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가 성과 연봉제 도입을 저녁 회식자리에서 설득하겠다며 직원들에게 회식 참여를 사실상 강제해 논란이 일고 있다. "회식 참여는 자율적"이라고 하면서도 회식 불참자에게는 장문의 사유서 제출을 요구하고 일부 간부들이 부서별로 출석 체크까지 하는 바람에 직원들의 반발이 커졌다.
예보가 저녁 회식자리에서까지 직원들에게 성과 연봉제 도입 취지를 설명하겠다고 한 것은 지난해 5월 취임한 곽범국 사장(사진)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곽 사장은 이달 초 간부 회의에서 "(성과주의 도입 경쟁에서) 2등은 의미가 없다. 무조건 1등을 해야 한다"며 다음 달까지 예보의 임금·성과체계 개편을 마무리할 것을 실무 부서에 지시했다.
아직 금융 공공기관 중 기획재정부 지침에 따라 임금·성과체계를 개편한 곳이 없는 데다 4월까지 새 성과주의 시스템을 마련하면 조직 차원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직원들은 곽 사장 등 경영진이 노조와의 협의를 우회적으로 피하기 위해 '꼼수'를 쓰고 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노조와의 협상이 난항을 겪을 것이 우려되자 직원들을 회식자리로 동원해 '성과주의' 도입의 필요성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 직원들 "성과주의 도입하려 강제 회식" vs 경영진 "회식 참여는 자율 결정"
예보는 지난 주부터 이달 23일까지 각 부서별로 성과 연봉제 도입 취지를 설명하기 위한 저녁 회식을 진행 중이다. 오는 25일에는 서울 교총회관에서 전(全)직원을 모아 '끝장 토론'도 열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 자리에서 직원들에게 '성과주의 도입'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한 뒤, 다음 달 이를 확정 짓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예보는 1~3급의 중간 관리자급 직원들에게 연봉제를 적용하고 있고, 나머지 4~5급 직원들은 일부 성과급을 더한 호봉제를 적용하고 있다.
호봉제는 근속 연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적으로 올라가는 임금 체계를 말한다. 예보 임금 성과 체계 개편의 핵심 쟁점 사항은 4~5급 말단 직원들에게도 연봉제를 적용하고, 성과에 따라 기본급 인상률 격차도 벌리는 것이다.
그러나 직원들은 연봉이나 성과체계 등 직원들의 복리후생과 직결되는 중요한 사안을 회식자리에서 논의하려는 경영진의 태도와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내부 게시판에 경영진을 비판하는 글이 이어지는 등 직원들의 반발이 잇따르자 노조도 경영진에게 '강제 회식'을 중단하라고 요청했다.
예금보험공사 직원은 "무임 승차자를 퇴출시키겠다는 성과주의의 확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을 하는 측면이 있다"며 "그러나 간부들이 금감원, 한국은행 등 다른 공공기관도 성과연봉제 도입을 추진 중이니 서둘러야 한다는 식으로 다그치기만 하다 보니 전혀 소통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논란이 커지자 예보는 "회식은 자율적으로 진행된다"며 해명에 나섰다. 회식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해서 공식적인 '불이익'은 없었다는 것이다.
정욱호 예보 부사장 등 일부 경영진은 "저녁 회식 자리가 (외부에서) 논란이 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공문을 일부 부서에 발송하기도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2009년 공공기관 임금 체계 개편 당시 예보가 이미 임금·성과 체계 개편을 많이 해둔 터라 올해 공공기관 중에서는 예보가 가장 먼저 기획재정부의 새 성과주의 지침을 따르기 쉬운 측면이 있다"며 "그러나 아무리 취지가 좋더라도 절차가 엉망이면 후유증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