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자동차는 12일 이사회를 열어 2000억엔(약 2조1400억원)으로 미쓰비시자동차의 주식 34%를 인수하는 방안을 공식 승인했다. 연비 조작 파문으로 위기에 빠진 미쓰비시의 경영권은 닛산으로 넘어간다. 미쓰비시는 닛산의 자본으로 어려운 재무 상황을 개선하고, 닛산은 동남아시아 등 신흥국에서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로 인기가 높은 미쓰비시를 인수해 해외시장 개척에 시너지를 거둘 것으로 자동차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이에 앞서 세계 1위 자동차 회사인 일본 도요타는 올 1월 말 다이하쓰의 주식을 사들여 100% 자회사로 만들기로 했다. 동남아시아 시장 강화를 위한 포석이다.

세계 1위 자동차 회사인 일본 도요타가 마쓰다, 스즈키 등 일본 중견 회사들과 제휴하고, 다이하쓰의 잔여 지분 인수를 진행하면서 일본 자동차업계의 재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사진은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 사장.

최근 미국 투자은행 제프리스그룹은 일본 자동차 회사가 현재 8곳에서 2020년엔 3곳 이하로 정리될 것으로 예상했다. 제프리스의 나카니시 다카키 자동차 애널리스트는 "도요타의 다이하쓰 지분 인수는 일본 자동차 업계의 재편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라며 "일본은 자동차 회사가 너무 많기 때문에 이런 움직임은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일본은 현재 도요타와 정부가 힘을 합쳐 자동차 산업 재편을 시도하고 있는 중"이라며 "민관(民官) 합동의 '팀 재팬(Team Japan)'이 출범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사상 최대 영업이익 내는 도요타, 막대한 자금력으로 합종연횡 주도

일본 자동차 산업 재편의 양대 축 중 하나는 거대 기업 도요타다. 지난 2010년 1000만대 리콜 파문과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사태로 어려움을 겪었던 도요타는 최근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고 있다. 2015 년(2014년 4월~2015년 3월)에 전년보다 20% 늘어난 2조7506억엔(약 29조6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도요타는 2016년에도 3.8% 늘어난 2조8539억엔(약 30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순이익도 전년 대비 6.4% 늘어난 2조3126억엔(약 24조87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연간 30조원에 가까운 돈이 쌓이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도요타는 일본 내 중견회사들과 제휴하거나 지분 확대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마쓰다와 제휴한 것이 대표적이다. 도요타는 수소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기술을 공유하는 대신 마쓰다가 보유한 고출력·고연비의 '스카이액티브' 기술을 활용, 상대적으로 뒤처진 내연기관 차량 연비를 6~11% 정도 높인다는 전략이다. 계획대로 연비 상승 효과가 발생하면 도요타의 내연기관 연비는 글로벌 업계 최고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도요타는 경차를 앞세워 인도 자동차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스즈키와도 제휴를 추진 중이다.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시장 확대 노하우를 스즈키와 공유해 신흥국 내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다이하쓰 인수까지 끝나면 도요타의 글로벌 자동차 시장 공략은 한층 더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팀 재팬' 적극 지원하는 일본 정부

또 다른 축은 일본 정부다. 과거 일본을 대표하던 전자, 철강산업 등 제조업이 지지부진하자, 일본 정부는 자동차 산업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 주요 산업의 무역 흑자 중 업종별 비율을 보면 전자와 철강은 2009년 대비 각각 21%포인트, 1%포인트씩 감소했지만, 자동차는 44%에서 74%로 30%포인트 급등했다. 다른 국가 대비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자동차 산업의 효율성을 더 높이겠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의도다.

일본 정부가 2014년 만든 산업경쟁력강화법도 인수 합병을 쉽게 만들고 있다. 이 법은 중복 사업 통합을 추진하는 업체가 자발적으로 계획을 수립하면 정부가 이를 검토·승인함으로써 M&A 절차를 간소화하고, 세제 및 금융 혜택을 부여하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개별 자동차 회사들의 기술 경쟁력은 높지만 업체가 난립해 있어 문제"라는 시각이 많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현재 급격히 벌어지고 있는 일본 자동차 산업의 재편 시도는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소수 금융회사가 주요 업체 최대 주주로 있는 자동차 회사들 간의 협력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렇게 될 경우 주요 시장에서 일본 업체와 직접 경쟁하고 있는 현대·기아차 등 국내 자동차 회사들에 새로운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