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들이 페르시아로 가는 문이 열렸다.

이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371억달러(한화 52조원) 규모의 사업을 수주했다. 이란을 국빈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2일(현지시각) 수도 테헤란에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경제 협력 방안에 합의하고 공동 성명을 채택했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은 “371억달러 규모의 프로젝트 30건에 대해 양해각서(MOU)와 가계약 등을 맺었다. 이 사업들은 수주가 거의 확실시 된다”고 말했다. 바흐만 정유시설 프로젝트(20억달러)가 2단계로 확대 추진할 경우 80억달러 늘고, 테헤란 쇼말 고속도로 프로젝트도 당초 10억달러에서 15억달러로 늘어나 모두 456억달러로 집계됐다.

이란을 국빈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사드아바드 좀후리궁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히잡의 일종인 '루싸리'를 착용한 채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 굵직한 프로젝트만 30건…250억달러 파이낸싱 지원도

주요 분야별 수주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121억달러 규모의 철도, 도로, 수자원관리 프로젝트에 참여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스파한-아와즈 철도(53억달러) ▲베헤쉬트 아바드 댐 및 도수로 사업(27억달러) ▲차바하-자헤단 철도공사(17억달러) ▲테헤란-쇼말 고속도로(10억달러)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석유·가스·석유화학 등 238억달러에 달하는 에너지 재건사업에도 우리 기업들의 참여 물꼬가 트였다. 이란은 2020년까지 석유.가스.석유화학 등 에너지분야에 총 185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비드 볼란드 가스정제 시설(30억달러) ▲바흐만 정유시설(20억달러) ▲이란-오만 해저 파이프라인 건설(15억달러) 등의 대규모 사업에 참여키로 했다.

발전소 건설은 10개 프로젝트에 참여를 추진하기로 했다. ▲박티아리 수력발전(19억달러) ▲648MW급 카룬 수력발전소(5억불) 등 모두 58억달러 규모다.

의료분야 프로젝트도 17억달러 규모의 이란병원 건설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 사업은 프로젝트 시행 병원 목록을 지정한 뒤, 한국 건설사를 지정하면 한국수출입은행이 파이낸싱을 해주는 방식으로 MOU를 체결했다.

이번에 MOU를 체결한 프로젝트 중 바흐만 정유시설 프로젝트는 2단계까지 확대 추진되면 80억달러로 규모가 더 커진다. 테헤란-쇼말 고속도로 프로젝트도 15억달러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이란에서 얻은 경제 성과는 456억달러(52조원)로 늘어난다.

한국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는 우리 기업의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250억달러를 금융지원하기로 했다. 이는 우리나라가 단일 국가에 제공하는 파이낸싱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이란은 수년간의 경제 제재 여파로 자국내 유동성이 부족한 상태다. 정부가 공사를 발주해도 즉시 돈을 줄 수 없다. 이 때문에 이란에서는 프로젝트 사업 입찰 시 파이낸싱 조달 방안도 함께 갖고 오길 요구해왔다.

최태원(왼쪽에서 세번째) SK그룹 회장 등 경제사절단은 1일 이란 테헤란의 에스피나스 팰리스 호텔 보르나홀에서 현지 사업 현황과 진출 전략을 논의하는 워크숍을 개최했다. 왼쪽부터 유정준 SKE&S 사장, 문종훈 SK네트웍스 사장, 최 회장, 김준 SK에너지 사장.

◆ 물 만난 기업들…석유자원 확보, 대형 프로젝트 수주 대박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해 6명의 CEO가 이란을 찾은 SK그룹은 자원 확보·인프라 건설·정보통신기술(ICT) 진출 등 그룹의 전 역량을 기울인 ‘패키지 공략법’을 들고 나왔다.

특히 석유화학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은 이란산 원유 수입량을 늘릴 예정이다. 현지 자원개발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비잔 잔가네 이란 석유장관은 1일 테헤란에서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을 만나 “한국 회사가 이란 석유부 산하 에너지 회사들과 만나 다양한 협력을 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LS그룹은 인프라 구축 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란은 오랜 경제 제재 기간 동안 전력 인프라가 노후한데다 발전량 확대 계획이 세워지면서 송배전 사업 기회가 커질 전망이다.

LS그룹 관계자는 “에너지 인프라분야에서 새로운 사업기회가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 트랙터, 사출, 플랜트 분야의 대형 프로젝트 발주가 예상돼 LS전선, LS산전, LS엠트론, LS메탈 등 계열사들의 진출이 활발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 기간에도 이란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해온 대림산업은 인프라 분야에서 단일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사업을 따냈다.

대림산업은 이란교통인프라개발공사(CDTIC)와 53억달러(6조340억원) 규모의 이스파한‧아와즈 철도 건설사업에 대한 가계약을 체결했다. 철도 건설사업은 이란 제2광역도시권 이스파한과 이란 남서부 중심 도시 아와즈를 잇는 541km 길이의 철도 노반을 건설하고 차량을 공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대로템은 2004년 동력분산식(DMU) 철도차량 120량을 이란에 공급하기로 했지만, 경제제재가 시작되면서 중단됐다. 현대로템은 대(對)이란 경제제재가 시작된 이후에도 이란에 남아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다방면으로 협력해왔다.

이란은 보상 차원에서 철도 30량을 추가해 철도 150량에 대한 우선 공급권을 현대로템에 줬다. 현대로템과 이란은 올해 2월 MOU를 맺었고, 합의각서(MOA) 체결을 준비 중이다.

대우건설과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테헤란과 카스피해(海)를 잇는 쇼말고속도로 공사 수주에 대한 MOU 체결을 준비 중이다. 15억달러(1조7100억원) 규모 사업이다.

2일 이란 테헤란 에빈 호텔에서 열린 한-이란 1:1 비즈니스 상담회에서 참석자들이 무역 상담을 하고 있다.

◆ 대한상의-이란상의, 양국 데스크 설치키로…비즈니스 소통채널 마련

대한상공회의소와 이란상공회의소는 양국 민간 경제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각국에 ‘이란-코리아 데스크’를 설치하기로 했다. 코트라와 이란 산업광물무역부도 각각 이란데스크와 코리아데스크를 설치하기로 했다.

대한상의와 이란상의는 3일 이란 테헤란 에스피나스호텔에서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과 파하드 샤리프 이란상의 부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민간 경제협력 확대 MOU’를 체결했다. 1884년 출범한 이란상의는 이란의 대표 경제단체로 산업, 광업, 무역, 서비스 및 투자를 포함한 경제의 모든 분야에서 국제관계를 조정하고 있다.

두 기관은 협약을 통해 대한상의에 ‘이란 데스크’를, 이란상의에 ‘코리아 데스크’를 각각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각 데스크는 진출희망 기업들에게 무역, 투자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이미 진출한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조사해 정부에 건의하는 소통채널로 활용된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이란·코리아 데스크를 통해 양국 기업인 간 네트워킹 기회를 제공하고, 비즈니스 현안을 파악해 새로운 사업기회를 공유하는 등 역할을 확대해가겠다”고 말했다.

대한상의와 이란상의는 양국 경제 협력을 위해 ‘한-이란 경제협력위원회’를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1989년에 설립된 한-이란 경협위는 2005년 ‘제7차 회의’를 끝으로 활동이 중단된 상태다. 대한상의는 현재 공석인 이란측 경협위 위원장이 선임되는 대로 한-이란 비즈니스 포럼, 투자 환경 설명회 등 민간 경제협력 행사의 구체적인 일정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