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배 지음ㅣ중앙booksㅣ364쪽ㅣ1만6000원

'보이지 않는 손'은 현대 시장경제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보이지 않는 손의 다른 이름은 '시장'이다. 시장에 의해 수요와 공급은 조절되고, 생산자원도 효율적으로 배분된다는 논리다. 이 손을 처음 말한 이는 18세기의 애덤 스미스다. 수세기가 지난 지금도 많은 이들은 이를 진리처럼 믿는다.

저자는 "당신이 알고 있던 애덤 스미스는 틀렸다"고 외친다. 책을 쓴 김근배 숭실대 교수는 스미스는 시장만능주의자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스미스가 시장의 완전한 자유만을 강조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독이자 왜곡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자신의 이론을 합리화하기 위해 스미스의 이론을 곡해해 가져다 썼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잘못 전해진 스미스의 사상을 11가지로 나눠 설명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처음 등장한 '국부론'에서 스미스는 자유 시장의 전제로 두 가지를 꼽았다. 국가가 상인과 제조업자에게 주는 특혜나 독점이 없어야 하고, 사회 전체의 정의가 훼손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대목이 나온다. '보이지 않는 손'은 국부론에서 엄청 많이 반복될 거 같지만, 사실은 딱 한 번만 등장한다. 그것도 시장 기능을 설명하는 대목도 아니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을 국민보다 상인과 국내 제조업자들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중상주의 정책을 비판하는 대목에서 언급했다.

즉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언급하면서 당시 영국의 중상주의가 정치적, 경제적 약자에게 피해를 주는 정책이라고 비판하면서 폐기하라고 촉구한다. 국민 대다수를 이루는 노동자가 잘 살아야 부강한 나라고, 그것이 진정한 국부라고 지적했다. 스미스는 그러려면 정부의 자연스러운 개입을 통해 부의 자연스러운 분배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책을 쭉 따라 읽다보면 우리가 알던 '보이지 않는 손'은 정말로 보이지 않는, 엉뚱한 포장지로 싸여진 만들어진 손이라는 걸 알게 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양한 수정 자본주의나 대안적 담론이 제기되고 있는데, 정작 주류 경제학의 실패는 우리가 알던 주류 경제학의 기본 전제가 잘못됐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흥미롭다.

가령 이런 대목이다. 신고전경제학에 크게 기여한 폴 새뮤얼슨 교수는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정부 간섭을 줄이고 시장을 자유롭게 하라는 원칙을 천명했다고 했다. 새뮤얼슨 교수는 자신의 책 '경제학'에서 "스미스는 경제 체계의 질서를 인식하고는 너무 전율하여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신비한 원칙을 선언했다. 이는 각 개인이 자신의 이기적 목적만을 추구하는 것이, 마치 보이지 않는 손처럼, 모든 사람에게 최선의 결과로 인도된다"고 썼다. 그렇기에 정부 간섭은 반드시 해로운 결과를 야기한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여기서 "새뮤얼슨이 국부론을 꼼꼼하게 읽지 않은 것 같다"며 새뮤얼슨을 강하게 비판한다. 저자에 따르면, 스미스는 이기적이라는 말과 자기이익 추구라는 말을 구분해 사용했다. 이기적이라는 말은 타인에게 해가 되는 것을 무릅쓰고 사익을 추구하는 탐욕적 행위인 반면, 자기이익 추구는 신중과 정의의 범위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스미스는 이기적인 것은 탐욕으로 정의하면서, 자기이익 추구가 사회를 발전시키는 좋은 것으로 규정했다. 기본 전제를 왜곡했단 지적이다.

지금 세계 경제는 침체의 수렁에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경제와 경제학은 위기를 조기에 감지하지도 출구전략도 제대로 짜지 못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처럼 기존의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정책도 등장했지만 아직 그 효과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지도를 벗어나 가보지 않은 길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정작 아무도 새로운 나침반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역사학자 E.H.카는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라고 했다. 저자는 스미스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잘못된 해석이 세계 경제를 침체로 몰아넣었다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오히려 거꾸로 희망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보이지 않는 손에 다시금 제대로 된 생동감을 불어넣는다면, 우리는 앞으로 남은 21세기를 항해할 새로운 나침반을 손에 넣게 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