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라서 더 즐거운 문훈 건축가…"궁극적인 목표는 건축의 유희를 찾는 것"
"달팽이, 옹달샘, 막대 사탕, 쇠뿔, 여자의 몸… 다양한 형태의 건물 시도"

문훈 문훈발전소 건축소장

‘왜 이단아가 됐나’라는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나 삼단아인데?’였다. 이제 세월이 꽤 흘렀으니, 칠단아쯤 됐을 수도 있단다. 건축계에서 괴짜로 통하는 문훈(48)은 튀지 못해서 안달난 사람 같아 보였다. 뿔 달린 펜션 ‘락있수다’와 핑크색 막대 사탕 모양의 ‘롤리팝’ 등 보는 이의 눈을 의심케 하는 건물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뉴욕타임스는 2012년 ‘한국의 기발한 집들’에서 문훈 건축가의 작품을 소개했다.

강원도 정선에 있는 ‘락있수다’ 펜션 건물에 황소 뿔 모양의 구조물을 달고 꼬리까지 만들어놨다.

문 소장은 올해 ‘기쁨의 건축’을 출간했다. 이 책은 ‘괴짜’가 아닌 그냥 ‘건축가 문훈’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책에서 줄곧 여느 건축가 같이 건축물에 대해 현실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그는 “관공서 허가부터, 설계도 구현, 시공사 계약 등 건축은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건축을 고려하는 일반인에게 유용한 책”이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제목은 기쁨의 건축이다. 문 소장은 “건축이 어려운 일이지만 즐거운 감정을 지켜내려는 태도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서울 역삼동 문훈발전소에서 문훈 소장을 만났다. 2층에 있는 사무실 문에서부터 범상치 않았다. 사무실 문은 빨간색. 거기에 화투의 ‘팔광’을 패러디한 로고가 붙어 있다. 명함도 팔광이다. 사무실 가운데에는 새빨간 정자가 한가운데 놓여 있다. 정자 안에 있는 의자, 계산기, 서랍장, 수첩도 모두 빨간색이다. 사무실을 둘러보며 눈이 휘둥그레진 기자에게 문훈은 ‘내가 빨갱이이잖아’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자유분방한 성격인데, 어떻게 현실적 제약이 많은 건축을 하게 됐나요.

“중학교 2학년부터 지질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호주 태즈매니아 섬의 호바트에서 3년을 보냈습니다. 그곳은 인구 10만명, 크기는 남한 정도인데, 풍경이 아름답고 다른 세상 같았지요. 당시 풍경화를 그리는 것에 흥미가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건물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때 서울로 돌아왔는데, 미대에 가서 화가가 되겠다는 확신은 없고, 막연히 건축이 성향에 맞을 것 같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운이 좋았지요.”

경기도 용인의 ‘롤리팝’이라고 이름 붙여진 달팽이 모양의 핑크색 주택은 마치 대형 사탕을 연상시킨다.

-특이하다는 소리를 종종 듣고 있지요?

“저는 특이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참치가 사는 나라에 오징어가 놀러 왔어요. 오징어 다리가 8개라서 특이하다고 하는 건데, 전 그냥 다리가 8개일 뿐 이예요. 스스로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나’를 열심히 표현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자신을 덜 표현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에게 개성은 내재되어 있어요. 그걸 얼마나 겉으로 보여주느냐 마느냐의 차이입니다. 저는 절대 특이해지려고 노력하지도 않아요. 굳이 왜 힘들게 그러겠어요.”

-이단아, 괴짜 등 수식어에 거부감이 있나요?

“아니요. 거부감이 아니라 지겨워요(웃음). 늘 똑같은 얘기를 하니, 이제 다른 말로 불리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수식어요?

“그냥 건축가 문훈이요. 자유롭게 생각하는 건축가 정도?”

◆ “연결되지 않는 것들을 연결한다”…문훈의 액션 건축

문훈 소장이 화투의 팔광으로 디자인한 명함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 소장은 사실 실력파다. 1993년 MIT(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건축과 석사를 마쳤고, 2005년 한국건축가협회상, 국내 건축학과 교수들이 뽑은 ‘한국건축을 대표하는 12인’에 이름을 올렸다. 2014년에는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지난해 시카고 건축비엔날레 초대 작가로 선정됐다.

-다른 건축가와 달리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도 열던데, 전방위 예술가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예술가는 아닙니다. 건축가는 예술가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전자의 경우 의뢰인의 의도와 욕망이 투영되고 그들의 자본이 있어야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며 동시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내야 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제가 가진 관심을 다방면으로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불펜, 목탄, 사인펜 등 새로운 재질로 보여주고 싶은 것이죠. 현대 문명에서는 어떤 하나를 열심히 파는 사람을 전문가라고 하고 높은 가치를 두잖아요? 전문성은 유지하되 태도는 아마추어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건축이라는 방향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방황을 하려고 합니다.”

-요즘 친환경, 협소 주택 등 건축계에서 중요한 이슈들은 어떻게 보시나요?

