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과학자들이 인간 생명의 근원인 게놈(DNA 유전 정보 전체)을 실험실에서 합성하는 비밀 프로젝트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DNA를 원하는 대로 합성해 난자에 넣으면 맞춤형 아이가 탄생할 수도 있다. 해당 과학자들은 생명의 신비를 밝히는 도전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과학자들이 '신의 영역'인 생명 창조를 시도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실험실에서 생명 근원 합성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하버드대가 지난 9일(현지 시각) 보스턴에 150명의 과학자를 극비리에 소집해 인간 DNA 전체를 합성하는 '제2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논의했다"고 13일 보도했다. 회의를 주도한 조지 처치 하버드대 의대 교수는 DNA 분야 세계 최고의 석학이다. 처치 교수는 과학자들에게 보낸 초청장에서 프로젝트의 목적을 "10년 안에 세포 안에 있는 인간 게놈을 모두 합성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제2 인간 게놈 프로젝트(HGP2)'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HGP)'의 후속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멸종 네안데르탈인도 복원할것" - 인간 유전체를 합성하는‘인간 게놈 프로젝트 2탄’을 추진 중인 조지 처치 하버드대학교 교수가 지난 2010년 TED 강연에서 세포 분자 모형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인간의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DNA는 인산(燐酸)과 당(糖)에 A(아데닌)·C(시토신)·G(구아닌)·T(티민) 등 네 종류의 염기(鹽基)가 30억쌍 이어 붙여진 형태이다. 한 사람을 구성하는 세포 내의 DNA 염기 서열은 모두 같고, 사람별로 1~1.5% 정도만 차이가 난다. 외모와 성격, 질병 등이 모두 DNA에 의해 결정된다.

1990년부터 2003년까지 진행된 1차 HGP는 이 염기쌍 30억 개의 순서를 모두 밝혀 지도로 그렸다.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어떤 사람이 어디에 문제가 있어서 유전병을 가졌는지, 어디를 고치면 되는지, 이 지도만 보면 쉽게 찾아낼 수 있다"면서 "현대 생물학과 의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업적"이라고 말했다.

인간 창조 논란 불가피

HGP2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인간 DNA 전체를 인공적으로 합성한다. DNA 합성은 A·C·G·T 등 네 종류의 염기를 합성기계에 넣어 짧은 가닥을 만든 뒤 일일이 이어 붙이는 방식이다. 과학자들은 이미 이런 방식으로 DNA 조각들을 마음대로 만들어내고 있다.

DNA 합성으로 생명체를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이미 입증됐다. 미국 크레이그 벤터 연구소(JCVI)의 크레이그 벤터 박사가 지난 3월 DNA 합성으로 53만1000개의 염기쌍을 가진 일종의 인공 미생물을 만들었다. 이 미생물은 스스로 증식하고 번식도 가능하다. 일부 과학자들은 발효에 사용되는 효모도 인공적으로 합성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 세포는 미생물이나 효모보다 훨씬 복잡하다. 인간 DNA를 둘러싼 단백질이나 구조 등도 현재로서는 만들 수 없다. 또 과학자들은 30억개의 DNA 염기쌍 순서는 알고 있지만, 어느 염기쌍이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아직 모른다. 원하는 인간을 만들 수 있는 지식이 없다는 뜻이다. 김진수 단장은 "30억쌍까지 이어 붙이는 것은 현재 기술로는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조병관 KAIST 생명과학과 교수는 "연구비만 충분하다면 여러 대학과 연구소가 협업하는 방식으로 10년이 아니라 5년 내에도 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간 창조의 윤리성 문제에 대한 논란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NYT는 "인간 창조로 이어질 수 있는 회의가 비밀리에 열린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회의 참석을 거절한 드루 엔디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는 "연구 논의를 비밀리에 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그건 무언가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트위터에 올렸다.

조병관 교수는 "시간상의 문제일 뿐, DNA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 미래에는 아인슈타인의 두뇌에 마이클 조던의 운동 능력을 갖춘 사람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면서 "인간 DNA 합성을 시작 단계부터 철저한 윤리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프로젝트 주도 처치 교수는]

DNA 연구 세계최고 석학… 작년 매머드 유전자 복원

인간 DNA 합성 프로젝트가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는 것은 제안자가 조지 처치(62)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과학자가 "처치 교수의 얘기라면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반응이다. DNA 연구의 세계 최고 석학으로 평가받는 처치 교수는 독특하고 기발한 연구 성과로 유명하다. 그는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자신의 유전 정보를 알아야 한다며 2006년 '개인 게놈 프로젝트(PGP)'를 주창해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자신의 유전 정보를 정확히 알면, 향후 어떤 질병에 걸릴지 미리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수만년 전에 멸종된 매머드의 일부 유전자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처치 교수는 또 장기 이식 대기자 없는 세상을 꿈꾸며 면역 거부반응이 없는 이식용 인간 장기를 돼지에서 키우고 있기도 하다. 몇 년 전 언론 인터뷰에서는 "멸종한 네안데르탈인 화석에서 충분한 유전 정보를 얻어냈고, 언젠가는 복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게놈(Genome)

게놈은 인체의 모든 생명 현상을 좌우하는 DNA 유전 정보 전체를 의미한다. 사람의 유전 정보는 DNA를 구성하는 A·G·C·T 등 네 가지 염기가 배열된 순서에 따라 달라진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HGP)

'유전병으로부터의 해방'을 기치로 1993년부터 2003년까지 미국·영국·독일 등 12개국 과학자들이 진행한 DNA 분석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를 이용해 30억쌍에 이르는 사람의 DNA 염기 서열이 모두 지도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