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대박에 무조건 '한류 효과 1조원 타이틀은 지나쳐
유명 배우 캐스팅보다 마케팅과 개봉날짜가 영화 성공에 더 큰 영향
'스타 1인'에 의존하는 아이돌 그룹, 해체보다는 공헌도에 따라 수익 배분해야

김윤지 박사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한국과 중국에서 모두 흥행에 성공하자 여기저기서 ‘경제 효과’를 추산하는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배우 송중기와 송혜교의 인기 덕분에 우리나라 경제가 1조원 이상의 수혜를 본다고 한다. 한국 콘텐츠가 해외에서 인기를 끌면, 한국의 이미지가 좋아지고, 한국 제품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소리로 들린다.

하지만 어떤 재화 혹은 서비스가 구체적으로 얼마만큼 더 팔린다는 것일까. 싸이가 ‘강남 스타일’로 대박을 쳤을 때도 똑같이 ‘한류 효과 1조원’이란 수치가 나온 건 기막힌 우연일까. 문화 산업에 대한 기대는 하루가 달리 커지지만, 구체적인 경제 효용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호하기 이를 데 없다.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한 장면. 가상 국가 우르크에 파견된 특전사 장교 송중기와 여의사 송혜교의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로, 중국에서 흥행에 성공하면서 한류 수출 1조원의 효과가 예상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박스오피스 경제학’은 숫자와 데이터로 무장해 콘텐츠 산업의 흥행 공식을 밝혀내는 책이다. 중국 드라마 시청자들의 학력과 소득을 기준으로 타깃층을 세분화하고, 금융경제학의 이론을 빌려 새로움과 익숙함 사이에서 흔들리는 대중의 마음을 설명한다. 해체와 솔로 활동을 두고 고민하는 아이돌 그룹에는 게임 이론이 적용된다.

이 책의 저자 김윤지 박사는 자칭 ‘리모콘을 사랑하는 경제학자’다. 그는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한겨레 신문사 주간지 팀에서 6년간 기자로 일했다. 이후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서 문화콘텐츠 산업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여의도에 있는 수출입은행 회의실에서 김윤지 박사를 만났다.

-어떻게 문화콘텐츠 산업을 연구하게 됐나요?

“문화가 하나의 산업이 되면서, 은행에서도 이에 대한 연구가 필요했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한류로 물건이 더 잘 팔리고, 수출이 늘어난다’고 말합니다. 사실 감으로 그럴 것 같긴 하지만 감에 의존해 수출입은행에서 돈을 빌려줄 순 없잖아요.

예컨대, 수출은행은 이번에 ‘태양의 후예’를 제작한 뉴(NEW)에 30억원 정도 대출해줬습니다. 드라마 콘텐츠 산업의 경우 기존 여신 시스템로는 대출액 산정이 불가능합니다. 저는 2009년 수출입은행에 입사해 중소기업 분석을 맡았는데, 2010년부터 문화 콘텐츠 산업에 여신이 늘어나면서 이쪽 연구를 하게 됐습니다.”

-문화 콘텐츠 산업에 투자가 늘고 있는데, 이 분야에 대한 연구는 왜 아직도 미미한가요?

“사실 아직도 문화 관련 회사를 제대로 된 기업으로 보지 않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내용을 믿기도 어렵고, 재무제표조차 신뢰하기 어렵기 때문에 관련된 데이터가 그동안 제대로 축적되지 않았습니다. 문화 산업을 설명할 수 있는 사회과학적 이론은 거의 없다고 봐야죠.

하지만 이젠 문화는 간과할 수 없는 하나의 산업입니다. 매년 1000만 관객 이상 영화가 여러 편 나오고, 천문학적인 액수의 수익이 나고 그만큼 손실이 나기도 합니다. 이제 투자자들은 문화 산업에 투자하기 전 제작자의 언변에만 의존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투자하게 할 데이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화, 드라마, 아이돌 그룹이 어떤 원리로 대박을 쳤는지 아니면 망했는지 분석해야겠죠.”

김윤지 박사

김윤지 박사에 따르면 ‘태양의 후예’ 등 문화 콘텐츠 뒤에 붙는 ‘경제효과’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판권 수출 등 총 매출액으로 구성된 ‘직접효과’이고 둘째는 이로 인해 발생한 연관 산업 효과 및 한국 홍보 효과를 뜻하는 ‘간접효과’. 보통 이 두 가지를 합쳐 1조원의 효과를 본다고 말한다.

