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수은 직접출자안에 신중한 입장 밝혀
"손실 최소화가 중앙은행 발권력 동원의 원칙"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권력을 동원한 국책은행 자본확충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담보 없는 지원은 '손실 최소화'라는 중앙은행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게 이 총재의 설명이다. 대신 한은이 담보를 바탕으로 은행에 직접 대출을 해주는 방식인 은행자본확충펀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 총재는 4일(현지시간) 제19차 '아세안(ASEAN)+3(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 참석차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머물던 중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런 의견을 밝혔다.
그는 "기업 구조조정에 발권력을 이용하려면 납득할만한 타당성이 필요하고 중앙은행이 투입한 돈의 손실이 최소화해야 한다는 게 기본적인 원칙"이라며 "(국책은행 자본확충의 경우) 회수할 수 있는 확실한 형태가 있든가, 아니면 출자 형태를 안 취하면 된다"고 밝혔다.
지난 4일 기업 구조조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관계기관 협의체가 공식적인 첫 활동에 들어간 상황에서 한은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 총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 사례를 들어 '손실 최소화'라는 중앙은행의 기본원칙을 강조했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구조조정에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 게 미국 연준인데 민간회사인 AIG나 제너럴일렉트릭(GE)에 출자가 아닌 대출을 해준 것은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중앙은행의 기본 책무 때문"이라며 "AIG에 대출을 할 때는 전 재산을 담보로 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손실 최소화 원칙에 대해 "중앙은행이 손해를 보면서 국가 자원을 배분할 권한은 없다"며 "한국은행법상 확실한 담보가 있어야 발권력을 동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손실 최소화 원칙에서 보면 아무래도 출자보다 대출이 부합한다"며 "다만 출자 방식을 100% 배제하는 것은 아니고 타당성이 있으면 그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는 정부가 거론해 온 한은의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에 대한 출자에 신중한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국책은행에 대한 한은 출자는 담보 없이 돈을 지원하는 것인 만큼 국민적 공감대라는 여건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수출입은행 출자는 가능하지만 산업은행 출자는 산업은행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러면서 이 총재는 한은이 지원금을 회수하고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2009년 운영된 자본확충펀드를 제시했다. 자본확충펀드는 한은이 시중은행에 채권을 담보로 대출하고 은행들은 그 자금으로 자본확충펀드를 만들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낮은 은행을 다시 지원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 총재는 구조조정과 관련해 한은이 쓸 수 있는 구체적인 수단도 밝혔다. 그는 "중앙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 의결만 거치면 되기 때문에) 상황 판단해서 움직이는 게 빠르다"며 "기업들이 발행하는 회사채가 소화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길 경우 회사채 지원하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또 금융중개지원대출도 구조조정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을 지원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 총재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어떤) 역할도 마다치 않겠다는 게 한은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금융안정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조치는 시나리오를 다 짜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발권력 동원을 위해서는 국회 동의를 얻는 등의 국민 공감대 형성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총재는 "유일호 부총리께서 국회와 소통하고 국민의 공감대를 획득하겠다고 하신 말씀은 아주 적절하다"며 "정부가 주도하는 구조조정에 중앙은행이 들어가려면 그렇게 해야 하는 불가피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앞서 유 부총리는 지난 4일 협의체에서 구조조정 정책의 윤곽이 나오면 국회에 설명하는 방식으로 국민적 공감대를 획득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