“저는 트렌드에 관심이 없어요. 개인적으로 친환경이라는 말을 안 좋아합니다. 뭐 그전에는 환경이랑 안 친했다는 건가요? 마치 친서민 정책 이런 말 같습니다. 결국 원래는 서민들한테 관심이 없었다는 말이잖아요. 정말 순수한 의미에서 환경을 생각하는 건지, 환경 산업을 일으키려는 프로파간다인지. 협소 주택도 원래 있었어요. 작은 땅에 짓는 건축 종로나 달동네 가면 다 있던 겁니다. 이제 와서 왜 호들갑 떠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떤 건축에 관심이 있나요?

“재미있고 즐겁고, 역동적인 공간이 좋습니다. 건축과 예술이 접점을 찾는 지점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건축과 다른 장르를 혼합해 보면 어떨까. 다양한 행위를 통해서 건축을 표현하고, 건축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계속해서 한계를 넘어보고 확장하고 싶습니다. 예컨대, 음식과도 연결지을 수 있어요. 물론 음식 자체가 건축은 아니지만, 접시 위에 놓여 있는 방식을 영감으로 새로운 건물을 지을 수 있습니다. 또 씹히는 분위기, 맛도 표현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뿐 아니라 자동차, 구름, 낙엽, 바람, 파도 등 주변의 모든 것이 건축과 연결될 수 있지요.”

충북 오창의 주택은 계단의 일부가 미끄럼틀로 만들어졌다.

문훈 소장은 ‘건축물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을 깬 다양한 설계로 주목받았다. 일명 달팽이 집으로 유명한 롤리팝 하우스부터, 뿔과 꼬리를 단 펜션,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것처럼 보이는 집, 항공모함의 조종석을 옮겨 놓은 건물 등을 통해 건물의 움직임을 표현했다.

-그래서 문 소장의 작품을 ‘액션 건축’이라고 하나 봅니다.

“저는 반응하는 반응체로서의 건축에 관심이 갑니다. 바람이 불면 하늘하늘하잖아요. 멀리서 보면 살아 있는 거 같은 거죠. 건축물도 마치 생명체처럼요. 기존 건축은 영원을 지향하지만, 건축물도 움직이고 반응하다가 시간이 흐르면 동물처럼 사라지는 것이 맞는다고 봅니다. 무릉도원 같은 것, 도산서원 같은 건축물을 하늘에 띄워보고 싶습니다. 바람이 불면 움직이기도 하고, 형태만으로도 움직임이 느껴지는 그런 디자인이 좋습니다.”

-건축물에 움직임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기계적 장치를 써서 뭔가를 할 수 있겠죠. 화전민의 집이나 공장처럼 연기가 난 달지. 또 다른 방법은 부드러운 재료를 쓰는 겁니다. 사람이 벽에 기대면 벽이 들어가면서 그 사람을 감싸주는 거예요. 뭔가 움직이는 겁니다. 건축은 딱딱하고 영원불멸성을 추구하는데 제가 그걸 바꾸려고 하는 거죠. 자꾸 이륙하려고 하고, 건물은 땅을 바탕으로 하는데 그걸 거부하려고 하고. 그래서 창을 갖고 다양한 시선을 만드는 것에도 관심이 많아요. 광각이나 착시를 이용하는 것도 좋아하고, 계단을 이용해 실험해 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문 소장은 현재 영등포구에 표면을 손가락 지문의 모양으로 디자인한 협소 주택을 건축 중이다.

-달팽이, 옹달샘, 막대 사탕, 쇠뿔, 여자의 몸 등 문훈의 건축물에 형상화된 사물들은 어떻게 선택된 것인가요?

“각각 다 이유가 있습니다. 뿔은 스페인의 투우를 연상시켜 만든 것이고, 롤리팝은 원래 롤리팝을 만들려던 건 아닌데 집 내부가 회오리에요. 건물 외관에도 회오리바람을 표현한 겁니다. 공간은 3차원 밖은 2차원으로. 근데 그것이 하필이면 색깔이 그러니까 사탕(롤리팝)이라고 이름 붙인 거죠. 어린 애들이 빙빙 도는 거 좋아하잖아요. 사람이 빙빙 돈다는 건 어떤 축제나 즐거움, 환상, 미궁을 떠올리게 하죠. 그런 여러 가지 얘기들을 포함할 수 있게 한 거예요.”

-롤리팝 건물은 처음부터 사탕을 생각하고 만드신 게 아니라는 거죠?

“그렇죠. 물론 그렇게 시작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우연히 만들어집니다. 마치 바위가 태어날 때부터 거북이 바위로 태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바위는 비에 씻겨서 거북이 바위가 된 거죠.”

-앞으로 어떤 건축가로 기억되고 싶다든지 목표가 있나요?

“그냥 재미있게 건축하고 싶습니다. 건축가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에요. 사무소를 운영하는 CEO이자, 회계를 들여다보는 CFO이자,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영업맨이기도 합니다. 힘들지만, 재미있으니까 할만한 일인 것 같습니다. 제가 짓는 건물을 보고 ‘놀고 있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제가 놀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나요? 놀이가 제 목표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일을 통해 유희를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를 짓는 문인들이 유희를 목표로 삼듯, 저도 건축에서 ‘재미’를 발견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