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서울 중구 교보생명 18층 노블리에센터. 허금주 교보생명 상무(법인본부장)는 다소 긴장한 얼굴로 기자를 맞이했다.

허 상무는 지난 1990년 교보생명에 입사해 사원 출신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임원 자리에 올랐다. 지난 2003년 타계한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의 비서실장, 중국 베이징 주재원, 법인 담당 본부장 역임 등의 기록도 그가 여성으로서 유리천장을 깨며 나아간 길이다.

버마, 필리핀, 중국 등 해외에서 보낸 시간만 16년이 넘는다. 한국어를 포함해 중국어, 영어, 불어 등 4개 국어를 구사하는 국제통(通)이다. 교보생명과는 대학원 재학 시절 국제보험세미나(IIS)에서 했던 영어 통·번역 업무를 계기로 연을 맺었다. 이후 창업주가 직접 관여했던 프로젝트에서 국제 관련 업무를 담당하며 경력을 쌓았다.

25일 서울 중구 교보생명 18층 노블리에센터에서 만난 허금주 교보생명 상무

◆ 최초 여성 비서실장·해외주재원·법인담당임원...여성 후배 양성에도 활발

허 상무는 회사 내에 여성 선배 또는 멘토가 없었던 것이 가장 아쉬웠다고 말한다. 그는 "내가 겪었던 막막함을 후배들이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여성가족부 산하 기관에서 꾸준히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해에는 여대생커리어페어도 직접 총괄 기획을 하기도 했다.

−비서실장으로 일할 때 여성이라서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나?

"90년대 중반 청와대에서 전화를 받았을 때가 생각난다. '비서실장을 바꿔달라'고 하길래, '제가 비서실장입니다'했더니 '남사원 없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여자비서실장하고 통화하기 보다는 남성하고 통화하기를 원하는 시절이 있었다."

−교보생명 최초의 베이징 주재원으로 가게 된 계기와 맡았던 업무는?

"입사 이후 주로 국제 관련 업무를 하면서 해외 진출을 담당했다. 해외 진출 전략을 수립하면서 중국 진출을 기획했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있었는데, 베이징에 사무소를 개소하고 중국에 터를 닦았다. 중국에 진출하려면 현지에 몇년간 주재 사무소를 설립해 운영해야 했다. 또 생명보험사는 합작법인 형태로만 설립이 가능했다.

현지에서 합작법인을 세울 파트너사를 찾고, 중국 정부와 협회 등의 기관과 업무 제휴를 하는 일을 했다. 중국 최대 생명보험사인 중국인수보험(中国人寿保险·차이나라이프)과 지난 2005년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맺었는데, 아직도 이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에서 인프라를 구축하는 역할을 한 셈이다."

−중국이 국내보다 더 보수적이거나 남성 중심적인 문화였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당시 우리나라보다 정부기관, 국영기업에 고위직에 여성들이 많이 포진해 있었다. 빠른 속도로 네트워킹이 가능했다.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편견을 갖고 있었다. 중국에서 열린 한국 기업인 회의에 참석을 하면 현지 채용 여직원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일과 가정을 동시에 어떻게 꾸려나갔는가.

"고등학생과 대학생인 아들 둘을 키우고 있다. 직장에서는 라이프 사이클에 맞게 직무를 이동하고자 노력한 것도 도움이 됐다. 아이들의 육아가 중요한 시기에는 출퇴근이 정확한 직군으로, 그 시기가 지나서는 고객의 요청에 24시간 대응을 할 수 있는 마케팅 직군으로 옮겼다. 남편의 전폭적인 지지도 큰 힘이 됐다. 남편은 광해를 제작한 영화 제작자이며, 현재 하정우, 차태현, 주지훈 배우가 캐스팅된 "신과 함께"를 제작 중이다."

허금주 교보생명 상무

◆ "보험의 사회 공헌적 성격을 믿는다"

허 상무는 퇴직 연금 분야에서 일하는 것이 더없이 즐겁다고 했다. 중국 주재원 임기를 마치고 2009년에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이후 퇴직연금 관련 업무를 했다. 당시는 퇴직연금의 발전 단계가 초기 단계에 머물러있었다. 상무 취임 후 글로벌기업과 국내 대기업을 포함해 1000여개 기업의 퇴직연금을 관리하고 있다.

−대형 생보사들이 저금리로 인해 어렵다. 교보생명 전략은?

"보험사들이 2000년대까지도 팔았던 고금리 상품의 금리를 고객들에게 보장해야하기 때문에 최근 수익률은 굉장히 낮다. 자산을 굴릴 때 적용받는 금리는 낮은데, 고객들에게 줄 금리는 높으니 역마진이 생긴다. 이 역마진을 해소하는 것이 지상 과제다.

올해 교보생명의 전략은 과거처럼 저축성 상품을 팔기 보다는 보장성 상품을 판매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변액상품이나 과거에는 없었던 유병자보험 등을 개발하는 등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퇴직연금의 안전자산 비중이 높아 수익성이 낮다는 지적이 있다.

"국내 퇴직연금 투자 현황을 보면 원리금보장형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90%다. 퇴직연금의 운용 수익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국 회원국(9.9%)보다 낮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기 때문에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교보생명은 생명보험사의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 실적배당형 상품의 시장점유율과수익율 1위를 기록했다."

−퇴직연금과 관련해 가지고 있는 비전은?

"연금 사각지대가 해소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노후 자금 준비가 매우 부족하다. 개인형 퇴직연금(IRP)의 해약율이 94.8%나 된다. 퇴직 급여를 퇴직 시점에 일시금으로 수령해 버린다는 얘기다. 자녀 결혼 등 목돈이 필요한 퇴직자가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노후에 지속적으로 쓸 자금이 부족해진다. 55세 미만 연령에서 퇴직연금을 해지할 때 페널티를 적용하지 않는 국가는 우리나라 뿐이다.

퇴직연금제도가 본 기능을 충실히 해서 노후소득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정부가 사각지대인 중소·영세기업으로 퇴직연금이 확산되도록 기업규모별 단계적 의무화를 정책 차원에서 진행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