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팽배해지는 단기 성과주의도 한국 기업들이 원천 기술 확보를 위해 과감한 투자를 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2~3년 임기 내에 가시적인 실적을 내야 하는 CEO(최고경영자)들에게 미래 기술 투자는 "돈 먹는 하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자동차 업계의 한 CEO(최고경영자)는 "전문경영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연간 실적"이라며 "회사에는 향후 2년짜리 로드맵만 있고 5~10년 장기 로드맵은 전무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 계열사의 한 사장급 임원은 "신기술 투자 제안이 들어와도 선뜻 채택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신기술 투자에 뛰어들었다가는) 당장 회사 주가(株價) 떨어진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에 대한 초기 대응이 늦어진 탓에 크게 고전하는 것도 단기 성과주의와 관련이 깊다고 본다. 2009년 초콜릿폰, 프라다폰 등 일반 휴대전화(피처폰)으로 큰 이익을 내자 스마트폰 사업 전환을 주저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LG전자 내부에서는 "기술보다 마케팅에 중심을 두라"는 미국식 성과주의가 경영 방침이었고, 성공 가능성이 불투명한 스마트폰에 과감한 투자를 꺼린 게 사실이다.

단기 성과주의가 기업의 R&D 전략을 왜곡시키는 경우도 있다. 한 자동차 회사 연구원은 "'품질 경영'이라는 이름으로 양산 기술에 R&D 역량을 집중하면서 정작 미래 기술은 전혀 준비를 못 한다"며 "당장 판매 실적은 늘 수 있지만, 10~20년 뒤의 미래 시장은 빼앗기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도요타는 단기 성과에 영향을 받지 않고 미래 시장에 대비하기 위한 조직 혁신을 진행하고 있다. 10년 뒤 생산할 자동차를 준비하는 '선행기술 개발 조직'을 양산기술 개발 조직으로부터 분리·독립시켰다. 또 지난해 11월 미국에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도요타리서치인스티튜트(TRI)를 세웠다. 본사와 완벽하게 분리해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이 조직에 도요타는 앞으로 5년간 1조2000억원을 투자한다.

수년 전 국내 대기업에 기술을 이전했던 한 교수는 "버튼만 누르거나 키만 돌리면 되는 기술만 찾는 지금의 풍조로는 절대 한국 기업들이 스스로 기술을 축적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