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이 알짜 비상장 기업인 현대오일뱅크 상장까지 포함한 초대형 자구안을 마련한 것은 작년 말부터 이어지고 있는 수주 절벽이 더 가팔라질 위험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삼성중공업이 지난 17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제출한 자구안도 1조5000억원 안팎의 대규모 자금 확보 방안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회사 모두 현재 부채비율이 200%대에 불과하고 사내 유보금(올 1분기 기준)만 해도 현대중공업이 13조원대, 삼성중공업이 3조원대에 달하지만,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춥고 긴 겨울'을 앞두고 있어 확실한 월동 대책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업 구조조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해외 자회사 매각, 방산(防産) 부문 분사, 각종 자산 매각과 인력 감축 등으로 총 5조원대의 유동성을 확보할 예정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조선 '빅3' 가운데 산업은행이 대주주인 대우조선해양 경영 정상화는 정부가 맡고,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은 자력으로 헤쳐나가야 한다. 그래서 강도 높은 자구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빅3’도 대규모 자구안을 준비하고, 구조조정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해양 플랜트 작업장에서 대형 크레인이 조업 준비를 하고 있다.

STX조선해양이 27일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매각이 불발된 SPP조선도 법정관리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처럼 중형 조선소 구조조정이 예상보다 속도를 높여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면서 금융 당국과 채권단의 눈은 '빅3'로 향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비유하자면, 중형 조선소 처리는 그동안 미뤄왔던 숙제를 한 것이다. 이제 조선 '빅3'에 대한 구조조정이라는 큰 시험을 앞두게 됐다"고 말했다.

최악의 한파에 대비한 자구안 마련하라

세계 1위인 현대중공업은 '빅 3'가운데 형편이 제일 나은 편이다. 지난해 1조5000억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봤지만 올해 1분기엔 3000억원대 영업이익을 냈다. 그런데도 일종의 비상 대책인 2차 자구안에는 현대오일뱅크 상장 등을 통해 추가로 3조5000억원을 마련하는 방안이 담겨 있다. 최근 해외에서 "한국 조선업계가 위기에 처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감안해 자구안의 수위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 위기 상황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금융 당국과 채권단의 우려를 불식시켜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는 분석도 나온다.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은 현대중공업의 자구안에 대해 큰 이견이 없는 상태다. 채권단 관계자는 "계획대로 최대한 신속하게 이행하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17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자구안을 제출했지만, 합격점을 받지 못했다. 산은은 보완을 요구하면서 자구안을 삼성중공업에 돌려보냈다. 채권단에서는 삼성중공업이 자체적으로 최소 2조원 규모의 추가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주주인 삼성전자가 유상 증자에 나서는 등 삼성그룹 차원의 지원책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우조선해양은 3000명 규모 인력 감축과 서울 본사 빌딩 등 비핵심 자산 매각을 추진키로 했다. 핵심 사업부인 방산 부문을 따로 떼어내 상장한 뒤, 경영권 확보에 문제가 없는 일부 지분을 매각해 4000억원 규모 현금을 확보하는 방안까지 거론되고 있다.

수주 절벽 장기화 여부가 관건

금융 당국 관계자는 "조선업 불황이 더 길어지고, 수주 절벽이 예상보다 심각해지면 빅3가 현재 생각하고 있는 자구안으로는 부족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조선업 상황을 감안하면 최대 2~3년간 불경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최근 발표한 조선업 관련 보고서에서 "수주 절벽은 2018년 이후에나 정상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특히 당장은 여유가 있지만 3사 중 해양플랜트 비중이 가장 높고(66%), 작년 11월 이후 신규 수주가 한 척도 없는 삼성중공업 같은 경우 선제적인 대응이 절실한 상황이다. 조선업 특성상 신규 수주가 끊기면 조선사에 유동자금 역할을 하는 선수금(先受金)이 말라버려 기존 조업도 심각한 차질을 빚게 된다. 이강록 교보증권 조선업 애널리스트는 "현재로선 조선업 불황의 끝이 잘 보이지 않는다. 특히 해운업도 최악의 상황이라 걱정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