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봉균 새누리당 공동 선대위원장이 4·13 총선 정책 공방에 불을 붙이고 있다. 여야 모두 극심한 공천 파동에 휘말리면서 "아예 정책 경쟁은 실종됐다"는 말이 나오던 참에 '폭탄급' 정책 아이디어를 던지는 바람에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물론이고, 장외의 기획재정부·한국은행 등까지 휘말리고 있다. 강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 겸 선대위원장에 맞설 대항마로 갑작스럽게 영입돼 무대에 올랐다. 그런데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경력과 연륜으로 새누리당 선대위에서 '아이디어 뱅크' 역할을 하면서 일단 눈길을 끄는 데 성공했다. 김종인 대표가 2012년 대선에 이어 2016년 총선에도 '경제민주화'라는 어젠더를 또다시 내세운 반면, 강봉균 위원장은 '한국판 양적 완화' 같은 새 메뉴로 논쟁의 중심에 섰다. 물론 한국판 양적 완화 등은 정부 경제팀과 사전에 협의되지 않은 사안들이라 향후 제대로 추진될지 속단하기는 어렵다.

한국판 양적 완화 주장, 시장을 흔들다

강봉균 위원장은 지난 29일 선대위 출범 이후 첫 회의에서 '한국형 양적 완화(중앙은행이 시중의 채권을 매입하는 형태로 돈을 시중에 푸는 것)' 정책을 내놓으면서 단숨에 여야 정책 공방의 문을 열어젖혔다. 기준금리를 내려도 경기 부양 효과가 크지 않은 상황이니 돈이 필요한 곳에 직접 투입될 수 있도록 한은이 돈을 풀어야 한다는 논리다. ▲돈을 풀어서 과감한 채무 조정 등 기업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추진해 우리 경제의 부실을 도려내고, ▲그에 따라 새살이 돋듯이 일자리가 늘어나고, ▲주택담보대출 상환 기간을 20년 정도로 길게 늘려줘서 가계부채 부담을 덜어주는 일석삼조(一石三鳥)의 정책이라는 주장이다.

강 위원장의 발언은 시장을 움직였다. 채권 금리가 하락(채권값 상승)하는 등 출렁거렸다. 29일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날보다 0.03%포인트 하락한 연 1.449%를 기록했고, 5년물·10년물 국고채 금리도 떨어졌다. 30일에도 5년물과 10년물 금리는 하락세를 이어갔고 3년물은 보합(0.001%포인트 상승)으로 마감했다. 강 위원장의 발언 직전까지 금리가 4일 연속 내렸고 분기 말이라 채권을 팔아 이익을 보려는 수요가 컸는데도 예상과 달리 금리가 하락한 것은 양적 완화를 하자는 '강봉균 효과'로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논란을 일으켜 눈길을 잡아끌다

강 위원장의 한국판 양적 완화 정책은 구체적인 수단으로 한국은행이 산업은행채나 주택담보대출증권(MBS)을 사들여 돈을 풀도록 하자는 것인데, 두 채권이 모두 현행법상 한은이 인수할 수 있는 채권이 아니어서 관련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점, 또 정부가 산업은행채와 MBS를 한은이 사들일 수 있도록 보증해줄 경우 국가채무가 늘어난다는 문제점이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당장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등이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이슈가 됐다. 29일 유 부총리는 "강 위원장의 개인 소신 아니냐"고 선을 그었고, 30일 이주열 총재는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중앙은행 총재가 특정한 당의 정책에 대해 논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 발자국 물러섰다. 한은 관계자는 "기준금리가 연 1.5%라 추가 인하 여지가 있고, 현재는 양적 완화를 동원해야 할 만큼 비상시국도 아니다"고 반박한다. 산업은행 측은 "기업 구조조정에 한은이 대량의 자금을 지원토록 하는 건 오히려 '좀비 기업'을 연명시키는 꼴"이라고 반발했다.

강봉균 위원장은 이런 반응에 대해 "안 된다, 못 한다는 생각부터 해서는 아무 일도 못 한다"며 "돈을 풀면 인플레이션이 온다고 걱정하는 소리도 나오는데, 지금은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지 인플레이션은 걱정거리가 아니다"고 했다.

강, "폭탄급 정책 아이디어, 더 있다"

강 위원장은 선대위 정책 라인의 지원을 받고 있다. 강석훈 의원과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공동 경제정책본부장으로 돕고 있다. 김종석 여의도연구소장 등도 지원군이다. 강 위원장은 “기본적인 통계와 자료는 조원동 전 수석이 뒷받침하고 있다”고 했다. 음주 운전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조 전 수석은 강 위원장과 각별한 관계다. 지난 1999년 재정경제부 장관이 되자마자 당시 서기관이었던 조 전 수석을 국장급으로 발탁했었다.

강 위원장의 ‘공격’에 비하면, 오히려 경제민주화라는 대형 간판을 앞세운 더불어민주당의 정책이 뒷전에 밀리는 지경이다.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까지 중산층 비중 70% 이상, 청년 일자리 70만개 창출, 소득 하위 70% 노령층 매달 30만원 지급 등 3가지 70을 달성하겠다며 ‘777(스리세븐)플랜’을 내놓았지만, 제대로 홍보가 되지 않는 모습이다. 김종인 대표 뒤에 서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경제 브레인도 김진표 전 부총리, 국세청장과 건설교통부 장관을 지낸 이용섭 의원 등으로 쟁쟁하다. 하지만 경제정책 구상에만 전념하는 강 위원장과 달리,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대표는 야권 후보 통합 등 정치적인 숙제를 푸는 데 힘을 더 써야 하는 처지라 정책 공방의 전면에 나서지는 못하고 있다.

이참에 정책 경쟁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게 강 위원장의 계산이다. 강 위원장은 “내놓을 폭탄은 또 있다. 양적 완화 정책에 이어, 소득분배 개선을 위한 정책 아이디어도 곧 내겠다”며 “나는 정부 측과도 필요한 만큼, 얘기를 할 사람하고는 얘기한다”고 말했다. 정부와 새누리당에서는 “강 위원장이 김종인 카드에 대항하는 총선용 핀치히터(대타)로 기용됐는데 예상했던 것보다는 활약이 크다”면서 “총선 후에 상당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