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가 잎을 파먹으면 피를 흘리는 식물이 있다. 그런데 피가 달콤하다는 점이 좀 다르다. 독일 베를린 자유대 앙케 스테푼 교수 연구진은 지난 26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플랜트'에 발표한 논문에서 "해충이 파먹은 잎에서 꿀물이 나와 나중에 해충을 물리치는 개미를 불러 모으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가짓과(科) 식물 '솔라눔 둘카마라(Solanum dulcamara)'를 관찰했다. 민달팽이나 벼룩잎벌레가 솔라눔의 잎을 파먹으면 그곳에서 진물이 흘러나왔다. 진물은 일반 수액(樹液)과 달리 물과 당분으로 구성됐다. 꽃에서 나오는 꿀과 같았다. 벌레가 파먹은 잎에서는 3종의 개미가 관찰됐다.
연구진은 손상된 잎에서 나오는 꿀물이 해충을 물리칠 개미를 모은다고 추정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온실에서 키운 솔라눔의 잎에 해충이 파먹은 곳에서 나오던 것과 같은 꿀물을 발랐다. 이 잎에는 이전보다 더 많은 개미가 모이고, 벌레에 손상되는 부분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개미는 민달팽이와 벼륙잎벌레를 쫓아내고, 새싹에 파고드는 벼륙잎벌레의 애벌레를 잡아 죽였다.
식물이 꿀물로 경호원을 모으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아프리카의 아까시나무에는 줄기에 마치 혹처럼 툭 튀어나온 구조가 있다. 바로 꿀물이 흘러나오는 '꽃 밖 꿀샘(extrafloral nectary)'이다. 꽃에 있는 꿀샘은 꽃가루받이를 위해 벌이나 나비를 유인하는 수단이지만, 꽃 밖 꿀샘은 그와 상관이 없다. 오로지 개미를 위해 마련한 선물이다. 개미는 꽃 밖 꿀샘에서 꿀물을 얻고, 대신 식물을 위협하는 곤충을 물리친다. 심지어 초식동물도 쫓아낸다.
솔라눔은 아까시나무와 같은 별도의 꽃 밖 꿀샘이 없다. 벌레에 파먹힌 부분이 바로 꽃 밖 꿀샘이 되는 것이다. 연구진은 "솔라눔은 별도의 기관을 만들지도 않고 손상된 잎에서 바로 꿀물을 분비해 개미를 모은다"며 "다른 식물에서 나타나는 꽃 밖 꿀샘이 진화하는 과정에 나타난 중간 단계로 보인다"고 추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