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대 조선소인 재팬마린유나이티드(JMU)의 히로시마현 구레사업소에서는 요즘 1만4000TEU(1TEU는 컨테이너 1개) 규모의 대형 컨테이너선 건조(建造) 작업이 한창이다. 그동안 대형 컨테이너선은 한국 조선업체들이 독식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JMU는 2014년 1만4000TEU급 대형 컨테이너선 10척을 한꺼번에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미즈타니 가즈토키 구레사업소 현장소장은 일본 잡지 닛케이비즈니스와 인터뷰에서 "오랜만에 독에 활기가 넘친다. 인력도 새로 채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소 입구에는 일본 제국주의 시절의 군함 이름을 딴 '야마토(大和)의 고향'이라는 대형 간판이 세워져 있다. 일본 조선업계가 이 조선소를 '타도 한국'의 전진 기지로 삼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조선 산업은 흔히 한국·중국·일본의 삼국지(三國志)로 불린다. 3개국이 전체 조선 수주량의 90%를 점유하고 있다. 그동안 시장 상황은 1위 한국을 중국과 일본이 뒤쫓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 구도가 흔들리고 있다. 한국 조선 3사가 지난해 8조원대 적자를 내면서 휘청거리는 사이에 일본과 중국이 발 빠른 구조조정을 통해 한발 앞서나가고 있다는 평가다. 한때 세계 1위였던 일본은 2010년 이후 구조조정을 통해 10%대까지 추락했던 글로벌 수주 점유율을 지난해 30% 언저리까지 끌어올리며 한국을 턱밑까지 추격해 왔다. 그동안 양적(量的) 성장에 집중했던 중국은 2700여개 조선소를 51개로 감축하는 '초강도 구조조정'으로 체질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과감한 합병으로 부활한 일본

일본 조선업 부활의 핵심은 과감한 구조조정과 연구개발(R&D)·시설 투자다. 일본은 2013년 유니버설조선과 IHI마린유나이티드를 통합해 세계 4위의 JMU를 출범시켰다. 이마바리조선과 미쓰비시중공업은 LNG선 사업부를 합병해 MI-LNG를 신설했다. 이를 통해 JMU, 이마바리조선, 미쓰비시중공업, 가와사키중공업, MI-LNG의 5개사(社) 체제로 재편했다.

이마바리조선은 작년 6월부터 삼성중공업을 제치고 글로벌 수주량 3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마바리조선은 18년 만에 초대형 독을 신설하고 친환경 선박 개발 등 투자도 확대하고 있다. JMU는 전국 7곳의 조선소를 컨테이너선·자동차운반선·탱커 등으로 각각 특화해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그 결과, 조선업 불황이 깊어진 2013년 이후에도 매년 50억~100억엔의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 2014년에는 20여년 만에 자동차 운반선 4척을 수주했다. 대형 LNG(액화천연가스) 선박으로 시장을 넓히고 있다.

일본 정부도 '조선업 세계 1위 탈환'을 위한 지원에 적극적이다. 통폐합 조선사에 연 1% 금리로 선박 가격의 80%까지 대출해주는 게 대표적이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일본은 1970~80년대 하던 정부 주도 생산 능력 감축 방식의 구조조정에서 벗어나 최근엔 성장성을 담보로 한 새로운 접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조선소 2700개를 51개로

올 1월 중국 저장해운그룹은 계열사 오주조선의 파산을 지방법원에 신청했다. 오주조선은 한때 직원 수가 3000여명에 달했던 중소형 벌크선(비포장 화물적재선) 전문 업체이다. 중국에서 국유 조선소가 파산을 신청한 것은 10년 만에 처음. 중국 언론들은 "조선소 구조조정의 신호탄"이라고 해석했다.

중국은 2000년만 해도 건조량 기준 세계 점유율이 5.7%에 불과했으나 작년엔 40%를 넘기는 등 급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고속 성장에 따른 조선소 난립으로 공급 과잉이 심각하다. 그러자 중국 정부는 2014년 말 파격적인 조선업 구조조정 방안을 내놨다. R&D, 에너지 절약, 환경보호 등 평가지표 충족 여부를 평가해 2700여개 조선소를 51개로 정리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조선업계에서는 그동안 양적 1위를 추구하던 중국이 질적 성장으로 변화하며 구조조정 측면에서 우리보다 한발 앞서나가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국에도 아직 기회가 있다고 본다. 김윤경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중국은 여전히 숙련도와 기술력에 한계가 있고, 일본은 연구개발이나 기능직 인력 부족으로 성장에 제한이 있다"면서 "우리 조선업이 지금이라도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해내면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