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직장인 남성 길모(48)씨는 한 달에 2~3회 피부 관리를 받고, 두 달에 한 번은 미용실에서 펌과 염색을 한다. 모자나 머플러, 팔찌 등의 패션 소품도 자주 구입한다. 2~3년 전부터는 모바일 쇼핑으로 화장품과 옷, 책을 비롯해 과일이나 야채 등의 식재료를 주문하고 있다. 길씨가 모바일 쇼핑으로 물품을 주문하는 횟수는 한 달 평균 3~4회 정도인 데 반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는 한 달에 한 번 갈까 말까다.

길씨는 온라인 쇼핑(6%)과 액세서리 구입(4%)에만 월 소득의 10%가량을 쓴다. 피부·미용에 들어가는 돈도 월 소득의 10%나 된다. 길씨는 '싱글족'이 아닌 군대에 간 아들과 고등학생 딸을 둔 평범한 가장이다. 길씨는 "운동도 헬스·탁구 등 땀이 많이 나는 종목 위주로 한다"며 "이제 곧 50대가 되지만 몸과 마음만은 20대처럼 살고 싶다"고 말했다.

◇젊은 소비 주도하는 4050 '꽃중년'들

한국 사회에서 40·50대는 그동안 '직장과 가정에서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자신을 가꾸는 데는 관심 없는 세대'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최근 연령·업종별 카드 결제액 추이를 살펴본 결과 40·50대가 '젊은 소비'를 주도하는 새로운 소비 계층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30대 못지않게 피부와 미용 등에 관심이 많고, 영화·뮤지컬 등의 공연 관람을 즐기며, 스마트폰으로 수시로 모바일 쇼핑을 하는 '꽃중년'이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23일 BC카드 빅데이터센터에 따르면 지난 4년간(2012~2015년) 40·50대는 피부·미용, 온라인 쇼핑, 영화·공연·전시 등의 문화생활, 패션 소품 등 이른바 '젊은 소비'를 상징하는 여러 업종에서 20·30대보다 훨씬 높은 카드 사용액 증가율을 보였다.

피부·미용의 경우 2012~2015년 사이 20대와 30대는 카드 사용 금액이 각각 22.8%, 26.3% 증가한 데 반해 40대와 50대는 그보다 1.5배 이상 많은 35.3%, 41.7%씩 증가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중년층 이상이 많이 가는 이발소에서의 결제 금액이 40대(-22.9%)와 50대(-7%) 모두 감소했다는 것이다. 40·50대는 온라인 쇼핑(모바일 포함)에서도 지난 3년 사이 각각 47.9%, 54.7%의 카드 사용액 증가율을 기록했다. 증가율이 20%대에 머문 20·30대보다 2배 넘게 높다. BC카드 장석호 빅데이터센터장은 "50대 이상이 스마트폰 사용에 친숙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최근 추세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세대 간 자산 격차 벌어진 결과이기도

40·50대는 패션 소품 구매도 3년 전보다 20%가량 많이 한 것으로 조사됐는데, 같은 기간 30대가 1.5%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증가율이 10배 이상 높다. 영화나 뮤지컬·연극 등의 공연 관람 시 카드 이용액은 40대가 지난 3년간 36.8%, 50대가 73% 증가해 20대(30.4%)와 30대(14.5%)를 압도했다.

'젊은 소비'를 주도하는 꽃중년의 출현에 대해 다수의 전문가는 "평균 수명이 증가하고, 건강한 노후를 보내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중년층은 외모와 패션 나이에서만큼은 노년층과 확실한 선 긋기를 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요즘은 60대 이상 노년층도 중장년층 못지않게 건강하기 때문에 4050세대는 다른 부분에서의 차별화를 통해 '젊음'을 입증하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꽃중년'의 출현을 2030세대와 4050세대 간 자산 격차가 벌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세종대 김대종 교수(경영학)는 "20대는 취업이 힘들고, 30대는 치솟는 집값과 저금리 등으로 자산 증식에 어려움을 겪는 것에 반해 4050세대는 그나마 소비 여력이 남아 있기 때문에 최근에는 4050세대가 자신을 가꾸는 데 있어서 조금 더 적극적인 소비 행태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