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인터넷 기업 구글이 한국 정부가 제작한 지도 데이터의 해외 반출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면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구글은 "한국에서 지도 관련 서비스를 키우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서버가 있는 해외로 반출해야 한다"고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정부 측은 "국가 안보 시설에 대한 위치 정보를 통째로 해외에 반출할 순 없지 않으냐"고 맞서고 있다.
구글은 지난 1일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에 국내 지도 데이터 반출 신청서를 제출했다. 국토지리정보원은 한국의 지도 데이터를 제작·관리하는 곳이다. 구글은 2007년 1월 국가정보원에 지도 데이터 반출을 요구했다가 거부당한 이후 9년 만에 재(再)시도하는 것이다. 정부는 8월 25일까지 반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정부는 구글이 국가 안보 시설에 대한 정보를 삭제하거나, 구글의 개인정보·국가 안보 관련 정보 사용과 관련해 다른 인터넷 기업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아야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네이버·카카오·SK플래닛 같은 기업은 모두 지도 정보를 처리하는 데 관리 감독을 받는다"며 "구글에만 이런 조건 없이 데이터를 쓰는 특혜를 제공할 순 없다"고 말했다.
◇"한국서만 제한한다"는 구글 vs "지킬 건 지키자"는 정부
구글이 지도 데이터를 확보하려는 이유는 한국에서 구글 맵(지도) 관련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현재 해외에서는 구글 맵을 이용한 길 안내(내비게이션) 서비스부터 위치 기반 광고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구글이 미래 성장 동력으로 꼽는 자율주행자동차(무인차) 개발이나 자동차용 운영체제(OS)에서도 전 세계의 지도 데이터는 필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서비스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게 구글의 주장이다. 현재 사용 중인 지도 데이터는 정확도가 떨어지는데다 지역별 도로·상점 정보 등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구글은 "네이버 등 한국 인터넷 기업이 사용하는 상세지도를 구글에도 제공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이런 요구를 그대로 들어줄 순 없다는 입장이다. 국토지리정보원 최병남 원장은 "구글에서 이미 제공하고 있는 인공위성 사진을 보면 청와대나 군사시설 같은 국가 안보 시설 지역이 모두 노출돼 있다"며 "인공위성 사진 정보와 대축척 지도를 결합하면 안보 시설의 정확한 위치와 모습이 인터넷에 무방비로 노출되는데 이런 문제를 방치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현재 네이버·카카오·SK플래닛 등에서는 안보 시설을 지도에서 노출하지 않거나 사진을 삭제했다.
◇IT업계, "한국 지도 쓰려면, 한국 정부의 관리 받아야"
이 논란에 대해 IT업계에서는 구글이 지도 데이터를 저장하고 서비스하는 서버(데이터 저장·처리 장치)를 한국으로 옮겨오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국내 IT기업의 관계자는 "구글이 서버만 한국으로 옮기면 데이터를 국외로 반출할 필요가 없다"며 "한국의 다른 기업들처럼 정부의 관리 감독을 받으며 데이터를 쓰면 된다"고 말했다. 현재 구글은 한국에선 데이터센터와 서버를 운영하지 않는다. 구글의 데이터 센터와 서버는 미국·싱가포르·대만·네덜란드 등에 있다. 한국 사용자들은 인터넷망을 통해 이들 서버와 접속해 각종 서비스를 이용한다.
세금 논란도 서버 이전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재 구글은 한국에서 연간 1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한국에 납부하는 법인세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현행 세법상 한국에서 거액의 매출을 올리더라도 사업 설비, 즉 서버가 해외에 있으면 법인세를 징수할 수 없다는 맹점을 파고든 것이다.
서강대 정옥현 교수(전자공학)는 "구글이 한국에서 실질적인 영업활동을 하고 수익을 내는데도 서버가 단지 한국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관리 감독과 납세의 의무를 면하는 것은 일종의 편법"이라고 말했다.
☞지도 데이터
구글이 요구하는 1000대1 수준의 대축척 지도 데이터에는 관공서와 주요 시설은 물론, 동네 골목길까지 상세한 정보가 담겨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방대한 양의 지도 데이터를 생산·관리하며 이를 국외로 반출하기 위해서는 국토교통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