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8일 오후 자동차로 경부고속도로를 40분간 내달려 삼성전자 본사가 있는 수원 삼성디지털시티에 도착했다. 삼성전자의 역사를 보관한 삼성이노베이션뮤지엄(SIM) 건물을 지나 무선개발연구소 빌딩(R5)에 들어섰다. 회의실 문을 여니 검은색 재킷을 걸친 장세영 IM(모바일·커뮤니케이션) 무선사업부 선행요소기술그룹장(상무·41·사진)이 반갑게 맞았다. 장 상무의 얼굴엔 화장기가 없었다. 머리는 뒤로 질끈 묶은 모습이었다.

인터뷰 녹음을 위해 스마트폰을 책상 위에 놓았다. 장 상무의 눈이 번뜩이더니 스마트폰을 집어들어 이리저리 살폈다. 기자가 쓰는 스마트폰은 삼성전자 갤럭시S6다.

장 상무는 "길거리에서 저희가 만든 제품을 들고다니는 걸 보면 뿌듯함을 감출 수 없어요"라며 "다 자식 같거든요"라고 입을 열었다.

장 상무는 삼성전자(005930)기술력의 정수를 담은 갤럭시 시리즈의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갤럭시 스마트폰을 얇고 가볍게 만드는 이른바 하드웨어 '경박단소(輕薄短小)'를 담당했다. 배터리의 용량 증대, 급속 충전, 전력 설계 등 스마트폰의 핏줄을 만드는 일도 겸했다.

장 상무는 2013년말 상무로 승진했다. 그 당시 임원 중 유일한 30대(1974년생)였다. 삼성전자 역사상 30대에 임원을 단 두번째 여성이다. 삼성전자는 장 상무의 발탁 배경에 대해 "갤럭시S4와 갤럭시 노트3 배터리 수명 증대를 주도한 공로를 인정받았다"고 설명했다. 장 상무는 경기과학고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 입학해 재료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갤럭시S7과 갤럭시S7 엣지(왼쪽).

장 상무는 갤럭시S7을 가장 예쁜 자식으로 꼽았다. 막내가 제일 예쁘다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장 상무는 "갤럭시S7은 완전체"라며 "이용자가 원하는 개선점을 가장 잘 반영한 제품이다"고 말했다. 그 덕일까. 갤럭시S7은 갤럭시 시리즈 중 가장 빠르게 글로벌 1000만대 판매를 돌파했다.

◆ 삼성 수뇌부 특명 "배터리 이용시간, 발열 잡아라"

-갤럭시S7 개발 과정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배터리 용량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진통이 있었다. 사용자들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점점 늘고 있다. 열심히 전력 소모를 줄이고 있지만 배터리 용량은 늘 모자란다는 불평을 듣는다.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와 디스플레이의 전류를 낮추고, 배터리 사용시간을 개선하는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을 새로 넣어도 부족하다는 평이 많았다.

가장 불만이 많은 이용자를 중심으로 얘기를 들어봤다. 이들은 사용 시간만 따졌을 때 상위 10%에 드는 이용자들이었다. 데이터를 보니 스마트폰을 하루에 10시간 정도 사용했다. 이들의 배터리 적정 용량은 3000밀리암페어(mAh)로 계산됐다. 3000mAh 용량은 이전까지 6인치 이상 대화면 제품(갤럭시 노트5, 아이폰 6플러스)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LG전자 G5의 배터리 용량은 배터리 모듈을 제외하면 2800mAh다) 전작인 갤럭시S6, 갤럭시S6 엣지보다 600~700mAh가량 더 많은 용량을 확보해야 했다. 물리적으로 커질 배터리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부품간 간격을 좁히고, 에너지 밀도를 높이는 데 온 힘을 쏟았다."

-배터리는 하드웨어 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기술도 필요한 '종합예술'이라고 하는데.

"배터리 지속 시간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물리적인 용량 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효율성이다. 스마트폰에 선(先)탑재되는 소프트웨어들이 배터리 용량을 필요 이상으로 차지하지 않는지 검사하고, 관리해야 한다. 갤럭시S7에서는 구글의 협력이 한몫했다. 구글은 이전까지 개발자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했다. 이 때문에 제조사들이 소프트웨어 전력 소비를 줄이기 위해 수정하려 들거나 개입하려 들면 막는 편이었다.

