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한국은행을 통해 재원을 확충하면 우선 기존 대기업 여신에 대한 부실 반영 작업부터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두 은행은 "그동안에도 충실히 대손충당금을 적립해왔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실제로는 시중은행에 비해 부족하다는 것이 금융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추가 충당금 규모는 계산 방법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최소 3조원에서 최대 9조원으로 추정된다.

일부에서는 부실을 한꺼번에 반영하는 '빅배스(big bath)'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다만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대외 신인도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면서 빅배스보다는 점진적으로 부실을 반영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 "국책은행, 추가 충당금 적립 필요한 건 사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전체 기업 대출이 82조원(2015년말 기준)에 달하며 이 가운데 47.5%인 39조원이 대기업 대출이다. 전체 대출의 12.4%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내지 못하는 이자보상배율 1 미만 기업에 지급됐다.

빅배스(big bath)는 목욕을 해서 때를 씻어낸다는 뜻으로, 회사가 과거의 부실을 한 회계년도에 모두 반영해 손실을 전부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대규모로 집행돼 있는 기업대출을 솎아내려면 충당금 반영은 불가피하다.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대우조선해양, 한진중공업 등 구조조정 대상 기업 여신을 실질에 맞게 재분류할 경우 국책은행은 최소 2조5000억원, 최대 6조6000억원을 충당금으로 쌓아야 한다고 진단했다.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해운, 조선업 전체로 확대하면 충당금 규모는 최대 9조원에 이른다.

삼성선물도 보고서에서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이 시중은행 수준으로 충당금을 적립하려면 7조2730억원(산업은행 4조7450억원, 수출입은행 2조5280억원)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부실채권(고정이하여신) 대비 충당금 적립률은 산업은행이 78.6%, 수출입은행이 79.8%에 그친다. 시중은행 평균은 143%가량이다.

9일 금융권 관계자는 "규모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추가 충당을 실시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당국 관계자는 "한국은행에 출자를 요청한 것은 결국 국책은행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떠앉게 될 부채에 대한 리스크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라며 "부실 반영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 빅배스 나서기로 한 농협銀…산은·수은 "우리는 사정 다르다"

두 국책은행과 함께 특수은행으로 분류되는 농협은행은 최근 빅배스를 단행할 것임을 시사했다.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은 3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농협은 조선·해운·철강 등 5대 취약산업에 대한 여신 규모가 커 빅배스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며 "수익이 덜 나고 적자가 나더라도 한 번쯤은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말했다.

농협지주는 최대주주인 농협중앙회에 대한 배당(명칭 사용료 지급) 때문에 그동안 충당금 적립 등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향후 실적에 대한 우려감이 오히려 심해졌는데 빅배스를 통해 개선하겠다고 공식화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산은, 수은 등 국책은행 또한 빅배스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두 은행은 최근 몇년 동안 지속해서 정부에 출자를 요청했던 상태"라며 "지금처럼 이슈가 됐을 때 한꺼번에 부실을 털어내고 그만큼 지원을 받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다만 산은, 수은측은 대외 신인도를 감안했을 때 빅배스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수은의 한 관계자는 "수은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연간 130억달러를 조달하는 은행"이라며 "빅배스를 단행하면 해외 투자자들이 수은의 부실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산은 관계자는 "해운의 경우 두 회사가 자율협약(채권단 공동 관리)에 들어가 이미 충당금을 쌓은 상태"라며 "결국 조선업이 관건인데 이는 구조조정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며 아직 빅배스 여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