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 KEB하나은행, 국민연금 등 딜라이브(옛 씨앤앰) 인수금융 대주단이 20일 오후 서울 남대문 신한은행 본점에서 대주단 협의회를 열고 채무조정안을 논의한다. 대주단은 올해 7월 30일 만기 도래하는 인수금융 상환 기한의 2019년 연장을 비롯해 대출금리 조정, 일부 출자 전환 등을 안건으로 상정한다.

유료방송 업계는 케이블TV 3위 업체(가입자 기준)인 딜라이브 대주단의 이번 채무조정 회의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케이블TV 1위 업체인 CJ헬로비전 인수를 추진 중인 SK텔레콤이 그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딜라이브는 2000년 1월 씨앤앰커뮤니케이션이란 이름으로 출발해 2016년 4월 사명을 현재의 딜라이브로 바꿨다.

◆ 대주단 의견 엇갈려…“만기 연장 합의 실패할 수도”

딜라이브의 인수금융 규모는 국민유선방송투자(KCI) 1조5600억원과 딜라이브 6300억원 등 총 2조1900억원이다. KCI는 사모투자펀드(PEF)인 MBK파트너스와 맥쿼리리아오퍼튜니티즈펀드 등 재무적투자자(FI)들이 딜라이브를 인수하기 위해 만든 특수목적법인(SPC)이다.

MBK가 주축이 된 KCI가 2007년 딜라이브를 인수할 당시만 해도 케이블TV 산업의 성장세는 대단했다. 딜라이브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230만명 이상의 가입자를 끌어모으면서 CJ헬로비전, 티브로드에 이어 케이블TV 3위 사업자로 성장했다. MBK는 최소 2조원 이상을 받고 딜라이브를 쉽게 매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2007년 이후 인터넷TV(IPTV)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동통신 3사가 방송·통신 결합상품에 IPTV를 묶어 판매하는 방식으로 가입자를 빠르게 늘려갔고, 그 사이 케이블TV 업체들의 성장세에는 제동이 걸렸다. 딜라이브의 영업이익은 2012년 1099억원에서 지난해 739억원까지 떨어졌다. 몸값이 낮아지자 수월할 것으로 여겨지던 매각 작업도 난항을 겪기 시작했다.

KCI는 지난해 초 골드만삭스를 매각주관사로 선정하고 딜라이브 매각절차에 돌입했지만, 이 회사를 2조원 이상에 사겠다는 원매자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현재 KCI는 딜라이브에서 받은 배당금과 한도대출(RCF)로 매달 약 100억원의 이자를 내면서 허덕이고 있다. 딜라이브가 내는 월이자는 30억원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KCI의 이자지급 능력이 한계에 이르러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조선일보DB

MBK는 올해 초부터 KCI가 빌린 1조5600억원 가운데 30~40%를 상환전환우선주(RCPS)로 출자 전환하고, 나머지 대출금의 만기를 2~3년 뒤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국민연금, 새마을금고, KDB생명 등 일부 비은행권 금융기관들이 만기 연장 과정에서 대출 금리와 지급 조건을 변경하는 것에 대해 난색을 표해 아직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대주단에 속한 은행권 금융기관들은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질 경우 충당금 등 손실이 급격히 늘어나기 때문에 만기 연장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채무조정안이 통과되려면 연관된 모든 금융기관이 동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주단의 한 관계자는 “합의점을 찾지 못해 만기 연장에 실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고 말했다.

만약 대주단이 인수금융 상환 기한을 연장해주지 않으면 2조1900억원은 7월 30일부로 부도 처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대주단에 속한 금융기관들은 인수금융 비율대로 딜라이브 지분을 나눠 가질 수 있다. 딜라이브 관계자는 “KCI와 달리 딜라이브는 현재 이자 지급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 상황 예의주시하는 SKT…“케이블TV 업체 인수 논리에 영향”

국내 유료방송 업계와 정부는 딜라이브 대주단의 이번 채무조정 회의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SK텔레콤(017670)이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이 회사는 현재 CJ헬로비전 인수를 추진 중인데, 경쟁사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딜라이브의 상황이 악화되면 “대기업이 나서서 케이블TV 업체를 적극적으로 인수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

그래픽=이진희 디자이너

SK텔레콤은 지난해 11월 CJ헬로비전 인수합병(M&A) 계획을 밝히면서 “정체된 케이블TV 업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M&A 시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전문가들 역시 “케이블TV 업체들이 여전히 수익을 내고 있긴 하지만, 더 이상의 성장은 없을 것”이라며 SK텔레콤의 인수 명분에 힘을 보탠 바 있다.

김성환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가가 사업을 정리하고 해당 분야에서 나가려고 할 때 반드시 출구가 있어야 한다는 건 시장경제의 기본”이라며 “케이블TV 사업자들을 위한 퇴로를 차단하는 건 시장경제가 돌아가는 구조를 막는 행위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SK텔레콤 입장에서는 딜라이브 인수금융 대주단이 대출 상환 일정을 조정하지 않는 것이 여론 형성에 더 유리할 수밖에 없다. KCI가 딜라이브 매각에 실패하고 주인이 대주단으로 바뀌면 딜라이브의 사업 경쟁력까지 흔들릴 수 있다. 이 경우 케이블TV 사업자들의 탈출구를 보장하라는 업계 목소리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KT, LG유플러스 등 경쟁 사업자들은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결합을 온 몸을 던져 반대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인 SBS도 연일 부정적인 보도를 쏟아내면서 이번 M&A 시도를 저지하려 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공정거래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등 M&A 인·허가 주무부처도 섣불리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기업결합 심사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적 있는 한 대학 교수는 “딜라이브의 명운이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M&A 인·허가 결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긴 어렵겠지만, 정부가 심사 과정에서 판단의 한 가지 근거로 참고할 순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