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미국으로부터 환율조작국(심층분석 대상국)으로 지목 받을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한국은 5개의 관찰대상국 중 하나로 분류됐다. 앞으로 정부의 외환시장 관리가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재무부는 29일(현지시각) 미국 의회에 제출할 '주요 교역대상국의 환율정책 보고서'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 韓·中·日·獨·臺灣 등 5개국 관찰대상국으로 분류

미국 재무부는 일 년에 두 번 환율보고서를 발표한다. 이번 환율보고서 발표가 주목받은 이유는 새 교역촉진법이 적용된 첫 보고서이기 때문이다. 새 교역촉진법에는 심층분석 대상국, 즉 환율조작국을 지정해 제재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미국 재무부는 상당한 대미 무역흑자를 내고 있으면서 경상흑자국이고, 한 방향으로 지속해 시장에 개입한 국가라는 세 가지 요건이 충족된 국가를 심층분석 대상국으로 지정한다. 한국은 지난해 263억 달러(약 30조원)의 대미 무역흑자를 냈고, 경상수지 흑자는 1059억 달러(약 121조원)에 달해 두 가지 요건은 충족한 상황이다.

정부는 한 방향으로 시장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미국을 꾸준히 설득했고, 결국 심층분석 대상국에 포함되지 않는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과 중국, 일본, 독일, 대만 등 5개국이 3가지 요건 중 2가지 요건을 충족했다"며 '관찰대상국(monitoring list)'이라고 표현했다.

관찰대상국은 새 교역촉진법에 규정된 분류는 아니다. 지정 요건이나 제재 내용 등에 대해 정해진 것이 없다. 심층분석 대상국의 요건을 다수 충족한 나라들이니 미국 재무부가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겠다는 의미를 담아 언급한 셈이다.

◆ 직접 제재 위기 피했지만 시장 개입 제약받을 듯

미국 재무부는 보고서에서 "한국이 상당한 경상흑자와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외환시장 개입에 대해서는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됐을 때 환율의 절상과 절하를 모두 방어하기 위해 개입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한국이 환율을 한 방향으로 조작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정책권고에서는 "외환시장 개입은 무질서한 시장환경이 발생했을 때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면서 "중장기적으로 원화 절상이 비 교역부문으로의 자원 재분배를 통해 수출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완화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더 내려가야 한다는 일종의 압력인 셈이다.

미국 재무부는 또 "한국은 외환운용에 대한 투명성을 높이고 내수활성화를 위한 추가 조치를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급격한 환율 변동이 있을 때만 시장에 개입하고 내수 확대를 위한 정책을 쓰라는 등의 방향은 정부의 기존 방향과 대부분 일치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이 언급한 '내수활성화를 위한 추가 조치'라는 게 환율 절상과 이에 따른 수입 확대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어 안심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관찰대상국으로 언급된 것이 한국 외환시장에 당장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평가하면서도 앞으로 정부가 외환 시장에 개입할 때 다소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경제연구부장 겸 금융경제연구부장은 "환율조작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 폭이 크기 때문"이라면서 "미국 등에서는 한국의 환율이 높아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심층분석 대상국으로 지정되지 않은 만큼 당장 큰 영향은 없겠지만, 관찰대상국으로 언급됐으니 정부의 외환시장에 개입에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투자자들이 원화 강세에 강하게 배팅하면 환율이 내려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법안에 명시된 제재 수단이 없는 만큼 관찰대상국으로 분류된 것이 한국의 외환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미국이 내부 정치적인 상황(경상흑자국에 대한 부정적 시선) 등을 고려해 이런 평가를 내놓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미국이 교역상대국에 압박을 가하는 강도가 세지는 만큼 중장기적으로 한국의 환율정책 등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