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 BMW, 메르세데스 벤츠 등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은 '가볍지만 강한 차'를 개발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환경 문제와 안전에 대한 규제가 점차 강화되고 있어 자동차 업체마다 고효율 엔진 개발과 차체 경량화를 통한 연비 향상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무게(강판)를 가볍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차체 중량이 10% 감소하면 연료 소모는 8%, 탄소 배출은 4% 줄어든다.
◇진화하는 자동차 강판
자동차 경량화의 핵심은 강판의 성능 개선이다. 탄소섬유(CFRP), 마그네슘, 알루미늄 등 첨단 소재의 사용 비중이 높아진다고 해도 역시 기본은 철(鐵)이기 때문이다.
1886년 세계 최초의 자동차 '페이턴트 모터바겐(Patent Motorwagen)'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1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산업 트렌드에 따라 기술과 소재도 진화하고 있지만, 철은 자동차 생산의 가장 전통적이고 대중적인 소재다. 가공성·용접성이 뛰어나고 경제적이며, 도금을 통해 내식성 (耐蝕性·부식에 강한 성질)을 쉽게 높일 수 있어 자동차 제작에 있어 최적의 소재로 꼽힌다.
'철강 제품의 꽃'이라 불리는 '자동차강판'은 재료의 강도를 측정하는 단위인 인장강도에 따라 저강도강(LSS), 고강도강(HSS), 울트라 고강도강(UHSS)으로 구분된다. 세계철강협회는 마일드 스틸, 컨벤셔널 고강도강(Conventional HSS), 첨단 고강도강(AHSS)으로 나눈다.
자동차는 언뜻 보기에는 한두 개의 철 제품이 사용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60개 이상의 서로 다른 철 제품이 들어 있다. 부위별로 조금씩 특성이 다른 제품들을 쓰고 있는 것이다. 차의 외관을 완성하는 외판재는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으면서도 충돌이 일어났을 때 충격에 대해 저항하는 성질도 충분히 갖춰야 한다. 이에 따라 새로운 자동차 강판 개발에는 보통 2년에서 2년 6개월이 걸린다.
◇위기의 철강업계, 자동차 강판에 올인
국내 철강업계도 차체 경량화를 위해 기존 강판 대비 가벼우면서도 강도가 강한 고장력강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판매를 늘리고 있다. 올 1월 포스코는 전 세계 철강사 중 최초로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서 포스코의 기술력을 대표하는 최첨단 강재인 트윕강(TWIP)을 포함한 초고강도·경량화 제품 30여종을 선보였다.
포스코는 1973년 현대기아차, 대우자동차 등 국내 자동차 회사에 열연코일을 판매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GM, 폴크스바겐, 혼다, 닛산, 쌍용차 등 글로벌 '톱 15' 자동차업체에 강판을 공급하고 있다. 2015년 포스코는 자동차 강판 판매량 약 870만t을 달성했다. 이는 세계 자동차 강판 물량의 10% 수준. 포스코는 자동차 회사와의 파트너십을 한층 강화해 올해 900만t 이상, 2018년 이후에는 1000만t 판매 체제를 완성할 계획이다.
현대제철도 자동차 충돌 성능과 경량화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초고장력 강판 개발에 집중해 왔다. 초고장력 강판은 2013년 12월 출시된 제네시스에 들어가는 등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또 가장 개발이 까다로운 분야로 평가받고 있는 자동차용 외판재에서도 고강도를 유지하면서 가공 성형성을 한층 높인 고성형성 초고강도 외판재를 개발했다. 또 현대제철은 자동차 시장의 확대와 초고장력 강판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당진 2냉연공장에 1295억원을 투자해 제2 CGL(아연도금강판 및 초고강도 알루미늄도금강판 생산 설비)을 신설해 올해부터 고품질 자동차용 강판을 생산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의 정은미 선임연구위원은 "중국발 공급 과잉과 조선 등 대표적인 철강 수요 산업의 마이너스 성장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철강업체들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강판 등 고부가가치 제품의 개발·판매에 투자를 더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