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건·고소영의 '신천리 주택'으로 세계 건축상 수상…원빈의 루트하우스도 설계"
"계단, 지붕, 옥상 등을 '풍경의 광장'으로 뒤집은 창의적인 발상"
"자연과 건축을 조화시키는 한국형 '리트리트' 문화 제시"

곽희수 건축가는 “장소와 사건, 이야기가 만나면서 공간의 가치가 창출된다”고 말했다. 그는 홍익대를 졸업하고 2003년부터 이뎀도시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건축이란 단순히 건물을 만드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건물을 통해 새로운 환경을 창조하고, 그곳에 있는 사람 사이에서 내러티브(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겁니다.”

곽희수 이뎀도시건축 소장(49)이 정의한 건축의 의미다. 곽 소장은 “공간의 가치는 결국 공간 속 사람으로부터 나온다”고 강조했다. 이어 “도시와 자연,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그 관계를 생산해 내는 게 건축가의 몫이다”라고 설명했다.

장동건·고소영의 의뢰로 지어진 신천리 주택은 중앙 마당을 건축물이 둘러싸고 있는 구조로 지어져 일반 주택과 차이점이 있다. 중앙 마당에서 레저 활동을 할 수 있고, 건물 각 층에서 마당을 내려다 볼 수도 있다. 지하는 주차장, 1층은 주방·거실·멀티룸, 2층은 부모와 자녀의 방, 3층은 방과 옥외수영장이다.

건축가 곽희수는 최근 2013년 12월 완공한 배우 장동건·고소영의 ‘신천리 주택’으로 세계건축(World Architecture·WA)상을 받으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세계건축상은 각국의 건축가들이 출품한 건축물과 설계안 중 시대적 담론에 대해 날카롭고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는 작품에 주어진다.

“신천리 주택의 위치는 도시와 인접한 산자락입니다. 교외의 조용한 삶을 원하던 건축주의 요구를 들어보니, 공교롭게도 도시생활의 충족요건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익숙한 도시생활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자연과 합일되는 삶의 방식을 고민했습니다. ‘건축안의 경치’는 집안에서 가족이 변화하는 하늘과 바람의 흐름을 느끼는 개념입니다. 가족은 태양의 고도를 중정, 각 층 필로티에서 시시각각 느낄 수 있습니다. 계단은 다양한 방향과 높이로 설계했는데, 경치를 집 내부로 끌어들이고, 각층에서 독창적인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강원도 정선에 위치한 배우 원빈의 집 ‘42번가 루트하우스’는 베벌리힐즈와 강원도라는 상반되는 지역적 특성을 통해 이색적인 주거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건축주의요구조건을 수용, 현대적 감각의 주거 디자인과 함께 향토적인 옛집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는 고소영 장동건 부부 외에도 배우 원빈이 결혼 전 부모님께 선물한 ‘42번가 루트하우스’를 지었다. 당시 원빈은 베버리힐스의 제니퍼 로페즈 집 사진을 보여주며 더불어 그가 유년 시절에 살았던 강원도 오래된 집의 추억도 함께 공유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이러한 요구 사항에 대해 “누구에게나 집을 새로 짓는다는 것은 현재와 과거가 함께하기 마련”이라며 고심 끝에 ‘언덕’을 집의 중심 개념으로 도입했다. 언덕은 집의 내부 평면과 외부 동선을 구성하는 중요한 단서이자 마당, 복도, 발코니 등 다양한 집의 대소사를 수행하는 기능까지 담당하며 현재와 과거를 오가고 있다.

-장동건·고소영 부부의 신천리 주택으로 세계건축상을 받았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대부분의 건축은 한국의 정서를 기반으로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전문가 그룹의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키고 영감을 줄 수 있는 건축이라는 것이 이번 수상의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축가로서 자신의 다음 좌표를 확인해보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장동건 부부 외에도 원빈, 신승훈 등 유명인의 건축을 많이 맡으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와 한번 작업했던 건축주는 두 번째 프로젝트를 또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집은 한번 짓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건축에 관한 지속적인 소통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유명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건축주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건축주에게 이득이 됩니다. 고소영씨가 2007년 ‘테티스’를 지은 이후 다시 한번 집을 의뢰한 것은 이러한 맥락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가수 신승훈씨의 도로시뮤직사옥, 다음해 작곡가 김형석씨도 제주도 주택 이후에도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유명인이 아닌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명인이다 아니다를 떠나 모든 건축주의 내면의 고민을 이해하고 이것을 공간적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것이 건축가의 소명이니까요.”

