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사들의 의약품을 국내에서 판매하는 방식으로 매출 절반 이상을 올리는 제약사라고요? 두고 보세요. 최근 바이오제약 산업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의 실체를 가장 먼저 보여주는 제약회사가 될 것입니다."
국내 제약회사 연구소장 중 유일한 여성인 남수연 유한양행 중앙연구소장(50, 전무)은 '기업 위상에 어울리지 않게 R&D에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다소 공격적인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유한양행은 2014년 국내 제약사 중 처음으로 연 매출 1조 원을 뛰어넘은 국내 간판 제약회사다. 올해 설립 90주년으로 국내 제약산업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유한양행은 그동안 신약 연구개발(R&D)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글로벌 제약사들의 의약품을 판매하며 매출을 끌어올리는 사업 구조였기 때문이다.
이런 유한양행이 남 소장을 중심으로 한국 바이오제약 산업의 체질을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선구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지난해 한미약품의 대규모 기술 수출 이후 꿈틀대고 있는 국내 바이오 벤처들의 우수한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글로벌 제약 시장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남 소장이 자신감을 내비친 이유가 있다. 유한양행이 7년 동안 공을 들인 퇴행성 관절염 치료제의 임상2상이 올해 완료된다. 2018년 판매 허가가 목표인 이 치료제의 후보물질은 바이오벤처가 개발했다. 미국 바이오벤처 소렌토와 공동으로 개발하는 면역항암치료제도 혁신 신약이 될 가능성이 크다. 유한양행은 올해 3월 소렌토와 면역항암치료제 개발을 위해 합작사 '이뮨온시아(ImmuneOncia Therapeutics)'를 설립했다.
남 소장은 "현재 임상 3상이 진행 중인 고지혈증, 당뇨병, 고혈압 복합 치료제 등 개량 신약의 임상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내년 말 출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여기에 퇴행성 관절염 바이오 신약과 면역항암치료제가 보태지면 유한양행은 명실상부한 국내 대표 혁신 신약 기업으로 올라설 것"이라고 말했다.
남 소장은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세브란스병원 조교수로 재직한 의사 출신이다. BMS와 로슈 등 다국적 제약사를 거쳐 2010년 유한양행 중앙연구소장으로 합류했다. 남 소장을 중심으로 유한양행은 국내 바이오제약 업계의 '잠룡'으로 떠오르고 있다.
◆ 신약 물질 개발한 바이오벤처의 가치 올리는 것이 차별화 전략
-오픈이노베이션의 실체를 보여주겠다고 했습니다. 유한양행이 바이오벤처와 오픈이노베이션을 잘할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인가요.
"우선 유한양행의 중앙연구소가 가지고 있는 R&D 역량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신약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바이오벤처의 연구 성과물이 유한양행의 R&D와 시너지가 날 수 있느냐를 먼저 평가합니다. 그런 뒤 바이오벤처와 팀워크를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글로벌 제약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을지를 판단합니다. 바이오벤처 기업들은 좋은 기술을 개발해도 이 기술이 시장에서 통할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은 시장 규모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데 바이오벤처들은 무작정 시장 규모를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장 규모가 작아도 빠르게 상용화가 가능한지를 보는 것입니다. 신약 개발에서 시장 진입 타이밍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국내 바이오벤처 업계에서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바이오벤처나 대학 연구소, 공공 연구기관에서 함께 개발해 보자는 제안이 어느 때보다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한미약품의 성과가 물밑에서 크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함께 연구해보자는 제안이 많다 보니 옥석을 가리는 작업도 중요합니다. 실제 연구결과 데이터의 퀄리티나 기반 기술을 검증합니다. 그런 뒤 해당 연구의 전세계 개발 동향, 경쟁력, 임상 개발 전략, 사업화 전략, 추진 일정 등을 함께 검토합니다. 이 과정에서 유한양행이 투자해야 하는 비용과 투입해야 하는 자원을 고려해 해당 기술의 가치를 평가합니다. 지분 투자나, 조인트 벤처 등 다양한 방안 중 가장 효율적인 방안을 찾아 결국 바이오벤처의 기술 가치를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논의합니다.
결론적으로 유한양행과 함께 하면 기술의 가치를 보다 명확하게 높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유한양행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의 핵심입니다."
