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무부가 중국 통신장비 및 스마트폰 제조업체 화웨이(中華) 측에 북한 등 제제 대상 국가에 수출한 내역을 제출하라고 최근 요구했다. 자국 산업 보호, 북한 제재, 안보 등 미국 정부의 다목적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적대 국가에 미국 부품과 장비, 기술이 포함된 제품을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3월 31일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열었다.

◆ "5년 간 수출 내역 제출하라"

2일(현지시간) 미국 주요 언론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미국 화웨이 지사에 북한, 시리아, 이란, 쿠바 등 제재 대상국가에 최근 5년간 기술 제품을 수출하거나 재수출한 기록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미국 상무부의 수출제한규정(EAR, Export Administration Regulation)에 따르면, 미국 제제 대상 국가나 적성국가에 미국 기술이 10% 이상 포함된 제품의 수출을 금지한다.

미국은 앞서 3월 또 다른 중국 통신장비기업인 ZTE(中興)도 제재했다. 미국의 이란 금수조치를 위반했다는 혐의다. 미국은 ZTE에 수출제한 조치를 내렸다가 3월24일부터 6월30일까지 한시 조건으로 해제했다.

미 정부와 미 국회는 각종 정보가 오가는 통신장비를 만드는 화웨이에 대해 꾸준히 경계해 왔다. 화웨이는 2008년 미국 통신장비 기업 3M 인수를 시도했지만, 미 국회 반대로 성공하지 못했다. 미 의원들은 통신장비의 '백도어(뒷구멍)'로 각종 기밀이 새나갈 수 있다는 '국가 안보 위협론'으로 내세워 화웨이를 압박했다.

◆ "북한 휴대전화 화웨이 제품 많아"...북중 동시 압박

이번 조치는 지난 1일 미 재무부가 북한을 '주요 자금 세탁 우려국'으로 지정한 데 이어 나왔다. 이 때문에 북한과 중국을 동시에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북한 휴대전화

북한은 2008년 이집트의 오라스콤텔레콤과 손잡고 이동통신 서비스를 시작했다. 북한에 공급된 휴대전화의 초기 모델은 대부분 중국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 물량의 90%가 '화웨이산(産)'이라는 북한 조선체신성 관계자의 증언도 있다.

2008년~2010년 사이 화웨이는 대당 80∼100달러 이하인 휴대전화 단말기를 북한에 공급했으며 북한의 이동통신 서비스 회사인 고려링크가 200∼350 달러에 재판매해 큰 차익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북한 휴대전화 사용자는 300만명이 넘는다.

화웨이가 북한 등에 공급한 휴대전화나 통신장비에 미국산 부품이 얼마나 포함됐는지가 미 상무부의 규정 위반 여부를 가르는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규정 위반 사실이 드러나면 화웨이는 미국 기업과의 거래를 할 수 없다.

◆ 한국 기업에 불똥 튀나

미 상무부의 이번 조사로 양국 정부 사이의 긴장이 한층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미 재무부의 중국 등 5개국 환율관찰대상국 지정,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중국 40개 철강업체 가격 담합 조사에 4차 북한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시험 대응에 이견 등으로 갈등해왔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한국 기업에 엉뚱한 불똥이 튈 수도 있다. 이달 중순 방한한 마커스 자도트 미 상무부 차관보는 한국 정부 관계자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관계자도 만나 중국이 국가 주도로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는 문제에 대해 공조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웨이는 지난달 24일에는 삼성전자와의 특허 교차 사용을 얻어내기 위해 삼성전자를 미국과 중국 법원에 특허법 위반으로 제소한 상황이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미중 갈등의 한복판에 있는 화웨이와 특허 싸움을 벌여야 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화웨이가 미국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와중에 미국 정부의 조사를 받게 됐다"면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미중 갈등에 한국 기업이 피해를 입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