곽희수 건축가는 레스토랑 내부를 계단으로 만들고(에프에스원), 주택의 동선을 실타래처럼 풀어놓고(게스트하우스 리븐델), 펜션의 각 실을 길게 꺾인 브리지로 연결하는(모켄 펜션) 등 건축의 보편적인 공간 구성과 형태를 의도적으로 뛰어넘는다.

-최근 건축 트렌드가 되는 협소 주택, 땅콩 주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는 건축이 ‘건물을 짓는 개념’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가 ‘집 안’에서만 사는 게 아니잖아요. 주변에 대형마트, 놀이터, 공원도 있어야 삽니다. 집은 주변 시설과 함께 공존해야 하거든요. 가끔 주차난 때문에 이웃끼리 싸우고, 불미스럽고 극단적인 일들이 종종 발생하잖아요. 그 요인을 단순히 집으로만 해결할 순 없지요. 도시적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건축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협소 주택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건축가에게는 ‘집을 짓는 것’이 최우선 과제 아닌가요?

“예를 들어봅시다. 가로수길에 가로수가 있어요. 하지만 나무가 자라서 간판을 가린다는 이유로 몸통만 남기고 가지를 다 쳤습니다. 이 사건을 두고 정치계, 혹은 경제계 등 ‘계(界)’가 다른 사람마다 바라보는 입장이 있을 겁니다. 우선 상가만 비난할 수 없겠지요. 장사를 해야 하는데, 간판이 안 보여 손님들이 못 찾아오면 곤란하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나무를 잘라내는 행위를 잘했다고 칭찬할 수도 없겠지요? 이 가운데 건축가는 어떤 고민을 해야 할까요?

저라면 가로수 자체가 간판을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궁리할 것 같습니다. 가로수마다 번호를 매겨 놓으면, 잎이 무성해도 상가의 간판을 가로수가 대신할 수 있겠지요?

다른 예를 들어볼게요. 가로수길에는 쇼핑하러 나온 사람도 있지만, 구경을 하러 놀러 온 사람들도 많아요. 도로가 좁고, 많은 사람이 지나가려고 하다 보니 보행 체증이 자주 생기지요. 이때 간단하게 벤치 몇 개만 가로수 사이에 가져다 놓아도, 정체를 줄일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도시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는 각자의 이익과 관련된 특정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건축가는 도시의 요소를 계속 만들어 내고 고민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다른 분야보다 입장을 더 크게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곽희수 건축가는 “한국형 리트리트(retreat)를 꿈꾼다”고 말했다.

-건축가가 ‘도시의 해결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 같습니다.

“저는 쉽게 가로수길의 나무를 잘라버리는 건축가를 비난하고 싶습니다. 건물 밖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는 행위지요. 맥락을 따지지 않는 겁니다. 건축은 결코 건물 한 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에요. 그 공간과 밖의 상호작용에 영향을 받습니다.

지금 이 사무실도 문만 열면 재미있는 현상이 많이 일어나요. 도로 앞 네거리의 횡단보도 보이시죠? 어떨 때는 저 횡단보도의 신호 체계가 반대 방향으로 돌면 더 효율적일 텐데 라는 생각을 합니다. 신호 체계 하나만 변해도 이 지역의 상업적 효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어요. 건물만 가지고는 해석이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홍천에 위치한 ‘유 리트리트’는 리조트의 새로운 개념으로 제안된 이름이다.

다시 말해, 땅콩 주택, 협소 주택에 대해 얘기할 때, 제가 건축가이기 때문에, 건축 자체만 논할 거라고 보실 텐데, 주변 인프라 역시 상당히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노인도 대형마트에 가서 장보고, 번화가에도 놀러 가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더블유(W)호텔을 보유한 스타우트 그룹은 몇년 전 호텔 산업이 매출이 더는 늘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타개책으로 내놓은 것이 바로 도시에서 벗어나 바다 근처에서 천혜의 자연을 누리는 리트리트(retreat) 숙박 상품. 철저히 ‘느림의 미학’을 실천해 힐링하는 것이 목적이다. 곽희수 건축가는 “한국형 리트리트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형 리트리트(U Retreat)’는 어떤 건축인가요?

