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기·세탁기·냉장고·에어컨·TV. 다섯 종의 제품은 가정에서 꼭 필요한 생활가전 제품이다.

옷을 빨기 위해서는 세탁기가 있어야 하고, 방송 프로그램을 즐기려면 TV, 냉방을 위해서는 에어컨, 음식을 저장하는 데는 냉장고가 필요하다.

청소기는 나머지 네 가지 종류의 생활가전 제품과는 사뭇 다르다. 우선 세탁기·냉장고·에어컨·TV는 모두 집안에 거치해둔 채 쓰는 제품인 반면, 청소기는 가지고 이동하면서 쓰는 제품이다. 또 대부분의 생활가전 제품은 주부처럼 집안 살림을 책임지는 여성들이 주로 쓰는 반면, 청소기는 점점 남성들이 쓰는 가전제품으로 변신 중이다. 아내가 설거지나 빨래를 할 때, 남편이 청소기로 집안을 청소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청소기는 개발 과정부터 디자인까지 다른 생활가전 제품과는 판이하다. 지난 2월 출시된 무선 스틱형 청소기 '파워스틱'을 개발한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개발팀 인터뷰를 통해 청소기는 다른 제품과 어떤 점이 다른지, 어떻게 개발하는지 들었다.

삼성전자의 최신 무선 스틱 청소기인 파워스틱을 개발한 삼성전자 유현상 상무, 개발팀 유동훈 수석, 디자인팀 천동원 수석, 최형섭 수석(왼쪽부터)이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1ℓ에 30만원짜리 먼지 수입, 미용실에선 머리카락 주워오기도

신제품 청소기 '파워스틱' 개발을 이끈 삼성전자 유현상 상무는 "청소기 개발은 과자 부스러기, 먼지, 머리카락과 싸우는 일과 같다"고 말했다. 청소기의 흡입력을 시험하기 위해 온종일 먼지, 머리카락 등과 씨름해야 하기 때문이다. 청소기 개발팀 사무실에 가면 여기저기 과자, 먼지, 머리카락이 흩뿌려져 있고, 직원들이 온종일 청소기를 돌리고 있다. 물론 청소가 아니라, 제품 테스트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쓰이는 먼지, 머리카락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유 상무는 "예전만 하더라도 인근 미용실을 찾아다니며 자르고 남은 머리카락을 얻어와 사무실에 뿌려놓고 청소기를 테스트했다"며 "이제는 머리카락, 먼지를 사서 쓴다"고 말했다. 머리카락은 인모(人毛) 가발을 사서 뽑아 쓴다. 인종별로 가발을 다양하게 사서 테스트한다. 미용실에 있는 머리카락은 가위로 잘린 것이기 때문에 실제 생활환경에서 발생하는 것과는 다르다.

1ℓ짜리 깡통에 30만원씩 하는 먼지는 해외에서 사온다. 한국에는 먼지를 전문적으로 파는 업체가 없기 때문이다. 유 상무는 "돈 주고 먼지 덩어리를 사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사들인 먼지·머리카락을 잘 청소하는 것이 청소기 개발팀의 과제다. 삼성전자 개발팀은 이번 파워스틱 신제품을 개발하면서 청소기 출력을 크게 키웠다.

기존 제품은 10W(와트) 수준이었지만, 이번 제품은 3배 늘어난 30W의 출력이다. 고출력은 흡입력이 강해져 그만큼 청소를 깔끔하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1분당 10만번까지 회전하는 특수 모터를 탑재했다. 예전 청소기에 주로 쓰던 모터는 1분당 3만번 정도 회전했다. 3배 이상 빨리 돌면, 그만큼 흡입력이 세진다.

청소기를 쓸 때 가장 귀찮고 불편한 일은 먼지통에 쌓인 먼지를 버리는 일이다. 먼지통을 열었을 때 먼지가 마구잡이로 날려, 다시 주변을 더럽히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개발팀 유동훈 수석은 "먼지통에는 소용돌이를 일으켜 무거운 먼지와 가벼운 공기를 분리시키는 사이클론 기술을 적용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먼지와 공기를 분리시키는 이유는 나중에 먼지통을 비울 때 손쉽게 만들기 위해서다. 또 먼지통 필터, 청소기 브러시에는 버튼을 눌러 레버만 잡아빼는 방식의 이지클린 기능을 적용했다.

예전에는 필터나 청소기 브러시 사이사이에 낀 먼지, 머리카락은 손으로 하나하나 빼야 했다. 하지만 이지클린 기능을 이용하면 레버를 쭉 잡아 빼는 과정에 필터가 있어 먼지가 자연스럽게 걸러진다. 정리하기 쉽지 않은 부분을 손쉽게 해결한 것이다.

스포츠카를 연상하는 청소기의 디자인

디자인에서도 청소기는 일반 가전제품과 달랐다. TV·냉장고·세탁기 등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중요시한다. 집 안에 거치해두고 쓰는 제품이기 때문에 인테리어와 잘 어울려야 하고, 가구처럼 집을 꾸며줘야 하기 때문이다.

청소기는 다르다. 디자인을 맡은 천동원 수석은 "청소기는 철저하게 남성 위주의 제품"이라며 "디자인도 여성이 아닌 남성을 겨냥해 만들었다"고 말했다. 파워스틱을 보면 손잡이 부분은 매끈하고, 몸통으로 내려가는 부분은 유려한 곡선이다. 마치 스포츠카처럼 몸통 자체가 곡선미를 살린 것이다. 색상은 흰색·노란색·보라색으로 출시됐는데, 가장 인기가 좋은 제품은 흰색과 노란색이다. 천 수석은 "두 가지 색상은 스포츠카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색"이라며 "제품을 눕혔을 때 스포츠카처럼 유려하고 매끈한 느낌을 주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고 말했다.

초경량 소재도 썼다. 고출력 모터를 탑재한 이상, 배터리도 용량이 커야 한다. 이렇게 되면 청소기 무게가 무거워져 사용성이 크게 떨어진다.

최형섭 수석은 "청소기는 무거워지면 사용자의 손목에 가는 부담이 커진다"며 "배터리로 늘어난 무게를 어떻게 다시 줄이느냐가 핵심 과제였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이를 위해 청소기 외관을 초경량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흡입력과 같은 성능은 좋아졌지만 무게는 2.7㎏ 수준으로 유지한 것이다. 플라스틱 외관의 두께는 최대한 얇게 해 가벼운 느낌을 강조했다.

유현상 상무는 "청소기 개발은 자동차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며 "바퀴로 움직이면서 쓰는 제품이고, 출력이 중요하고, 남성적인 디자인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