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충청남도 보령시에 속하는 남포현 지역을 답사하였다. 옛 군현명은 남포면으로 남아있다. 현재 보령 관광안내도에 남포 읍성이 등장하는데 이곳이 옛 중심지이다. 남포 읍성을 보려면 남포초등학교로 가야 한다.
초등학교 주변 논밭 옆에 옛 읍성이 남아 있다. 옛지도에는 읍성 안에 여러 관아 건물들이 그려져 있지만 지금은 관아문, 내삼문, 동헌만 남아 있다. 초등학교 뒤편으로 가면 이 건물들을 볼 수 있다.
관아 정문은 2층의 다락 형태로 되어 있고 현판에는 진서루(鎭西樓)라고 적혀 있다. 진서루를 지나면 옛 비석들과 옥산아문(玉山衙門) 현판을 단 삼문(三門)이 보인다.
관아 밖의 문은 2층 다락문이고 안쪽의 문은 가운데가 솟아 있는 삼문 형태이다. 이 문이 내삼문(內三門)이고 이 문을 통해 들어가면 동헌이 나온다.
여러 관아 건물이 있었을텐데 이 세 건물만 남아 있으니 옛 구조를 반영한 것은 아니다. 남포초등학교 일대가 읍치(邑治)였음을 확인하는 걸로 만족하였다.
남포현의 중심부를 답사했으니 이제는 외곽 지역을 돌아보기로 한다. 보령 사람들이 '보령의 지붕'이라고 부르는 산이 성주산이다. 자연휴양림으로 유명한 곳인데 이곳에 오래된 절터가 있다.
지금 성주사지(聖住寺址)로 불리는데, 처음에는 백제의 오합사(烏合寺)로 불리다가 통일신라 때 낭혜화상 무염대사(朗慧和尙 無染大師)가 다시 크게 세웠다. 성주사로 이름을 바꾼 것은 신라 문성왕이라고 전해진다. 통일신라 선문구산(禪門九山) 중 하나이다.
절터 가장 뒤편에 보이는 탑비(塔碑)가 낭혜화상 탑비이다. 옛지도에 이 비를 그리고 최고운비(崔孤雲碑)라고 적어 놓았다. 최고운은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을 가리킨다. 이 절을 다시 일으킨 낭혜화상을 기리기 위한 비문을 최치원이 지었고 최인연(崔仁渷)이 글씨를 썼다. 국보 제 8호이다.
보령 관광 안내도에 특산품으로 남포 오석(烏石)이 등장한다. 이 돌에 글씨를 새기면 흰색, 갈면 검은색 빛이 난다고 전해진다. 낭혜화상 탑비는 남포 오석으로 만들어졌다.
낭혜화상 탑비에서 동쪽으로 조금 가면 석불입상(石佛立像)이 보인다. 훼손되어서 본 모습을 알기가 어렵다. 권위적이지 않고 소박한 느낌을 준다. 이 불상도 옛지도에 같은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석불 입상 앞에는 삼층석탑 셋이 서 있다. 세 탑 모두 다른 곳에서 옮겨온 것으로 조사되었다. 중앙삼층석탑은 보물 제 20호, 서삼층석탑은 보물 제 47호로 지정되었다. 이 탑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이 탑들은 옛지도에 그려져 있지 않다.
옛지도에는 오층으로 된 탑이 그려져 있다. 삼층석탑 앞에 석등(石燈)과 오층석탑이 세워져 있다. 오층석탑은 보물 제 19호로 지정되었다.
절터를 섣불리 복원하면서 건물을 새로 짓지 않았다. 옛 절터에 탑, 불상, 비석만 있어 운취가 있었다. 봄 보다는 가을이나 겨울에 오면 주변 산세와 어울려 더 분위기가 좋을 것 같았다.
보령에는 화력발전소도 있고 폐탄광을 활용한 냉풍욕장이 있다. 우리나라 석탄산업은 쇠퇴하여 거의 대부분 수입해서 사용하고 있다. 보령청소년수련관 근처에 보령석탄박물관을 세워 놓아 가보았다.
석탄 산업 관련 암석들과 탄광에 관한 설명, 작업에 필요한 도구들을 전시해 놓았고 탄광 작업 모습도 재현해 놓았다.
지하로 내려가면 전시관 내부와 연결되어 있는 갱도도 볼 수 있다. 전시관을 구경하고 지하에서 위로 올라올 때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고속 엘리베이터였지만 제법 시간이 걸렸다. 물론 탄광에는 없던 시설이었다. 지하 400m 갱도에서 올라오는 체험을 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탄광에서의 노동이 생명을 담보로 하고 있기에 금기사항이 많았다. 이곳에서도 그 내용을 전시해 놓았다. 몇 가지만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광부들은 '흉몽을 꾸면 출근하지 않는다. 여자가 그릇을 깨면 출근하지 않는다. 부부싸움 후에 갱내에 들어가지 않는다. 퇴근 후에 막걸리를 마시지 않으면 규폐에 걸린다.'
탄광 작업장에서는 '입갱할 때 뒤돌아보지 않는다. 갱내 작업장에는 4자를 붙이지 않는다. 죽은 혼을 내보내기 전에는 작업하지 않는다. 갱내에서는 쥐를 잡지 않는다.'
탄광 주민들은 '도시락에 밥을 담을 때 4주걱을 담지 않는다. 사택에서는 숫자 4를 사용하지 않는다. 사택에서 여자가 밤에 울면 집이 망한다. 출근하는 앞길을 여자가 가로지르지 않는다. 출근하기 전 여자가 방문하지 않는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고 남자들의 공간이므로 여자를 금기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석탄 산업이 쇠퇴하기 전 지리교육과나 지리학과에서 탄광에 답사를 가면 여학생들은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를 선배들에게 들은 적이 있다.
아무리 조심하여도 탄광에서 사고를 생기지 않을 수 없는 법. 야외 전시장 옆에 위령탑이 세워져 있었다.
남포의 내륙 지역을 보았으니 이제 바닷가로 이동한다. 유명한 해수욕장이 무창포해수욕장이다. 무창포의 대표적 축제가 주꾸미 도다리 축제이다. 2016년에는 3월 18일부터 4월 10일까지 축제가 열렸다.
무창포는 신비의 바닷길로도 유명하다. 해수욕장에서 사진 오른쪽의 석대도까지 음력 그믐과 보름 사리 때 약 1.3km의 바닷길을 걸어갈 수 있는 시기가 있다.
서해안이기에 밀물과 썰물의 영향으로 바다를 걸을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간척에 유리한 지형이 된다. 무창포에서 북쪽의 죽도와 대천해수욕장 방향으로 가다보면 방조제가 나온다. 한 쪽은 바다이지만 남포 방조제 너머는 간척된 땅이다.
가는 길에 죽도 관광지를 만난다. 바다에 있던 섬이 육지와 연결되면서 관광지로 변했다.
옛 읍성, 옛 절터, 옛 탄광, 갯벌과 간척지를 볼 수 있는 지역이 조선시대 남포현이다. 다양한 시각으로 서해안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지역이므로 답사지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