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사는 '자본시장의 파수꾼'으로 불린다. 회계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기업들은 분식회계와 같은 회계부정을 저지르기 쉽고, 시장경제는 위기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조선·해운 회사들의 회계부정 사건을 계기로 대기업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국내 회계법인들의 구조적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회계·감사 전문가들에게 감사인의 역할과 기업회계의 개선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주]

[인터뷰]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선거 출마한 최중경 전 장관

-"회계감사 보수 최저한도 설정·덤핑수임 감리 강화할 것"
-'약한 갑(甲)과 강한 을(乙)' 균형 맞춰 견제구조 만들어야
-부실감사·내부통제 책임 회계법인 대표에 물어선 안돼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사진)의 별명은 '최틀러(최중경+히틀러)'다. 별명처럼 그는 강한 소신과 특유의 카리스마로 한번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굽히지 않고 밀어붙인다.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선거에 출마한 최중경 전 장관은 회계감사 보수의 최저한도 설정, 덤핑수임에 대한 감리 강화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2003년 당시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을 맡았을 때는 원화 값이 뛰자 막대한 자금을 외환시장에 쏟아부으며 방어에 나섰다. 최틀러는 당시 외국의 외환 데스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제가 그만 뒀을 때 월스트리트에 제 기사가 대문짝 만하게 실렸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월가에서 ‘한국 재정부 장관 이름은 몰라도 최중경 이름 석 자는 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지요.”

그런 그가 오는 22일 진행되는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선거에 출마했다. 업계에선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다. 지난 3일 서울 강남의 한 중식당에서 최 전 장관을 만났다. 흰색 와이셔츠에 붉은 빛이 도는 넥타이를 맨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대학 시절 이야기부터 꺼냈다.

“대학(서울대) 3학년때 회계사 시험에 붙었어요. 재무제표에 반해서 경영학과에 갔고 또 회계사 시험까지 준비했지요.”

그는 대학 졸업 후 첫 사회생활을 삼일회계법인 회계사로 시작했다. 이후 행정고시에 붙고 나서도 회계 담당 사무관, 과장을 거치면서 회계업계와 인연을 이어갔다. 최 전 장관은 “회계산업이 위험을 맞고 있는 지금, 변화를 위한 새로운 전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선거에 출마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공인회계사 2만명 시대를 앞둔 회계업계는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해 회계사 30여명이 집단으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거래를 한 사건이 터진 데 이어 최근에는 국내 최대인 삼일회계법인의 안경태 회장이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현 유수홀딩스 회장)에게 미공개 정보를 흘려 자율협약 신청을 앞둔 한진해운 주식을 처분토록 한 혐의로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최 전 장관은 “회계업계의 모든 문제는 낮은 보수에서 시작된다"며 “회계서비스의 대가가 적정수준에서 결정되고, 보수를 주고 받는 관계에서 비롯되는 ‘을의 지위'를 벗어날 수 있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회계사가 기업으로부터 일감을 따올 수밖에 없는 입장이지만 지금의 ‘강한 갑(甲)과 약한 을(乙)’의 구조를 ‘약한 갑(甲)과 강한 을(乙)'로 변화시켜 서로 견제하도록 하겠다는 설명이다. 최 전 장관은 이를 위해 ▲회계감사 보수의 최저한도 설정 ▲덤핑수임에 대한 감리 강화 ▲공공기관 외부감사 최저입찰계약 금지 추진 ▲감사보수 공탁제 추진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금융당국이 회계법인 총괄대표에게 감사 품질관리 책임을 묻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선 반대 입장을 분명히했다. 그는 “회계법인 대표는 특정 기업의 회계 감사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원칙인데, 부실 감사로 처벌을 받는다는 것은 법리상 맞지 않다"며 “학생이 공부를 못한다고 선생님을 처벌하는 것은 상당히 가부장적인 규제”라고 강조했다.

