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마땅한 약이 없던 패혈증을 치료할 수 있는 물질을 찾아냈다. 고규영 기초과학연구원(IBS) 혈관연구단장은 "패혈증 진행을 막는 동시에 치료까지 할 수 있는 단백질 '앱타(ABTAA)'를 발견하고, 동물실험을 통해 효과를 입증했다"고 20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 최신호에 표지 논문으로 실렸다.

패혈증은 암이나 외상 등으로 인해 비브리오균·사카자키균과 같은 병원균이 혈액 속에서 번식하면서 온몸에 염증을 퍼뜨리는 질병이다. 치사율이 40~60%에 이른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19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치명적인 질병이지만, 아직 뚜렷한 치료법이 없다.

고 단장 연구팀은 패혈증에 걸리면 혈관 내부 세포가 무너진다는 점에 주목했다. 고 단장은 "혈액과 염증 세포 등이 혈관 밖으로 새어 나오면서 장기에 손상이 일어나는데, 이 과정을 막을 수 있으면 패혈증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혈관 세포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ANG2' 단백질, 미세 혈관을 보호하는 'TIE2' 단백질과 동시에 결합하는 새로운 단백질 '앱타'를 찾아냈다. 앱타는 ANG2 단백질과 결합해 혈관 손상을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또 TIE2 단백질의 작용을 도와 이미 손상된 혈관도 복구시켜주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패혈증에 걸린 쥐에 앱타를 주입하자 폐와 신장에서 일어나는 혈액 누출과 혈관 손상, 염증 반응 등이 모두 줄어들면서 생존율이 급격히 높아졌다. 패혈증에 걸린 쥐를 방치하면 80시간 내에 모두 죽지만, 앱타를 투여하자 30% 이상이 생존했다. 앱타와 항생제를 같이 투여하면 생존율이 70%까지 높아졌다. 고 단장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에볼라 바이러스 등 신종 전염병의 마지막 단계는 패혈증"이라면서 "추가적인 동물 실험을 진행하고 안정성을 높여 패혈증 치료 신약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