“보통 서양 사람들이 태국과 베트남 등 동남아로 휴가를 떠날 때 ‘리트리트하러 간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서양은 이미 도시화됐으니, 원시적인 삶의 형태, 즉 자연을 즐기고 싶은 것이지요. 그런 수요를 반영해 리트리트 개념이 생긴 겁니다. 예컨대, 사람들은 자연환경을 통해 휴식과 치유를 구합니다. 과거 휴가를 즐기는 것은 자연과 놀이문화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요즘같이 일상에서도 수많은 자극이 난무하는 시대에는 자연환경을 통해 조용하고 느린 치유를 원합니다. 자극적인 놀이문화가 전혀 없는 산사프로그램이나 템플스테이가 인기를 얻는 이유도 이런 맥락입니다. 자연으로 돌아가 진정한 휴식과 치유를 통해 새로운 삶의 영감을 구하는 건축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한국에는 자연 안에 수많은 팬션이 이런 역할을 한다고 선전하지만, 오히려 손님을 끌기 위해 더욱더 번잡한 자극을 생산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형 리트리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환경이 더욱더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주변 환경은 공짜로 주어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 집은 큰돈 들여서 짓지만, 내 집 뒤에 펼쳐진 숲은 거저 주어지는 거라고 생각하지요. 건물 뿐 아니라 주변 환경을 단장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실제로 내가 지은 건물 근처로 매년 철새가 몇 마리 놀러 오고, 계절마다 어떤 꽃과 나무가 자라는지 공부해야 합니다. 누군가 내 집에 놀러 온다면,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면 좋겠지요? ‘유 리트리트’는 건축프로젝트를 넘어 이렇게 주변 지연환경에 대해 공부하고 가꾸는 환경 프로젝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경기도 분당에 지어진 루프런 하우스는 지붕을 창발적인 아이디어로 제안한 주택이다.

-리트리트라는 단어를 ‘휴식’ 등으로 표현하면 안 될까요?

“아니요 저는 리트리트가 버스, 택시 등과 같이 하나의 보편적인 한국말(외래어)이 되길 바랍니다. 아직 리트리트에 대한 개념이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언어가 정착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누구나 리트리트라는 용어를 쉽게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서울 등 도시에서 사는 사람은 교외로 나가야만 리트리트할 수 있나요?

“도시에서의 리트리트는 또 다른 의미입니다. 저는 제 사무실의 창문만 열어도 굉장히 재밌거든요.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차들이 붐벼요. 이걸 공해, 소음으로만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재미있게 관찰합니다. 도시를 풍경으로 바라보는 것은 인식체계의 변화를 요하는 일이지요. 물론 문을 닫고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안전하다’고 안도할 수 있지만, 안전한 상태에서 외부 환경을 즐기는 개념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분당에 지어진 루프런이라는 건축을 보면, 지붕을 사람들이 노는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지붕을 ‘플로어(층)’로 치환하면 새로운 현상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지붕이라는 공간에 대해 더 창의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지붕으로 소풍을 떠난다고 생각해 봅시다. 옥상을 하나의 층 혹은 땅으로 사용했다는 개념의 전환도 중요하지만, 옥상에서 바라보는 주변 풍경이 저렇게 아름다운지 볼 수 있을 겁니다. 법이 가진 조건을 재편집하다 보면, 공간을 달리 활용하게 되고, 그 속에서 이야기가 생기는 것이지요.”

청주의 도심지에 위치한 에프에스원은 외부 계단을 통해 상업공간에도 공공성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건축가는 도심에서 사람들이 리트리트하도록 어떻게 도와줄 수 있나요?

“저는 건축 자체가 미디어(매체)라고 생각합니다. 그 도시 안에서 건축은 그 영향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용적률만 적용해서 건물을 빽빽하게 지으면, 그 안에서 새로운 건축과 생활의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도시와 공간을 다양하게 해석하고 장을 마련해주면, 그 장소에서 뭘 할지 창의적으로 고민하게 됩니다. 예컨대, 청주의 에프에스원은 옥외계단을 스텐드처럼 만들었어요. 계단에 오르면 사람들은 새로운 도시 풍광을 만납니다. 이 공간에 모여서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플리 마켓을 열 수도 있습니다. 그 결과 상업공간이 공공공간으로 사용될 수 있고 실제로 주인의 입장에서도 사람이 많이 모이면 상행위에 도움이 되므로 상호 소통의 도시 기능이 가능해 집니다.”

-앞으로 건축가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요?

“과거에는 건축이 물리적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생각하는 건축은 ‘관계를 만드는 행위’라고 봅니다. 함수 관계라고 볼 수도 있지요. 어떤 요소를 넣을 때마다 결과가 달라지는 것인데, 건축가는 모든 물질의 함수 관계를 잘 해석해서 사람들에게 새로운 공간 경험을 줘야 합니다. 새로운 건축은 건축 자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동시대의 시대정신과 생활양식을 담는 새로운 공간 경험을 말합니다. 이 공간경험이 추구하는 것은 도시와 인간,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 간의 진정한 소통입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건축을 해왔고 앞으로도 해 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