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분기 증가액 13조에 비해 7.6조나 많이 증가
"집단대출, 주택담보대출 이용한 사업자금 활용 규제해야"

우리 국민이 진 가계 빚 총액이 3개월 새 20조6000억원이나 늘어 지난 3월 말 기준 1223조원을 넘어섰다.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 시행 등으로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는 둔화됐지만, 여전히 총부채상환비율(DTI) 적용을 안 받는 집단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늘었다는 분석이다.

26일 한국은행이 집계한 '2016년 1분기 중 가계신용 잔액(잠정치)'에 따르면 가계 빚 총액은 1223조6706억원이었다. 가계대출(은행·보험사 등 금융사 대출)과 판매신용(신용카드사·할부금융사 등 외상구매)을 합한 금액이다. 가계 빚이 1223조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한은이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2년 4분기 이후 사상최대치다. 가계부채는 지난 2013년 2분기 이후 11분기 연속 사상 최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가계 빚 총액은 2011년 916조원이었지만, 2013년 1019조원으로 1000조원을 넘어선 이후 2014년에는 1085조원까지 불어났다. 2015년에는 1206조9798억원으로 처음으로 1200조원을 돌파했다.

◆ 집단대출 중심으로 주택담보대출 꾸준히 늘어

1분기 동안 늘어난 가계부채 20조6000억원은 지난해 4분기(38조2000억원)보다는 낮지만, 작년 같은 기간(13조원)에 비하면 높은 수준이다. 한은은 "작년 1분기와 비교해 보면 가계부채 증가세가 줄어들었다고 할 수 없다"며 "보통 1분기 가계부채는 계절적 요인으로 인한 기저효과가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4분기는 이사 수요와 연말 소비 증가로 가계부채가 늘고 1분기는 이런 효과가 사라지면서 가계부채가 대폭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기조효과를 생각하면 지금 늘어난 가계부채 증가폭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1분기 가계 빚이 급증한 주된 원인 중 하나는 집단대출을 중심으로 주택담보대출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용 한은 금융통계팀장은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 시행으로 주택담보대출의 총 규모는 줄고 있지만, 집단대출 수요 증가로 인한 주택담보대출 수요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고 했다.

시중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1분기에만 5조4000억원이 늘어나 3월 말 잔액이 407조원을 넘어섰다. 상호저축은행·신협·상호금융 등 제2금융권에서 빌린 주택담보대출도 석 달 새 2조7000억원이 늘어 잔액이 102조2000억원에 달했다.

집단대출이란 신규분양과 재건축 아파트, 재개발 아파트 입주 예정자를 상대으로 한 일괄 대출로 주로 중도금 지급용으로 쓰인다. DTI 등 개별 대출자들의 상환 능력을 따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가계부채 증가의 주된 원인이 규제에서 열외를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작년 12월 금융위원회는 집단대출은 실수요자에 대한 주택 자금 지원 방법이고 부동산 등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규제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은은 집단대출로 인한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이 향후 2년간 월평균 3~4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KDI도 최근 집단대출에 DTI규제를 적용해야한다고 밝혔다.

송 연구위원은 "지난 4분기 주택담보대출 증가의 가장 큰 요인은 집단대출인데, 그 영향은 1~3분기에 걸쳐 분산된다"라면서 "중도금 대출 등이 중간중간 발생하기 때문에 연장효과를 생각한다면 다가오는 2분기에도 가계대출 증가폭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여신심사 가이드라인 시행에 따라 가계부채 질적 구조개선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지만, 가계부채의 주요 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집단대출이나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한 사업자금 활용 등은 그 적용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며 "이런 부분이 현재 가계부채 질적 구조를 악화시키는 요인이기 때문에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구조조정 본격화 하면 가계부채 질적 구조 더 나빠질 수도"

아울러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서 마이너스통장과 대출상품을 연계한 금융상품을 잇달아 내놓은 점도 가계 빚을 늘린 것으로 풀이된다. 상대적으로 생계가 힘들고 급전이 필요한 국민이 빚을 늘린 것이다. 이로 인해 1분기 비은행예금취급사의 기타대출은 4조9000억원 늘어 154조원을 기록했다.

이 밖에 할부금융회사를 통해 빌린 가계 빚이 3개월 새 1조3000억원 늘어나 49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정부가 승용차에 붙는 개별소비세율을 5%에서 3.5%로 1.5%포인트 내리는 조치를 연장하면서 빚을 내 차량을 구입한 국민이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한편 경기가 하방 국면에 접어들고 있고 하반기 조선·해운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본격화 되면 가계부채의 질적 구조는 더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송 연구위원은 "구조조정 대상으로 지목받는 산업군이 위치한 지역의 주택 가격은 이미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데, 구조조정이 일시에 이뤄지면 이미 나간 대출금액에 대한 상환능력이 급격하게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경기둔화로 지금도 대출을 제대로 갚지 못하고 있는 서민들이 많은데, 가계부채 상황 능력이 악화되면 소비도 같이 위축되는 악순환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