그러나 최근 구글이 배터리 이용시간의 중요성을 공감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부분 도움을 받았다. 휴면(dose) 모드가 추가된 것이 그 중 하나다. 이전에는 스마트폰을 조작하지 않아도 계속 동작하는 앱들이 있어 전력을 소비했는데, 휴면 모드에서는 작동을 차단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미국 컨슈머리포트로부터 배터리 사용 시간 부문 평가 '엑셀런트(excellent)' 등급을 받게됐다."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해 신종균 사장, 고동진 사업부장(사장) 등 경영진이 특별히 부여한 임무가 있었나.

"앞서 말한 배터리 사용시간과 발열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었다. 특히 발열은 반도체 공정의 선폭이 좁아질수록 중요해지는 문제다. 갤럭시S7에는 PC에서 쓰던 초박형 박열 솔루션인 '써멀 스프레더(thermal spreader)'를 적용했다. 이 기술은 발열을 막는다기 보다는 효율적으로 열기를 배출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비어있는 내부 관 한쪽 끝에서 열이 나면 안에 있는 물(냉매)이 그 열에 의해 기화하고, 기화된 냉매는 기체와 액체의 압력차로 반대쪽으로 밀려 나가 열을 빼내고 다시 식어서 액체가 되는 원리다. 이를 통해 겉면 온도를 이전보다 2.5도 낮췄고 AP 내부 온도 역시 10도 가량 낮추는 데 성공했다."

◆ "기술 과시욕 뺐더니 완전체가 나왔다"

-갤럭시S7에 큰 혁신이 없다는 지적도 있었다.

"갤럭시S1 때부터 개발에 참여하면서 느꼈던 점은 성능 과시에 치중했다는 것이다. 이전보다 성능을 이만큼 개선했다고 광고하는 등 이른바 '스펙(제품 규격)'을 중요시했다. 갤럭시S7은 군살을 뺀다는 느낌으로 접근했다. 과시욕을 버렸다. 스펙 경쟁에서 벗어나 실질적으로 이용자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부분에 집중했다.

예컨대 USB 타입C 단자도 기술적으로 준비는 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타입C 단자를 활용할 주변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았다. 당장 충전기를 이용하기 어려운 환경에서는 활용도가 크게 떨어진다. 급속 충전도 더 개선된 기술을 준비했다. 10분에 20%씩 충전하는 기술이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배터리 용량에서 손해봐야하는 단점이 있다. 플렉서블(휘는)과 같은 새로운 배터리 폼팩터(형태)나 초고속 충전 기술들도 배터리 용량을 희생하면서 추진하진 말자는 생각이 앞섰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내부적으로 논란이 많았다. 특히 하드웨어 개발자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 기술적인 '점프업(jump up·도약)'을 포기한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기술적인 점프업을 포기했다는 건 기존 기술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얘기다. '세계 최초'와 같은 타이틀의 부담에서 벗어난 첫 작품으로,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스마트폰 기술들의 완전체라고 생각한다."

◆ 하드웨어 1등 삼성의 개발자·워킹맘으로서의 삶

-삼성전자에서 개발자로서 일한다는 건 어떤 느낌인가.

"피곤한 게 사실이다. 늘 바쁘고 할일도 많다. 나를 비롯한 모든 팀원은 모든 면에 있어서 1등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 스트레스인 반면에 자부심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업무강도가 세기로 유명하다. 요새도 그런가.

"삶과 일의 균형이 맞지 않아서 미국으로 도망간(웃음) 친구가 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 '요새는 집에 일찍 간다'며 너무 성급하게 그만뒀다고 말해줬다. 지난해부터 차츰 바뀌고 있다. 잔업이나 특근이 피부로 느껴질 만큼 줄고 있고, 월급날에는 퇴근 시간에 맞춰 소등을 해버린다. 집에 가라는 얘기다. 지난 주말에는 출근했더니 나 혼자였다. 아무도 없어 당황하긴 했지만, 조용해서 집중하기에는 좋았던 것 같다. 새삼 회사가 많이 변했다고 느낀 날이었다."

