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동의를 받지 않고 정부가 할 수 있는 방안으로"...자본확충 규모는 여러 단계 거쳐야 윤곽
정부, 공기업 주식 현물출자...한은, 수출입은행 출자-국책은행 발행 채권 우회 매입 '유력'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데 '실탄'이 얼마까지 필요할까. 정부와 한국은행이 4일부터 가동하는 국책은행 자본확충을 위한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앞두고 자본확충 규모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구조조정의 범위와 속도, 방식에 따라 구체적 자금 규모가 달라질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6~7월은 돼야 윤곽이 드러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일(현지시각)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체류하던 중 기자간담회를 열고 구조조정 재원에 대해 "(야당이 법인세 인상으로 5조원을 마련하자고 하지만) 5조원만 가지고 될 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그는 "용선료 협상 결과를 봐야 한다"고도 했다.

기업 구조조정의 자금 마련을 담당하는 KDB산업은행(왼쪽)과 수출입은행(오른쪽).

◆ 정부, 공기업 주식 현물출자...한은, 수출입은행 출자-국책은행 발행 채권 우회 매입 '유력'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이 필수적이다. 조선-해운 업체들에 대한 대출의 상당액이 회수 불가능한 부실채권이기 때문에 이 부실을 털어내려면 은행 건전성 악화를 막기 위해 자본확충이 필요하다. 은행의 건전성 지표인 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BIS) 비율은 8%를 넘으면 별 문제가 없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10%를 넘어야 안정적이라고 본다. 국제적으로 금융불안이 이어지면서 BIS비율이 높을 수록 좋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국내 은행들은 BIS 비율을 14%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말 수출입은행의 BIS 비율은 10.11%였지만, 금융위는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5~6%대로 떨어질 수 있다고 본다. 산은의 BIS 비율은 14.28%로 시중은행 수준으로 안정적이다.

그러나 구조조정이 본격화 될 경우 수은은 물론이고 산은도 안전하지 않다. 구조조정 대상인 조선업과 해운업의 위험노출액(대출·보증·회사채 포함) 약 60% 이상이 산은과 수은에 집중돼 있어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본 규모가 커질수록 이들의 BIS 비율은 하락하게 된다. 국책은행의 자본확충이 시급한 이유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국책은행의 자본확충과 관련해 기획재정부의 재정정책과 한은의 통화신용정책을 함께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광림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한은법이나 산은법을 개정하는 등 국회 동의를 받는 방안은 시간이 너무 걸려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며 "국회 동의를 받지 않고 정부가 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고, 그런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토지주택공사(LH), 도로공사 등 공기업 주식을 현물출자 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정부 재정을 활용한 현금출자는 예외적으로 일부 사용될 수 있다. 정부가 국회 동의가 필요한 재정 활용을 선택할 가능성은 낮다. 김 정책위의장 말대로 국회 동의를 얻는 데는 야당의 합의를 이끌어 내기가 쉽지 않고, 상대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한은이 수출입은행에 출자하거나 우회적으로 국책은행 발행 채권을 매입하는 방안도 추진될 전망이다. 수출입은행 출자는 금통위 의결만 거치면 가능하다. 한은이 정부 보증 채권이 아닌 국책은행 발행 채권을 직접 매입하기 위해서는 한은법 개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은행 자본확충펀드처럼 다른 금융기관에 한은이 대출해 우회적으로 국책은행 발행 채권을 매입하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에는 한은법 개정은 필요 없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구조조정 1순위 기업이다. 이들은 용선료 협상에 성공해야 법정관리라는 최악의 수를 피할 수 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한진해운 본사.

◆ 용선료 인하➝채무조정➝자율협약 또는 법정관리…단계 거치면 6~7월 윤곽 나올 듯

국책은행에 대한 자본확충 규모가 얼마나 필요할 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먼저 유 부총리가 언급한 '용선료(선박 임대료) 협상'이 우선이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용선료 인하, 사채권자 채무조정을 조건으로 자율협약을 신청했다.

현대상선이 정부로부터 받은 용선료 협상 체결 기한은 이달 중순까지다. 현대상선은 해외선사 22곳 중 21곳과 협상을 마무리했다. 한진해운의 경우 지난달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했고, 용선료 협상은 3개월 내로 완료하겠다고 발표했다.

용선료 협상 결과가 긍정적이라면 사채권자 채무 조정을 거쳐 채권단과 기업이 자율적으로 협약을 정한 뒤 채권단에게 기업 관리를 맡기는 자율협약에 들어갈 수 있다. 구조조정을 위한 국책은행의 자본확충 규모도 상대적으로 적은 수준에 그칠 수 있다.

그러나 용선료 협상에 실패한다면 이들은 법정관리 절차에 착수해야 한다. 절차가 시작되면 기업은 채무변제계획을 작성해 채권자의 동의를 받은 후 회생계획 인가를 받게 된다. 기업의 모든 채권과 채무가 동결된 후 채무 조정이 이뤄져 금융기관을 비롯해 모든 채권자가 손실을 부담하게 된다. 기업의 손실과 부실채권의 규모, 이에 따른 국책은행의 자본은 어느 정도 투입되는지 등이 모두 계산돼야 한다.

이 외에도 분식회계 등으로 감사원의 조사를 받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구조조정 계획이 마련돼야 하는 등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이 때문에 정부 안팎에서는 이 모든 단계를 거쳤을 때 빠르면 6월말, 늦어도 7월에는 국책은행 자본확충 규모가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국책은행 자본확충 규모가) 최대한 빨리 나와야겠지만 구체적인 것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며 "TF 논의 진행 상황을 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