직접효과의 경우 콘텐츠 매출 하나만 집계하면 되지만 간접효과는 말만 무성할 뿐 제대로 연구된 적이 없다. 이 때문의 김 박사는 한류가 한국 상품 수출로 이어졌는지 증명해보기로 했다. 우선 2001년부터 2011년까지 92개국에 수출된 한류 콘텐츠의 액수를 연도별, 나라별로 집계했다. 그리고 문화적 근접성에 크게 영향받는 소비재 즉 IT 제품, 의류, 화장품, 가공식품 수출액도 연도별, 나라별로 모아 상관관계를 확인해 봤다.

그 결과 실제로 문화 콘텐츠 수출이 100달러 늘어날 때 소비재 수출이 약 412달러 증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문화상품의 소비재 수출 견인 효과가 매우 높다는 결론이었다. 김윤지 박사는 “그동안 심증만 가지고 얘기하던 한류의 경제 효과가 ‘콘텐츠 수출액의 4배’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태양의 후예’ 인기로 한국 기업의 중국 수출이 4배 늘어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습니다. 엑소 같은 아이돌 그룹이 공연, 음반 판매로 내는 수익의 4배로 소비재가 더 많이 팔리는 것입니다. 그동안 문화적으로 친한 나라이면 그 나라의 재화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는 많았는데, 그 내용을 기반으로 한류 수출과 관련된 소비재 수출을 연관된 모형을 처음으로 만들어 추정한 것입니다.”

-어떤 소비재가 팔리는 건가요?

“그동안은 음식, 의류, 화장품, 관광 등 단가가 높지 않은 소비재 위주로 한정해서 연구했는데, 이번에 ‘태양의 후예’를 보면 자동차가 멋지게 나오는 장면이 많아서 현대차가 광고 효과를 많이 봤습니다. 앞으로도 한류 효과를 보는 제품군은 더 다양해 질 것으로 봅니다.”

영화의 흥행 공식을 밝혀내기 위한 노력은 수없이 많지만, ‘법칙이 없다’는 게 정설이 돼버렸다. 그만큼 콘텐츠의 대박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 제작사는 영화의 성공을 기원하며 고사를 지내기도 하지만, 김윤지 박사는 “흥행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영화 ‘곡성’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바이럴 마케팅에 성공한 작품으로 꼽힌다. 김윤지 박사는 시사회나 TV 광고 같은 기존 영화 마케팅 보다 소비자들 사이의 ‘입소문’이 더 큰 효과가 있다고 지적했다.

-요즘 유명 배우를 캐스팅해도 흥행이 보장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훌륭한 배우나 감독을 내세우는 것보다, 마케팅비를 많이 쓸수록 수익률이 더 높게 나타납니다. 즉, 마케팅비를 10억원, 20억원, 30억원으로 늘려 가면 수익성이 증가할 확률도 그만큼 높아지지만, 똑같이 마케팅비를 10억원 쓸 때 제작비를 50억원, 60억원, 70억원 늘려도 수익성이 그만큼 늘어나진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게다가 영화 흥행의 결정적 요소로 거론되곤 하는 배우의 겨우, 마케팅비와 상대적인 영향력을 비교했을 때 수익성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울러 영화 성공의 절반은 개봉일 택일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개봉일에 대작 영화들과 맞붙게 되면 ‘개봉 첫주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영화라는 상품이 참 재미있는 게, 가격 경쟁력이 없어요. 좋은 영화든 나쁜 영화든 다 같은 가격이죠. 소비자 입장에서 가성비가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에 다른 요소로 경쟁해야 합니다.”

-어떤 마케팅이 효과적인가요?

“이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다만, 기존의 TV광고, 시사회 등과 다르게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한 바이럴 마케팅이 각광을 받고 있어요. 예를 들어 영화 ‘곡성’은 이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면서 입소문이 난 케이스입니다. 미스테리한 내용에 대해 서로 해석을 내놓고, 의견을 교환하는 등 소비자끼리 마케팅을 해주는 식이죠.”

아이돌 그룹 AOA의 멤버 중 설현(가운데)은 통신사, 화장품, 스포츠웨어 등 다수의 광고를 찍는 등 팀에서 가장 큰 수익원이다.