-공인회계사회 회장에 출마한 이유가 궁금하다.
"변화를 위한 시대적 사명을 맡아보라는 회계법인 원로들의 추천을 받았다. 회계업계에 할 일이 있다고 여러 번 추천하셨고,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출마하게 됐다. 사회생활을 회계사로 시작했다. 미력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

-감사보수 최저한도 설정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회계감사는 일종의 공공 서비스다. 그런데 회계법인이 기업과의 관계에서 '슈퍼 을(乙)'의 지위에 있기 때문에 감사 실패 문제가 발생한다. 기업이 감사인 선임권을 쥐고 흔들기 때문이다. 자유수임이라는 제도 하에서 감사인의 독립성을 높여줘야 한다. 감정평가사도 최저 한도가 있다. 회계감사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시장의 자유경쟁에 맡길 것과 정부가 관여할 것을 구분해 줘야 한다. 유능한 관료는 정부개입과 시장 자율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감사보수 하한선을 동일하게 설정한다면 '담합'에 해당할 수 있지 않나
"상한을 정하는 것은 담합의 우려가 있지만, 하한선 설정은 담합 우려가 없다. 최소한의 비용이라는 게 있다. 가장 먼저 최저한도를 설정해야 할 곳이 아파트 감사다. 아파트 감사의 보수가 60만원이라고 한다. 말도 안되는 일이다. 보수가 낮으니 회계사는 해당 아파트 현장에 가보지도 않는다. 이런 문제들이 회계를 불투명하게 만들고 감사실패로 이어진다"

-감사인 선임 기한을 바꾸는 법안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
"규정을 조금만 고치면 감사의 질이 높아진다. 현행 외감법(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상 결산 종료일로부터 4개월안에 감사인을 선임토록 하고 있다. 이게 함정이다. 상장법인은 3년간 외부감사 계약을 맺는다. 통상 매년 4월까지 계약을 연장한다. 회계사(회계법인) 입장에서는 12월 결산 감사보고서를 쓰면서 계약 연장을 부탁해야 한다. 이런 모순 때문에 감사보고서를 제대로 쓸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감사인 선임 기한을 4월이 아닌 12월말로 바꾸면 감사보고서를 쓸 때 이미 연장하는지, 그만두는지 알 수 있다. 3년간 말 못한 내용을 감사보고서에 담을 수 있다. 상당한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감사법인 미공개 정보 유출은 회계법인 내부통제가 잘못된 것 아닌가.
"회계사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다. 회계사나 회계법인의 내부통제 문제로 볼 수 없다. 개인의 인격문제이므로 행위자를 처벌하면 되는 것이다. 변호사도 윤리 문제가 많이 생긴다. 그렇다고 로펌의 내부통제가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내부통제나 감사실패에 대한 책임을 회계법인 대표에 묻는 방안에 반대하는 이유는.
"윤리교육을 제대로 실시하고 경고도 주었다면 내부통제의 문제로 볼 수 없다. 만약 회사에 내부통제에 관한 시스템, 품질관리나 감사팀이 없다면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표는 부단히 회계감사 품질을 말하고 실무 회계사들은 성실히 따르면 된다. 학생의 잘못을 선생에게 물어선 안된다"

-청년, 여성. 지역회원 등을 지원하는 정책도 내놨는데
"청년위원회, 여성위원회(가칭)를 설치해 회계산업의 미래를 설계할 계획이다. 이사회와 평의원회, 각급 위원회 등에 청년과 여성회원 참여를 대폭 확대하겠다. 지방공인회계사회의 역할과 활동도 예산 확충 등을 통해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 최중경 전 장관은
1956년 경기도 화성 출생. 경기고,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3학년때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 졸업 후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하며 행정고시(22회)에 합격했다. 1979년 재무부 사무관을 시작으로 재정경제부 금융협력과장, 외화자금과장, 증권제도과장 등을 지냈으며 2005년부터 세계은행 상임이사로 선출돼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재경부 국제금융국장과 기획재정부 제 1차관 등을 역임한뒤 주 필리핀 대사를 지냈다. 이명박 정부때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으로 발탁된 후 지식경제부 장관을 역임했다. 오는 6월 22일 열리는 제43대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선거에 출마해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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