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변두리에 살던 소년은 매일 학교 앞 문방구를 드나들었다. 10원짜리 딱지에서 종이인형, 구슬, 고무공 등 온갖 장난감이 가득한 그곳은 '보물섬'이었다. 학용품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짜장면이 200원 하던 시절, '무려' 500원 넘던 고가(高價) 프라모델(플라스틱+모델)을 손에 넣기 위해 며칠씩 군것질을 참는 것도 다반사. 명동의 코스모스 백화점까지 진출해 전문 프라모델을 팔던 매장에 전시된 탱크, 비행기, 잠수함 모형을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1966년생 현태준(50)이 쓴 '소년생활대백과'(휴머니스트)는 그 시절 골목 어귀, 학교 앞 문방구에서 인생을 보낸 소년들에게 바치는 송가(頌歌)다. 이 '20세기 소년'은 그때의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고1 아들을 둔 아버지가 되어 대부분의 중년들이 기억 저편에 숨겨 놓은 1970년대를 조립식 장난감을 통해 복원해낸다.

19일 오전 현태준씨가 완구·인형 등 자신의 다양한 소장품을 모아놓은 서울 홍대 인근'뽈랄라 수집관'에서 프라모델 제품을 들고 있다. 그는"이 수집품들은 어린 시절 기억의 곳간을 열어주는 열쇠"라고 말했다.

"프라모델은 2차 대전 후 미군을 통해 처음 일본에 들어왔고, 그게 다시 우리나라로 흘러 들어온 게 60년대 말부터였어요. 그리고 70~8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개화(開花)한 것이죠." 그는 자신이 보유한 1만여 점의 프라모델 중 3000여점을 골랐고 전국의 내로라하는 수집가들을 찾아다니며 구한 제품들까지 하나하나 사진 찍고, 설명을 달았다. 전자게임에 자리를 내주기까지의 프라모델 흥망사도 들려준다.

"1970년대는 고도 성장기였어요. 베이비 부머들이 몰려들자 학교는 2부제, 3부제 수업을 해야 할 정도로 학생이 넘쳐났고, 학교 앞 문방구도 덩달아 호황을 맞았죠." 인생의 여명기, 프라모델로 만들어진 세상은 아이들에게 '세계' 그 자체였다. 그는 "그림으로만 보던 거대한 탱크와 비행기가 손안으로 들어오는 흥분을 잊을 수 없다"며 "내게는 개인 수집품을 정리하고 기록한 작업이었지만, 그 시절 '소년'으로 살았던 21세기의 중년들에겐 잊고 있던 기억의 곳간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했다.

전국의 문방구에 제품을 공급하던 학생사, 아카데미과학, 합동과학 등도 이 시절에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그러나 이 값비싼 장난감은 부모들의 눈에 '공공의 적'이었다. 유난히 '학습교재' '학생과학'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비행기 모형에 아예 '세계를 향한 기능공이 되자!'는 카피 문구가 붙기도 했다.

1970년대에 나온 아카데미과학의'아톰보트'(왼쪽)와 합동과학의'M60'탱크 모형.

1988년 올림픽 개최국으로서 세계저작권협약(UCC)에 의무 가입하면서 국내 모형업계는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그 자리를 일본산(産) 게임과 PC가 대체했다. 그는 "표절과 복제, 해적판을 양산했을 뿐 한국적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데 실패한 프라모델 산업은 내리막길을 걸었다"며 "압축 성장을 거듭한 우리 현대사의 복제판"이라고 분석했다.

사실 현태준은 프라모델뿐 아니라 완구, 학용품, 생활용품 등 수만 점을 보유한 국내 대표적인 컬렉터(수집가) 중 한 명이다. 전작 '아저씨의 장난감 일기'(2002)가 자신의 수집품 전반과 개인사를 다뤘다면, 이번 책은 프라모델을 통해 본 사회사의 성격도 있다.

그는 자신을 '괴짜 수집가'로 분류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는 "거창한 사람들, 위대한 사람들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살았던 한 시대의 단면(斷面)을 상세하게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앞으로 학용품과 생활용품 등 다른 분야에 대한 정리 작업을 통해 70~80년대 일상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