아이돌 그룹 중 멤버 모두가 동일한 인기를 누리는 경우는 없다. 항상 무대 중앙에 서는 ‘스타 멤버’가 존재한다. 이들이 그룹 수익의 대부분을 벌어오지만, 만약 이익을 똑같이 나눌 경우 해당 인기 멤버는 그룹을 탈퇴해 솔로로 전향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에 김윤지 박사는 존 내시와 로이드 섀플리 등이 정립한 ‘협력적 게임이론’을 적용했다.

-아이돌 그룹이 오래 활동하다 보면 불화가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단순히 인간 관계에서 생기는 불화도 있지만, 핵심은 ‘경제적 불화’입니다. 내가 팀에 기여한 바에 비해 경제적으로 덜 대우받고 있다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 더 대우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경제적 불화가 시작되는 것이죠.

요즘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개인 활동이 늘어나고 있는데, 팀마다 수익 배분 비율은 다릅니다. 개인 활동을 열심히 해도 인원수대로 똑같이 수익을 나누는 팀도 있고, 개인이 활동한 몫은 개인이 가져가는 팀도 있죠. 만약 똑같이 수익을 나눈다면, 활동을 많이 하는 멤버가 불만을 가질 수 있고, 반대로 개인이 활동하는 만큼 수익을 가져간다면 왜 다른 멤버에게는 활동 기회를 주지 않나 불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팀의 해체를 막을 수 있나요?

“201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이드 섀플리가 정리한 ‘섀플리의 값’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참여자가 여럿인 공동 프로젝트일 때 이익을 참여자들의 공헌도에 따라 배분함으로써 균형 상황을 유지하게 만드는 적절한 배분 공식입니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공헌도’의 측정입니다. 아이돌 그룹 중 스타 멤버가 광고로 돈을 벌어오지만, 다른 멤버들의 공헌이 없는 것은 아니죠. 인기 멤버 혼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하나의 앨범을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 멤버가 무대에서 빛나는 것은 어찌보면 다른 멤버가 존재한 덕분이죠.”

최근 2NE1의 막내 공민지양이 탈퇴하면서 그룹이 해체됐다.

-그러면 수익을 어떻게 나눠야 하죠?

“예를 들어 3명으로 구성된 그룹이 있습니다. 한 명은 솔로로 전향해서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스타 멤버고 나머지 2명은 비스타 멤버라고 합시다. 그룹이 벌어 들이는 총수입이 120만원으로, 3명이 40만원씩 똑같이 나눠 가집니다.

그런데 스타 멤버가 탈퇴해 솔로로 독립하게 되면 그의 수입은 60만원으로 오를 수 있는 반면 나머지 멤버들의 수입은 20만원으로 줄어듭니다. 총수입 역시 120만원에서 100만원(60만원+20만원+20만원)으로 작아지죠? 스타 멤버 입장에서는 탈퇴하는 게 합리적인 결정입니다.

하지만 섀플리 값은 그룹을 유지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룹 유지시 총수입은 120만원, 해체시 총수입은 100만원이기 때문에 총수입이란 관점에서 유지하는게 옳습니다. 하지만 스타 멤버의 불만을 달래주기 위해 그에게 솔로 전향 수입과 동일한 60만원을 보장해주고, 나머지 비스타 멤버 2명이 30만원씩 나눠 가지는 게 가장 합리적입니다.

비스타 멤버는 스타 멤버보다 돈을 덜 받지만, 그래도 팀이 해체될 때보다는 더 많이 벌 수 있으니 이득이죠.”

-비스타 멤버들이 불만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경제학적으로만 접근한다면, 가혹하지만 죽기 살기로 스타 멤버를 붙잡는 것이 옳습니다. 내 수익을 조금 나눠주더라도, 해체보다는 낫기 때문이죠. 하지만 당연하게도, 인간은 그렇게 경제적 논리로만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나의 이득을 포기하더라도 ‘공정함’을 얻고 싶은 마음이 강한것도 인간이라는 존재입니다.

그룹 멤버라면 공정함과 상호이익의 줄타기를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해봐야겠지요.”

-문화 사업을 연구하는데 어려운 점은 없나요?

“정말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것을 원하는 데 있어 선택과 취향 두 가지 문제가 있잖아요. 사람들의 취향을 어떻게 이해해서 어떤 선택으로 이어지는지 파악해야하는데, 이외에도 사실 다른 요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새롭지만 뭔가 익숙하고, 또 익숙하지만 새로운 것을 원해요. 이 두 가지를 왔다 갔다하며 외줄타기 하는 것 같은데, 잘 연결해서 이해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