경기도 수원시 삼성 디지털시티 R5(모바일) 연구소

-오래 다니기 힘든 조직이라는 비판도 있다.

"어느 회사든 그만두는 가장 큰 이유는 조직 내 개인간 갈등이다. 그런데 경험상 이런 갈등은 십중팔구 서로 얘기를 하면 풀린다. 고동진 사업부장(사장)도 이런 측면에서 직원들의 얘기에 귀를 많이 기울인다. 사내 게시판에 올라오는 익명 상담글을 일일이 살피고 댓글을 단다. 상사로부터 받는 스트레스, 사내 부조리, 비합리적인 업무 프로세스 등에 대한 의견을 취합해 조치를 취한다. 사업부장이 나서서 이렇게 하니 임원들도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것 같다.(웃음)"

-삼성전자는 여성이 일하기에 어떤 조직인가.

"회사를 오래 다니는 여성 후배들이 점점 줄고 있는 건 사실이다. 개발 임원회의를 하면 그 큰 회의실에서 나만 여자였던 때도 있었다. 한번은 모 부사장이 내게 찾아와 왜 여자 개발자들이 많이 그만두느냐며 고민상담을 해온적도 있다."

-여자라서 특별히 힘들거나 한계가 있는걸까.

"예전에 페이스북 여성 임원 셰릴 샌드버그가 쓴 린인(lean in)이라는 책을 읽고 많은 공감을 했다. 샌드버그가 책에서 쓴 내용 중에 '하이디'라는 인물에 대한 얘기가 특히 와닿았다. 성공한 여성 기업가 '하이디'의 일대기를 읽은 대부분 독자의 평은 '쌀쌀맞거나 냉정할 것 같다'라는 부정적인 내용이었다. 그런데 하이디를 남성의 이름으로 바꿨더니 독자들의 평이 '친해지고 싶다'와 같이 호감을 느끼는 쪽으로 몰렸다. 이런 인식의 문제가 삼성전자나 한국에만 한정된 게 아니라는 걸 느꼈다.

그럼에도 후배들에게 '버텨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개발 업무가 과중한 것은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러나 가족, 팀원들에게 얘기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개인적으로 여자라서 힘든 건 없었다. 직급이 낮았을 때는 대단하지 않은 문제로 잠도 못자고 힘들어했다. 그러나 내공이 쌓이니 스트레스도 거의 받지 않는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딸아이와 함께 잠자리에 들면 싹 사라진다. 결론적으로, 여 후배들이 직장생활의 대안으로 가사활동을 하진 않았으면 한다."

-육아 문제는.

"어디나 직장생활은 어렵지만, 육아가 덧붙여지면 더욱 힘들다. 한국 정서상 아빠가 맡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다. 유치원에 아빠에게 연락하라고 연락처를 남겨도, 상의할 부분이 생기면 꼭 엄마에게 전화한다.

삼성은 제도적으로 육아에 도움을 많이 주는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육아휴직이나 출산휴가는 물론, 모성보호 제도도 별도로 있다. 임신한 순간부터 출산 후 1년까지 잔업이나 야근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 모성보호 직원의 사원증 목걸이 색깔은 다른 직원들과 달라 구분하기도 쉽다."

◆ "10년 뒤에도 딸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회사였으면"

-삼성전자의 미래는 어떨 것 같나.

"희망사항으로 답변을 대신하겠다. 우리 애들이 10살, 7살이다. 애들이 컸을 때는 삼성전자가 진정한 세계 1위가 돼서 어딜 둘러봐도 삼성전자 제품이 보였으면 한다. 딸아이가 친구들한테 우리 엄마가 삼성전자 다닌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는데, 10년 뒤에도 마찬가지로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10년 뒤에는 어떤 사람이 돼 있을 것 같나.

"후배들을 많이 키워놓고, 훌훌 여행을 다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회사가 그때도 나를 필요로한다면 더 많은 후배와 일하고 있을 수도 있다. 내일 죽더라도 후회없이 살자는 마음가짐을 지니고 산다. 허락되는 때까지, 이용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재미있는 프로젝트들을 지금 팀원들과 계속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