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전설에 등장하는 모든 영웅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르 제국의 왕 길가메쉬는 괴물 훔바바를 죽이고 불사신이 되기 위해 우트나피시팀을 만난다. 영생은 얻지 못하지만 삶과 죽음의 비밀을 이해한 길가메쉬는 고향 우룩으로 돌아온다.

10년 동안의 트로이전쟁에서 드디어 승리한 오디세우스는 또 다시 10년이라는 긴 세월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온다. 인육을 먹는 키클롭스의 눈을 멀게 하고, 유혹하는 사이렌들의 노래를 견뎌내며 고향 이타카로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하지만 더 이상 20년 전 떠난 오디세우스가 아니었다. 아내 페넬로페 마저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떠나는 자에겐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이유 없이 떠나는 사람은 없다. 그게 바로 헤어짐이다. 그리고 예전 자신의 세상과 이별한 자에겐 도전과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그게 바로 성숙이다. 그리고 떠나 성숙한 자는 다시 익숙한 세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돌아온 자는 더 이상 떠난 자가 아니다. 그게 바로 귀향이다. 모든 영웅들은 결국 헤어짐, 성숙, 그리고 귀향을 통해 드디어 진정한 영웅이 된다는 말이다.

물론 모든 영웅들이 귀향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 최고의 영웅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에서 숨지고, 알렉산더 대왕 역시 머나먼 바빌론에서 서른 세살의 젊은 나이에 눈을 감는다.

여전히 젊음과 반란의 심볼인 제임스 딘(James Dean). 그가 만약 스물 네 살이라는 터무니없이 젊은 나이에 죽지 않았다면? 대머리에 배가 나온 중년의 제임스 딘을 상상할 수 없는 우리. 영웅은 늙어서도, 평범한 삶을 살아서도, 아니 행복해서도 안된다는 생각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19세기 최고의 시인 중 한 명이었던 아르튀르 랭보. 그보다 더 젊고 더 영웅적인 시인을 상상 할 수 있을까? 또래들이 여전히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놀 때, 16살의 랭보는 라는 그야말로 천재적인 100줄 짜리 시를 쓴다. 열 아홉 살의 랭보는 을 쓰고, 스물 한 살의 랭보는 더 이상 시를 쓰지 않는다.

왜 스물 한 살의 랭보는 시를 포기했던 것일까? 더 이상 밤새워 모음과 자음의 색깔을 구상하지 않기로 한 랭보는 여행을 떠난다. 용병으로 지원해 인도네시아로 향한 랭보. 4개월 만에 탈영한 랭보. 지중해 섬 키프로스 공사장에서 노동꾼으로 일하는 랭보. 그리고 드디어 이디오피아 하레르에 정착한 랭보.

그는 무엇을 찾아 떠돌아다녔던 것일까? 이디오피아에서 랭보는 많은 돈을 번다. 큰 사업과 무역으로 성공한 랭보. 그가 정말 파리에서 16살 나이에 를 쓴 랭보와 같은 사람일까? 스물 한 살부터 시를 쓰지 않았던 랭보.

하지만 이디오피아에서 그는 몰래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다. 어쩌면 자신에게 외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은 여전히 자신이라고. ‘현실’이라는 지옥에서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취해서 기쁨도 슬픔도 못 느낄 때까지 ‘인생’이라는 술을 마시고 또 마셔야만 했다고.

아르튀르 랭보
《지옥에서 보낸 한 철》,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