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2013년 원자력 발전소(원전) 납품 비리로 세상을 떠들썩 하게 만들었다. 국가 중요시설인 원전이 품질기준에 미달하는 위조 부품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수원은 한 순간에 ‘비리 공기업’으로 낙인이 찍혔다. 원전 비리 당시 최고경영자(CEO)였던 김종신(71) 사장은 금품 수수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중이다. 국민들의 불신은 극에 달했다.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운영하는 원전에서 이런 일이 생기다니…”

2013년에는 1802억원 적자를 냈다. 한수원은 변화하지 않으면 조직의 존폐조차 위태로웠다. 이런 조직을 추스릴 수 있는 사람은 없을까?

조석 한수원 사장은 “작년 24기 원전의 고장 정지는 세게 최저 수준이었다”며 “올해도 안전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위기의 해결사’로 나선 인물이 조석(59) 사장이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지식경제부 제2차관 출신인 조 사장은 산업자원부에서 원전사업지원단장을 맡아 위기의 한수원을 구원할 적임자로 꼽혔다. 조 사장은 2013년 9월 부임 후 2년 8개월 동안 한수원 임직원과 함께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땅에 추락했던 청렴도는 정상으로 회복됐고, 2015년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올렸다.

조석 사장을 4월 29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건물 8층 한수원 UAE사업센터에서 만났다. 조 사장은 “작년 원전 24기의 고장 정지가 3건에 불과할 정도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원자력은 석탄, 가스보다 싸게 전기를 생산할 수 있어 안정적인 운영 능력이 있으면 경쟁력이 있다”며 “국민이 신뢰하는 에너지 사업자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 작년 원전 고장 3건…“안전하게 운영하면 수익 개선”

-작년 원전 가동률이 85%를 넘었다. 창사 이래 최대 실적(매출 10조6000억원, 순이익 2조5000억원)을 올렸다. 비결은?

“한수원은 이익 창출이 가장 중요한 회사는 아니다. 주식회사라 경제적 수익도 확보해야 하지만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이 더 중요하다. 현재 전력 산업 구조를 보면 원전의 안전한 운영과 이익이 연결돼 있다. 발전소가 멈추지 않고 전기를 만들어내면 그만큼 전기를 많이 팔 수 있다. 수익 구조도 좋아진다.

원자력 발전소는 1년 6개월에 한번씩 대대적인 정비를 한다. 그래서 현실적인 최대 가동률은 85% 수준이다. 작년 24기 발전소 중 고장 정지는 3건에 불과했다. 호기당 0.13이다. 세계 최저 수준이다. 해외에서는 보통 호기당 고장 정지가 0.7~0.8 수준이다.”

-고장이 확 줄어든 이유는 뭔가?

“올해 4월까지 두 번 고장났다. 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 원자력 발전소 고장이 바로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작은 문제라도 인지하지 못하면 문제가 된다.

원자력 발전소는 건설할 때부터 좋은 부품을 쓰고 설계를 잘 해야 한다. 발전소 운전 직원의 숙련도와 역량, 기술적 수준도 중요한 변수다. 한국은 선진국으로부터 기술을 도입, 원자력 발전소를 지었다. 1980년대 부터 우리만의 표준형 원자력 발전소 모델을 개발하고 반복적으로 전기를 생산했다. 40년간 축적된 우리 기술진의 운영능력과 정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경주로 본사를 이전했다. 조직과 직원, 협력사, 지역 사회에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이전 후 계획은?

“한수원의 본사 이전에는 배경이 있다. 2005년 경주에 방사성폐기물 처분 부지가 들어섰다. 당시 정부가 한수원 본사 이전을 약속했다. 약속을 지킨다는 의미가 컸다.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시민들은 정부를 믿지 않게 된다. 지방으로 본사를 옮긴 만큼 지역 발전에 대한 의무감도 크다.

-지역 발전 사업은?

“경주에 한수원 협력기업 100개 유치, 여자 축구단 창단, 전시·컨벤션(MICE) 산업 활성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경주 시민들이 ‘한수원 본사가 오니 달라지네’라고 실감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세계 3위 원자력 사업자인 만큼 지역 주민들에게 진정한 식구가 됐다는 메시지를 드리고 싶다.”

-2013년 원전 비리가 터졌고 한수원은 비리 공기업으로 낙인이 찍혔다. 조직 쇄신과 비리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원전 비리는 한수원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 중대한 문제였다. 원인을 정확히 찾아야 치료법을 알 수 있다. 직원들의 일탈 행위를 막아야 했다. 자체 감사기구를 강화했다.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처럼 직원 비리가 생기면 엄단하고, 퇴직 후 협력사 재취업을 못하게 했다.