◆ 면역항암 치료제 개발, 글로벌 제약 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 될 것
-유한양행은 올해 초 면역항암 치료제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선언했습니다.
"미국의 항체신약 개발 전문 바이오벤처인 소렌토와 면역항암 치료제 개발과 상업화를 위해 '이뮨온시아'라는 합작 벤처를 설립했습니다. 1차로 1000만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향후 몇 년 내에 면역항암 치료제가 제약 시장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합작 벤처를 설립한 것도 유한양행의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에 따른 것입니다. 항암제 개발에는 R&D 비용이 많이 듭니다. 독자적으로 개발하면 그만큼 리스크가 있습니다. 국내 제약회사들은 리스크를 줄이면서도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기술에 전략적, 공격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면역항암 치료제가 어떤 점에서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나요.
"항암 치료제의 역사는 크게 3단계로 나뉩니다. 먼저 세포 독성 치료제가 나왔습니다. 암세포 뿐 아니라 정상세포도 공격하는데 암 환자의 생존율이 1년 미만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생명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표적 항암치료제가 나왔습니다. 암세포만을 골라서 공격하는 것이지요.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표적 항암 치료제에 대한 내성이 생겨 한계가 있습니다. 암세포가 굉장히 영리하기 때문입니다.
면역 항암 치료제는 개념이 다릅니다.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에 있는 면역세포를 활성화해 이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암에 대한 면역이 생긴다는 것은 암 재발이나 전이를 예방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만 현재 개발된 면역 항암 치료제에 효과를 보이는 환자 비중이 20~30%에 불과합니다. 이 비율을 올리는 면역 항암 치료제를 개발하는 게 글로벌 제약 시장에서 중요한 화두입니다."
-면역항암 치료제 개발에 나서는 유한양행의 R&D 전략은 무엇입니까.
"암세포는 면역세포의 면역기능을 약화시키는 이른바 '최면물질'을 배출합니다.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정상세포로, 반대로 정상세포를 암세포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최면물질을 억제하면 면역세포가 제기능을 할 수 있는데 최면 물질의 종류가 한 두개가 아닙니다. 유한양행은 여러 개의 최면물질을 동시에 억제할 수 있는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차별화된 목표를 세웠습니다.
물론 글로벌 제약사들의 기술력이 앞서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유한양행은 기존 기술을 개선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 차세대 면역항암 치료제를 개발할 계획입니다."
◆ 올해 R&D 1000억 이상 투입...2018년까지 글로벌 혁신 신약 3개 내놓는 게 목표
-국내 제약기업들이 앞다퉈 R&D 투자를 늘리고 있습니다.
"유한양행도 올해 1000억원 이상을 R&D에 집중 투입할 예정입니다.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중앙연구소 확장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연구소 내에서 바이오의약품 개발을 위한 동물 실험까지 할 수 있는 실험실 업그레이드를 위한 설비 투자도 하고 있습니다.
현재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을 통해 4~5개의 바이오벤처와 신약 파이프라인을 만들 계획입니다. 회사 경영진도 적극적으로 격려하고 있습니다."
-최근 R&D 투자에 적극적인 바이오제약 산업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굉장히 희망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국내 바이오 제약 산업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높이고 있고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글로벌 제약사들도 한국의 신약 R&D 역량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일 중 일부가 바이오벤처와의 논의를 비롯해 글로벌 제약사들과의 네트워킹 및 파트너링입니다. 최근 분위기를 보면 글로벌 제약사 내부에서 한국 담당 인력을 늘리고 있는 게 눈에 띌 정도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유한양행 뿐 아니라 타 제약사들도 보다 많은 기회가 생길 것으로 확신합니다."
-유한양행에 합류한 지 올해 4월로 6년입니다. 개인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
"현재 중앙연구소에 있는 R&D 인원 250명과 함께 2018년까지 3개의 혁신 신약을 글로벌 시장에 내놓는 게 목표입니다. 입사한 지 8년 만에 유한양행이 글로벌 제약 회사 대열에 합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유한양행이 한국의 학계, 바이오벤처, 연구기관 등이 개발한 우수한 기술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술로 키우는 데 교두보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국내 연구 역량의 수준은 생각 외로 매우 높지만 사장되는 기술이 많습니다. 신약은 타이밍이 중요한데 이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으로 국내 신약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