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류(亞流) 기업으로 여겨온 중국 화웨이가 한국 대표 기술 기업인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 소송을 제기했다. 중국 기술의 역습(逆襲)이 시작된 것이다.

스마트폰 제조와 통신 장비 분야에서 중국 1위 기업인 화웨이는 24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북부 연방지방법원과 중국 선전(深圳) 인민법원에 삼성전자가 자사의 이동통신 관련 특허 11건을 침해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중국 기업이 삼성에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화웨이가 침해당했다고 주장한 특허는 LTE(4세대 이동통신)망으로 스마트폰과 기지국을 연결해 데이터를 주고받거나, 이 과정에서 보안을 유지하는 기술 등이다. LTE 스마트폰을 제조하는 데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표준 기술’이다.

화웨이는 미국 법원에 제출한 소장에서 “갤럭시S2부터 최근 나온 갤럭시S7까지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대부분이 화웨이의 특허를 침해해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는 이에 대해 맞소송 등 강력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의 안승호 부사장(지적재산권센터장)은 “화웨이에서 그렇게 나온다면 가만히 있을 순 없다”고 말했다.

◇화웨이, “삼성전자가 무단으로 특허 침해” 주장

이번 소송은 중국 기업이 축적해온 기술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중국 IT(정보기술) 기업들은 한국·미국·일본 등 선진국의 제품을 베껴 ‘짝퉁’을 만든다는 오명(汚名)을 받았지만, 짝퉁 판매로 벌어들인 돈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해 기술력을 끌어올린 것이다.

화웨이는 이런 중국 IT 업계를 대표하는 기술 기업이다. 1980년대부터 통신 장비 산업에 뛰어들었고, 매년 매출의 15% 이상을 기술 개발에 투자해 30년 만에 핀란드의 노키아, 스웨덴의 에릭슨과 함께 세계 3대 통신 장비 업체로 성장했다. 스마트폰 시장에선 삼성·애플에 이은 세계 3위 업체다.

화웨이의 기술력은 특허 출원에서 명확하게 나타난다. 화웨이는 작년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에 3898건의 국제 특허를 출원해 1위를 차지했다. 세계 최고의 특허기업인 퀄컴과 삼성전자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삼성전자와 화웨이에 따르면 두 회사는 그동안 비공개로 크로스 라이선스(특허 상호 사용 계약) 협상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화웨이가 법정으로 문제를 끌고 간 것이다. 화웨이코리아의 고위 관계자는 “화웨이는 애플·노키아 등 주요 IT 기업들과 크로스 라이선스를 맺고 있다”면서 “삼성전자가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화웨이는 치밀하게 특허 전쟁을 준비해온 것으로 보인다. 작년에 자사의 특허 5만여건을 미국·중국·유럽의 특허 전문가들에게 보내 분석을 의뢰하고, 경쟁사가 무단으로 사용한 특허·기술 내역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엔 미국 애플로부터도 특허료를 받는 계약을 맺었다. 미국 워싱턴DC 로펌인 로스웰피그의 김주미 변호사는 “화웨이가 미국 현지에서 삼성과의 소송을 대비해 많은 법률 전문가를 섭외했다”고 말했다.

‘한방’을 맞은 삼성전자도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화웨이의 특허 침해에 대해 맞소송을 제기한다는 내부 방침을 정하고, 특허 침해 사례를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화웨이가 스마트폰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의 표준 특허를 도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삼성은 5년 전 애플과의 특허 전쟁에서도 자사의 스마트폰 표준특허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애플에 반격을 가했다.

◇기선 잡기용 소송… 극적인 타협 가능성도 높아

특허 전문가들은 이번 소송이 삼성·애플 간 특허전처럼 장기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한 특허 전문가는 “표준 특허는 스마트폰 제조 과정에서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기반 기술이기 때문에 침해 여부를 명확히 가릴 수 있다”고 말했다. 디자인 특허 침해로 5년째 싸우고 있는 애플과의 특허 전쟁과는 약간 차원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법원 판결 이전에 두 회사가 합의할 가능성도 크다. 화웨이가 연간 1조원 이상의 삼성전자 반도체를 구매하는 주요 고객사인 데다, 화웨이의 윌리엄 플러머 부사장도 소송 제기 직후 “특허 관련 분쟁은 (소송 대신) 협상으로 해결하는 게 더 좋다”고 말했다. 따라서 화웨이의 소송 제기는 본격적인 법정 다툼을 벌이기보다는 삼성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주도권 잡기 전략으로 해석된다.

서강대 정옥현 교수(전자공학)는 “화웨이는 이번 소송으로 세계 IT 업계에 자신들의 기술력을 과시하려는 계산도 있다”며 “애플과 소송을 벌인 삼성이 그랬듯이, 화웨이도 기술 면에서 삼성과 대등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얻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