지나가는 트럭보다 이 수레가 훨씬 좋다며 엄지를 치켜 올려주자 미소는 함박웃음이 되었다.

동네 구석구석을 돌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소개하고, 그들에게 나를 자랑하던 얼굴이 어린아이처럼 맑았다.
튼튼한 신발을 신은 내 발보다 그의 맨발이, 카메라를 쥔 내 손보다 당나귀의 고삐를 잡은 그의 손이 더 고귀하게 느껴졌다. 무엇 보다 낯선 이에게 낡은 자리를 내어준 그 마음이 어찌나 곱던지.

당나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제 갈 길을 잘 찾아갔고, 쓰레기 더미 위에서도 푸른 하늘은 시리도록 파랬다. 여전히 바람은 쓰레기 냄새를 몰고 다녔지만, 그 냄새의 기억 보다 그날 느꼈던 사람의 온기가 더 생생하다. 열악한 풍경 속에서도 찬란하게 빛나는 그 마음을 봤으니 나도 더 순하고 따뜻하게 살아야겠다.

집 안에도 옥상에도 골목에도 날마다 가득 채워지는 쓰레기들이 묘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쓰다 버린 도시의 분비물이 그곳에서 날마다 새롭게 태어난다. 그 난지도에서도 어린왕자의 장미꽃은 자란다. 썩어가는 악취 속에서 오롯하게 돋아나는 인간의 체취. "안녕!" 청년은 헤어지면서 왼손을 들어 힘차게 흔들어 주었다. 내 마음이 휴지처럼 갈 곳 잃고 이리 저리 날리는 날엔, 모카탐의 광경을 떠올린다. 나는 나에게 여우의 말을 건넨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PS : 카이로는...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는 피라미드나 스핑크스보다 파라오 시대부터 발굴 된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에서 열중하는 사람이 더 많다. 단, 박물관의 시설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교통이 복잡한 카이로는 시내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여 움직이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박물관이나 유적지를 둘러 봤다면 칸 엘 카릴리(Khan el-khalili) 전통 시장에서 시간을 보내도 유용하다. 이 전통시장은 시장 이상의 기능을 하고 있는데, 시장 근처로 대학과 유명 이슬람사원들이 가까이 있어 그들의 생활과 문화를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 사원을 방문할 때에는 단정한 옷차림과 정숙함은 기본이다. 혹 모카탐을 방문하고 싶다면 혼자서 대중교통을 타는 것 보다 동행을 구해서 택시를 타고 가는 방법을 권하고 싶다. 동굴교회는 쓰레기마을에서 언덕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변종모는 광고대행사 아트디렉터였다가 오래 여행자로 살고 있다. 지금도 여행자이며 미래에도 여행자일 것이다. 누구나 태어나서 한 번은 떠나게 될 것이니 우리는 모두 여행자인 셈이므로. 배부르지 않아도 행복했던 날들을 기억한다. 길 위에서 나누었던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들을 생각하며, 그날처럼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짝사랑도 병이다',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