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테슬라 엔지니어링 부사장 출신인 크리스 포릿을 ‘특별 프로젝트’를 위해 영입하기로 했다고 21일(현지시각) 블룸버그가 보도했다.

포릿은 영국 스포츠카 업체 애스턴 마틴에서 일하다 2013년 테슬라로 자리를 옮긴 정상급 자동차 엔지니어다. 테슬라에서는 고급 전기 승용차 ‘모델S’와 ‘모델X’, ‘모델 3’의 설계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애플의 포릿 영입이 예사롭지 않다고 보고 있다. 애플이 자동차 시장의 타당성을 조사하는 수준을 넘어 전기차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포릿은 올 1월 퇴사한 애플의 엔지니어링 담당 부사장 스티브 자데스크의 후임으로 전기자동차 개발팀을 이끌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소개한 아이카 콘셉트 이미지.

애플은 작년 9월 전기차 생산을 ‘확정 프로젝트’로 지정하고 2019년 양산 계획을 세웠다. 전기차 팀은 애플 내에서 ‘프로젝트 타이탄(Titan)’으로 불린다. 600명으로 시작한 인력이 최근에는 1800명까지 늘었다는 후문이다.

애플은 BMW, 메르세데스 벤츠와 자동차 사업 합작 논의를 중지하고 독자 진출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이폰이 세계 휴대폰 시장을 뒤흔든 것처럼 전기차 ‘아이카’가 세계 자동차 시장을 요동치게 할까?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소프트웨어가 미래 차 시장에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라며 “사람들이 아이폰에서 누린 경험을 자동차에서도 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 전기차 기술장벽 낮아 IT 기업도 진출 가능

애플 같은 IT회사가 자동차 시장에 뛰어드는데 전기차를 무기로 삼은 이유는 뭘까? 자동차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전기차 구조의 단순함에서 찾는다.

일반 내연기관 자동차는 구조가 복잡하고 기술이 까다로워 진입 장벽이 높다. 파워트레인(엔진+변속기)부터 차체, 조향장치 등의 기술력을 축적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전통적인 자동차 회사는 이미 100년 이상 이 기술들을 확보했고, 특허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신생 기업이 이런 특허를 활용하지 않고 내연기관 자동차를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전기차는 구조가 단순하다. 핵심부품인 배터리는 외부기업에서 조달하면 되며, 설계기술의 난이도도 낮은 편이다.

테슬라가 새로 선모인 ‘모델 S’의 모습.

애플이 전기차에서 자동차 시장 진출의 실마리를 찾은 것은 테슬라의 성공이 영향을 미쳤다. 고가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강한 애플 입장에서는 고가 차부터 시작해 대중 차로 접근하고 있는 테슬라의 전략을 벤치마킹하고 싶어한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대당 1억원이 넘는 고급 전기차 ‘모델S’를 먼저 출시해 브랜드를 알렸다. 이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X’와 보급형 전기차 ‘모델3’ 를 차례로 출시, 숨어있는 소비자 수요를 자극했다.

애플 역시 아이폰 출시와 마찬가지로 가장 비싼 모델을 선보인 뒤 저가 보급형 모델을 출시하면서 판매대수를 늘리는 전략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애플 주주들이 걱정하는 수익성 악화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전기차가 설계보다는 디자인에 공을 들이는 것도 애플의 강점과 맞는다는 분석이다. 테슬라의 전기차 모델은 이색적이면서도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소비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러에코(LeEco)가 공개한 컨셉트 카 ’LeSee’.

중국의 러에코(LeEco)가 4월 20일(현지시각) 베이징에서 발표한 자율주행 전기 콘셉트카 ‘LeSEE’의 디자인도 이색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외관은 유선형의 초현대적인 디자인을 채택했다. 차량 내부 좌석은 메모리폼을 사용했고 뒷자석은 갈비뼈 모양으로 디자인했다. 운전석의 핸들은 차량이 자율 주행 모드로 전환하면 접을 수 있다.

러에코는 IT기업 러스왕(LeTV)의 자회사다. 러스왕의 창립자 자웨팅은 2014년 미국에 전기차 생산을 목적으로 전기차 회사 ‘패러데이 퓨처’를 세웠다. 패러데이 퓨처는 ‘중국의 테슬라’라고 불린다.

러스왕을 이끄는 자웨팅은 “디자인과 구체적인 사양은 아직 콘셉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올해 4월 25일 열리는 베이징모터쇼에서 비밀이 공개될 예정이다.

◆ 전기차 시장 참여자 많아질수록 파이 커져…2015년 세계 전기차 판매 55만대 불과

“전기차 시장을 키울 훌륭한 경쟁자가 등장했다.”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회장은 테슬라 ‘모델 3’와 전기차의 출시를 “환영한다”고 했다. “전기 차에 대한 반감이 줄어드는 현상은 환영할 일”이라는 것이다. 전통적인 자동차 회사의 최고경영자(CEO)가 테슬라의 보급형 전기차 모델3에 32만5000건의 예약이 몰린 것을 두고 반가워한 이유는 무엇일까?

닛산은 전기차 시장의 선두주자다.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기차를 판매했다. 2010년 12월 전기차 ‘리프’를 출시한 이후 21만1000대를 판매했다. 지난해 세계 자동차 판매대수는 9250만대지만, 전기차 판매대수는 55만대에 불과하다. 전기차 회사 입장에서는 시장을 더 키워야 더 많은 차를 팔 수 있다.

국내 전기차 시장 역시 아직 판매대수가 저조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현대·기아차가 전기차를 출시하고 르노삼성, 한국GM 등이 내놓은 전기차가 7종이나 되지만 지난해 국내 전기차 판매대수는 5700대에 그쳤다. 전체 자동차 시장(183만대)의 0.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처럼 국내에서 전기차 판매가 부진한 것은 충전거리의 한계 때문이다. 기아차 레이와 쏘울은 한 번 충전으로 각각 91km, 148km를 달린다. 르노삼성 SM3(135km), 한국GM의 스파크(128km), BMW의 i3(132km) 닛산의 리프(132km)도 장거리 주행에는 열세다.

국내 산업용 전원공급장치 업체 파워프라자가 선보인 전기차 예쁘자나R의 모습.

국내에서는 중소기업들도 전기차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산업용 전원공급장치 업체 파워프라자는 올 3월 스위스에서 열린 제네바 모터쇼에서 ‘예쁘자나R2’를 선보였다. 한 번 충전으로 최대 765km를 달릴 수 있는 콘셉트카다. 5단 수동 변속기를 채용하고 시속 199km까지 달릴 수 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 도달 시간이 4.6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인증을 받지는 못했지만, 주행 거리를 따지면 국내 최고 수준의 전기차를 만든 셈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테슬라가 전기차로 세계 시장에서 명성을 얻었고 소비자에게 전기차 시대가 올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했다”며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도 위기감을 느끼고 다양한 차종을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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