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상위권 대학의 사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강모(21)씨는 이번 학기가 끝나면 휴학할 예정이다. 지난해만 해도 그는 원하던 대학에 입학한 게 자랑스러워서 '과잠(대학과 학과 이름을 드러내는 단체복)'을 입고 학과 모임과 MT에 활발히 참석했다. 강씨는 "2학년 때부터 수업에 신경을 쓰다 보니 이 학과가 내 진로나 적성에 맞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게다가 취업이 잘될 것 같지 않아 불안하기도 했다. 한 학기 내내 학과와 동아리 모임에도 안 나가고 고민했다"고 했다. 그는 올 하반기에 어학연수를 하면서 복학 이후의 일을 계획하기로 했다.

대학에 유령이 떠돌고 있다. '대2병(大二病)'이라는 유령이다. 신입생티를 벗고 2학년에 올라간 뒤 생기는 증상이다. 전공이 자신과 안 맞거나, 취업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고, 졸업 후에 뭘 하고 싶은지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에 이 병에 걸리게 된다. 지난 1월 MBC '힐링캠프'에 한 시청자가 "요즘 '대2병'이라는 게 있는데 모든 게 자신이 없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은 병이다. 그 병에 걸려 고민이다"고 상담 사연을 보낸 게 화제가 됐다.

대학생 만화가 난희씨가 지난해 블로그에 그려 올린 ‘대학생 만화―대2병’의 일부. 그는 “나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이 웹툰을 그리게 됐다”고 했다.

예전엔 '중2병'이 있었다. 사춘기에 접어드는 중학 2년생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며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자신감이 충만해서 허세를 부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원래 '대2병'도 '중2병'의 연장선상에서 붙인 별명이었다. 미술관이나 공연장을 다니고 카페에서 책 읽기를 과시하는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을 일컬었다. 하지만 취업 경쟁이 심해지면서 '대2병'의 의미가 바뀌었다.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취업 준비를 하느라 더 이상 문화생활을 할 만한 여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2병'에 걸려 수업 과제도, 동아리 활동도 안 했다는 대학생 박모(23)씨는 "차라리 이런 병을 고등학교 때 걸렸으면 좋았겠다 싶다. 그랬다면 전공을 더 신중하게 선택했을 것 같다"고 했다. 적성과 진로에 상관없이 점수에 따라 전공 학과를 선택하는 입시 풍토도 '대2병'의 원인 중 하나다.

이 신종 질환은 지난해 대학생 만화가 난희(21)씨가 '대2병'의 새로운 정의를 웹툰으로 그리면서 널리 알려졌다. 대학 2학년 때 이 웹툰을 그린 작가는 "1학년 때는 주로 기초교양 수업을 듣지만 2학년 때부터 전공 수업을 많이 수강하기 시작한다. 전공이 심화될수록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워서 전과(轉科)를 고민했다. 같은 과 친구들도 매일 같은 고민을 했었고, 결국 몇몇은 휴학을 하거나 전과를 했다"고 했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대2병'에 대해 "새로운 역할, 임무나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겨날 수 있는 증상"이라며 "의욕을 잃거나 비관적인 생각을 하는 등 우울증 초기 증상을 보인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이럴 때 입대나 휴학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도교수나 합리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가 도움을 받는 게 좋다"고 했다.

'대2병'에 걸렸다가 나아진다고 해도 대학 생활이 평온해지는 것은 아니다. 2학년이 지나면 3학년이 된다. 요즘 대학생들은 이때를 '사망년'이라고 부른다. 취업이나 고시 준비를 하느라 "죽겠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지난 3월 16일 통계청이 발표한 청년 실업률은 12.5%. 이 수치가 높아질수록 '대2병'이나 '사망년'처럼 대학가를 떠도는 유령은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