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주들을 ATM(현금인출기) 취급하는 것 아닌가."

"주주가 기업과 기본적인 소통도 할 수 없는데 이게 무슨 정상적인 상장(上場) 기업이란 말인가."

한 포털사이트 토론방에서는 '외국기업 상장 행태를 고발한다'는 내용의 청원운동이 2주째 벌어지고 있다. 국내 증시에 상장한 외국 기업, 특히 중국 회사들이 부실한 경영상태를 제대로 알리지 않거나, 대주주가 먹튀 행위를 일삼아 상장 후 주가가 폭락, 큰 손해를 봤다며 주주들이 금융당국을 상대로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2007년 중국 음향기기업체 3노드디지탈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국내 증시에 상장된 중국기업은 총 17곳. 이 중 7곳이 상장 폐지돼 증시에서 사라졌다. 2011년 상장한 섬유업체 중국고섬은 상장 2개월 만에 분식회계 사실이 드러나 퇴출당하는 과정에서 2000억원가량의 주주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중국원양자원, 차이나하오란, 글로벌에스엠 등 중국·홍콩 기업들이 '제2의 고섬 사태'를 일으키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낳고 있다.

국내 증시 상장한 중국 기업 17社 중 7社 상장폐지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사학연금회관에서 열린 중국원양자원 정기주총에서는 소액주주들의 반란이 일어나 회사 측이 상정한 7개 안건 중 4개가 통과되지 못했다. 사측은 이사 재선임과 회사정관 개정, 신주발행 결의 권리위임,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등을 시도했지만, 주주들이 '더는 우리 돈을 희생시킬 수 없다'며 맞섰다.

중국 원양어업 기업인 이 회사는 '중국인들의 소득이 올라가 도미·참치를 먹기 시작하면 대박 난다'는 기대감 속에 상장해 큰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최대주주 지분율이 54%에서 0.8%로 급감했다가 다시 15%로 늘어난 후 도로 7%대로 떨어지는 등 불투명한 경영이 계속되면서 1년 3개월 전 1만2850원까지 치솟았던 주가가 15일 현재 2125원까지 폭락했다. 중국원양자원처럼 현재 국내 코스피·코스닥 시장에 상장돼 있는 중국계 기업은 총 10개다. 이 중 일부가 국내 소액주주들을 무시하고 홀대하는 행태로 말썽을 빚고 있다.

그래픽=김성규 기자

가장 잦은 유형은 '불성실한 공시'다. 중국원양자원의 경우 상장 이후 5차례나 불성실공시 법인으로 지정됐다. 2012년에는 최대주주를 거짓으로 기재해 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이 회사뿐만 아니라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차이나하오란, 글로벌에스엠 등이 공시 불이행·공시번복 등의 사유로 불성실 공시법인으로 지정된 적이 있다.

두 번째 유형은 소액주주들을 무시하는 불성실한 태도다. 중국원양자원의 주주총회에 참석하기로 돼 있었던 이 회사의 대표는 화상으로만 모습을 드러냈고, 감사는 아예 나타나지 않았다. 대표를 상대로 지분을 대거 처분한 이유를 따지려던 소액주주들은 분개했다. 지난달 29일 열린 중국 건강식품 기업 씨케이에이치의 임시주총에서는 비상근 감사 선임 문제를 놓고 소액주주들과 회사 측이 다퉜다. 소액주주들은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한국인 감사(비상근)를 선임해 달라고 요구했는데, 회사 측은 "비상근 감사에 관한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안건 상정조차 거절했다.

세 번째 유형은 '먹튀'. 작년 말 밸브업체 엔에스브이를 인수한 북경면세점사업단은 중국 베이징에 대규모 공항 면세점을 세운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해 주가가 단기간에 60% 가까이 급등했다. 그런데 북경면세점사업단은 지난달 14일 갖고 있던 지분 8.78%(102만주) 중 80만 주를 장외에서 팔아버렸고 같은 달 23일 주식 매매거래가 정지됐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일을 기업 인수 후 '신사업'을 추가해 주가를 띄운 뒤 팔고 나가는 전형적인 먹튀 수법으로 보고 있다.

투자자 보호, 손 놓은 금융당국

중국계 상장기업들이 갖가지 말썽을 일으키고 있는데도 상장을 주선한 한국거래소와 상장제도를 담당하는 금융위원회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스펙이 좋은 신입사원이 일을 잘할 것이라 기대하고 뽑았는데, 일 시켜보니 예상과 달리 사고를 치는 게 회사 시스템의 문제인가. 규정에 맞아 상장시켰지만, 기대와 달리 회사가 부실해지는 경우 등은 시장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외국 기업이라고 예외는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몇 가지 이유를 들어 국내 증시에 상장하는 중국계 기업에 대해 신중한 투자를 당부하고 있다. 우선 국내 증시에 상장하는 중국 기업들의 사업성 문제다. 현재 중국에선 상장을 기다리는 기업이 600~700여 개에 달하는데다, 돈이 될 알짜 기업의 해외 상장은 중국 당국이 막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한국 증시에 상장하려는 중국 기업은 사양산업에 속한 곳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시각이다.

또 국내 상장 중국 기업 중에는 정부 규제를 피해 손쉽게 해외상장을 하기 위해 케이맨제도, 홍콩 등지에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한 뒤 역외 지주회사를 상장시키는 방식을 택하는 기업도 있다. 크리스탈신소재, 씨케이에이치, 차이나그레이트 등이 대표적이다. 금감원 기업공시국 관계자는 “사업회사 소재국가와 SPC 설립국가 사이에 법규·제도 차이가 있어 국내 투자자의 주주권이 제한될 소지가 있고, 본국의 사업회사로부터 배당 역시 제한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