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대규모 물량 공세에 나섰다. 중국의 국영 반도체기업 XMC는 28일 미국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사이프레스와 공동으로 240억달러(약 27조9744억원)를 투자해 후베이성 우한(武漢)에 메모리칩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중국 칭화대 산하 기업인 칭화유니그룹 역시 반도체 생산공장 건립에 300억달러(약 34조968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두 기업은 모두 스마트폰·PC 등에 탑재되는 메모리 반도체인 D램과 낸드플래시 생산에 주력한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이 강점을 가진 분야다. 한국 기업을 경쟁 상대로 정조준한 것이다.

이 업체들의 개별 투자 규모는 이미 세계 1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를 넘어섰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경기도 평택의 반도체 공장 설립을 위해 당시로써는 사상 최대인 15조6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지만, 중국 두 회사는 이를 가볍게 넘어섰다.

중국 정부도 본격적으로 반도체 산업 밀어주기 나서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14년 6월 '국가집적회로(반도체) 발전 추진 요강'을 발표하면서 총 1200억 위안(약 21조4400억원) 규모의 정부 펀드를 마련했고, 베이징·상하이 등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수조원 규모의 펀드를 마련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조성한 자금이 해외 반도체 기업 인수·합병이나 대규모 시설 투자에 들어간다"면서 "중국 정부가 노골적으로 자국 반도체 기업을 밀어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중국 내수 시장을 공략한 뒤 세계로"

중국은 막강한 내수 시장을 먼저 장악해 체력을 키운 뒤 해외 시장에서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과 경쟁하겠다는 전략이다. 애플의 아이폰을 위탁생산하는 폭스콘, 하이얼·화웨이 등 최근 수년 새 글로벌 기업으로 급성장한 중국 토종 기업을 고객사로 확보하면 시장 저변을 금방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세계 최대의 반도체 시장이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인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중국 내수 규모는 지난해 세계 반도체 시장의 36%인 1035억달러(약 120조7120억원)에 이른다. 북미·유럽·일본의 반도체 시장을 모두 합한 것(1137억달러)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중국이 세계 최대의 전자 제품 생산기지로 부상하면서 반도체 사용량도 동시에 커진 것이다.

한 반도체 전문가는 "중국 반도체의 기술력이 삼성전자·하이닉스에 비해 2~3년가량 뒤처져 있지만 저가형 가전이나 스마트폰에 내장되는 반도체는 충분히 생산할 능력이 된다"면서 "중국이 저가 반도체 시장부터 공략해 시장을 잠식해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도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세부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중국 정부가 지난해 3월에 발표한 '중국 제조 2025'이다. 반도체를 중국의 미래 주력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중국 내 전자 제품 생산시설에서 만드는 완제품의 부품 국산화율(率)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에서 전자 제품 생산공장을 돌리려면 중국산 반도체를 쓰라는 것이다.

'제조 2025' 설계자인 중국 칭화대 류바이청(柳百成) 교수는 "단순한 반도체 생산이 아닌, 반도체 설계·개발·생산·패키징 등 반도체 전(全) 공정에서 독자적인 기술력을 확보한다는 목표"라고 말했다.

합작과 외부 인재 영입으로 기술 격차 줄인다

중국은 해외 기업과의 '합작'과 외부 '인재 수혈'을 통해 한국 기업과의 기술 격차를 줄인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최근 중국 IT 기업들은 정부 후원 아래 다양한 합작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合肥)시 정부는 일본 엘피다의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사카모토 유키오(坂本幸雄)가 세운 시노킹테크놀로지와 손잡았다.

또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인 인텔과 '기술 유출을 우려해 미국 밖에서는 최신 반도체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중국 다롄(大連)에 낸드플래시 공장을 설립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1위 업체인 미국 퀄컴은 중국의 SMIC·화웨이와 합작사를 세웠다. 인재 유치를 위해서도 화끈한 스카우트 비용을 뿌리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은 한국·대만의 반도체 기술자 영입을 위해 '1년 연봉의 5배를 3년간 보장한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반도체 업체 고위 관계자는 "한국·대만의 반도체 공장 인근에는 중국에서 나온 헤드헌터들이 상주할 정도"라고 말했다. 서울대 이종호 교수(전기정보공학부)는 "중국이 글로벌 업체들의 기술력까지 확보한다면 한국에 큰 위협이 된다"며 "한국 기업들이 계속해 기술 격차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저가 시장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잠식당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