원전에는 수백만개 부품이 들어간다. 저가 부품을 고집하면 공급 업체의 이윤이 보장되지 않는다. 품질보증 개선을 위해 구매제도를 개선했다. 2015년 국민권익위 부패방지시책평가에서 최우수 등급, 청렴도 평가에서 우수 등급을 받았다.

물론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있어 구매시스템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공정경쟁 기반 조성을 위해 수의계약을 최소화하고 외부 전문인력을 영입, 구매부서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고 있다.”

조석 한수원 사장은 “세계 3위 원자력 사업자인 만큼 지역 주민들에게 진정한 식구가 됐다는 느낌이 들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 원자력 발전 단가 석탄·가스보다 저렴…인적쇄신·구매시스템 개선

-순혈주의가 키운 ‘원전 마피아’ 근절을 위해 외부 인사를 대거 수혈했다. 31개 처·실장급(1급) 자리 중 절반을 외부 인사로 채웠는데, 직원들의 반발은 없었나?

“한수원은 발전회사다. 전기를 만들고 운영하는데 인재가 가장 중요하다. 운영 인력이나 엔지니어는 외부 인사 영입 대상이 아니었다. 건전한 조직 문화가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직원의 이해와 합심을 위해 노력했다.

사이버 보안에는 외부 IT전문가 영입이 바람직하다. 한수원에서 20~30년 근무한 사람이 IT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지역 주민과의 갈등 관리도 외부에서 온 사람이 잘 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부분을 중심으로 외부 인사를 영입했다. 경영혁신실장, 보안정보처장 등이 대표적이다.”

-월 3회 이상 발전소 현장을 다니고, 1만명 직원을 만나려고 이동한 거리가 5만km에 달한다고 하는데.

“한수원은 발전소가 안전하게 돌아야 수익이 난다. 원자력은 석탄, 가스보다 싸게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발전 단가가 저렴해 생산 전기는 전량 판매 된다. 재고가 없다.

하지만 발전소가 잘 돌아가고, 국민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 한수원 최고경영자(CEO)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발전소 현장만 5만km 이상 다녔다. 원자력 발전소는 냉각수 문제 때문에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다.

처음에 현장을 가니 불필요한 의전이 있어 이를 없앴다. 사장도 회사의 식구인데 손님처럼 대하면 곤란하다. 한밤중에 직원을 찾아가고 같이 밥도 먹으니 친숙하게 느끼더라. 직원들에게 강조한다. ‘여러분이 한수원의 주인’이라고.”

-작년 6월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2014년)에서 한수원은 D등급을 받았다. 2013년(E등급)보다 나아졌지만 아직 낙제점이다. 개선방안은?

“2013년은 원전 비리가 있어 신뢰가 저하됐다. 2014년 흑자 전환 했지만 연이은 사건·사고로 D등급을 받았다. 원전 안전과 국민 신뢰회복을 위해 전 직원이 합심해 노력했다. 안전문화를 확립하고 품질 서류 재검증 시행, 통합관리 경영모델 구축에 나섰다. 지난 2년간 원전 이용률 상승, 고장정지 건수 감소, 실적개선 등의 성과를 거뒀다. 올해 평가(2015년 기준)는 기대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경주 본사 전경.

-공기업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가 과다 부채다. 한수원은 어떤 노력을 펼치고 있는가?

“발전소를 지을 때 큰 비용이 들어간다. 한번 투자하면 40~60년간 투자금을 회수한다. 현재 건설 중인 발전소가 4기가 있다. 건설 비용을 조달하면서 부채가 잡혔다. 불가피한 투자다.

다른 부채는 폐기물 처분에 들어가는 비용이다.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방사성 폐기물이 나오는데, 당장은 국가 방침이 정해지지 않아 처분을 못하지만 추후를 생각해 부채성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수익을 내지 못하는데 불필요한 투자를 하면 부채가 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사후투자심의제도가 있어 투자가 정말 필요한 것인지, 적절한지 등을 논의한다. 작년 부채비율은 116.9%까지 낮아졌다. 조금 더 줄일 여지는 있다.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면 부채는 생긴다.”

☞대한민국 원전의 역사

정부는 1962년 국내 전력 소비 급증에 대비, 원자력 발전 추진 계획을 수립했다. 1978년 국내 최초의 상업용 원자력 발전소 고리1호기가 가동을 시작했다. 세계에서 스물두번째로 원전 보유국이 됐다. 현재까지 국내 원전 누적 발전량은 3조㎾h를 돌파했다. 서울시 전체가 65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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