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혁신보다는 실리를 택했다."

21일(현지 시각) 애플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있는 본사에서 4인치 크기의 중가(中價) 스마트폰인 '아이폰SE'와 9.7인치 크기의 태블릿PC '아이패드 프로' 신모델을 선보였다. 이번 신제품의 가장 큰 특징은 애플의 전매특허인 혁신적인 기능보다 저렴한 가격을 내세웠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애플은 매번 신제품 출시 때마다 지문인식·간편결제·3D(입체) 터치 등 새로운 기술을 선보였지만, 이번 아이폰SE는 눈길을 사로잡는 신기술이 별로 없다.

업계에서는 달라진 애플의 행보가 정점(頂點)을 찍은 애플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본다. 과거 애플은 매년 딱 한 차례, 9월에만 신제품 출시 행사를 열었다. 하지만 올해는 이례적으로 아이폰6s를 선보인 지 6개월 만에 새로운 제품을 공개했다. IT(정보기술) 업계 관계자는 "애플의 성장세가 한풀 꺾인데다 아이폰6s가 예상보다 판매 실적이 좋지 않자 중저가 시장으로의 진출로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의 첫 중저가 스마트폰, 4인치 화면으로 복귀

이번에 출시한 아이폰SE는 2년 6개월 만에 출시된 4인치 스마트폰이다.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주머니 속에 쏙 들어가는 작은 스마트폰을 내달라는 고객들의 요구를 반영한 제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기능은 아이폰6s에 뒤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팀 쿡 CEO는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 사후에 대(大)화면 스마트폰을 선보였다. 2014년 9월 아이폰6를 출시하면서 화면 크기를 4.7인치와 5.5인치로 키웠다. 그러다 이번에 다시 '스마트폰은 한 손으로 모든 조작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잡스의 '4인치 스마트폰'으로 복귀한 것이다.

또 다른 특징은 가격이 400달러 이하인 애플 최초의 중저가 제품이라는 것이다. 아이폰SE의 출고가(16GB 제품 기준)는 399달러(약 46만5000원)로 아이폰6s보다 250달러(약 28만8000원)나 저렴하다. 경쟁업체인 삼성전자의 중저가 제품 갤럭시A7은 물론, 중국 샤오미의 Mi5보다도 싼 제품이다.

이처럼 애플이 작고 저렴한 아이폰을 선보인 이유에 대해 업계에서는 매출 하락을 막기 위한 애플의 승부수라고 본다. 애플은 1분기 매출은 작년 1분기에 비해 10% 이상 감소한 500억∼530억달러(약 57조8000억∼61조3000억원) 수준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매출 감소를 최소화하는 대책이 바로 중저가형 제품이라는 해석이다. 이에 따라 태블릿PC 신제품인 아이패드 프로는 전작보다 200달러, 웨어러블(착용형) 기기인 애플워치의 가격은 50달러가 내려갔다.

한국 업체들엔 상당한 위협 우려

IT업계 전문가들은 애플의 신제품에 대해 "혁신이 부족하다"는 비판과 함께 매출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천은 "아이폰SE는 새롭지도 않은 데다, 주력 제품인 아이폰6의 시장을 잠식할 것"이라고 혹평했고, 미국 AP통신 역시 "애플의 신제품에 대해 사람들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반면 미국 시장조사업체인 S&P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는 "아이폰SE가 올해 아이폰 전체 판매 규모의 5% 안팎인 1000만∼1500만대 정도 판매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애플 최초의 중저가 아이폰이 삼성전자·LG전자 등 국내 업체들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시장조사업체인 CCS인사이트의 제프 블레이버(Blaber) 애널리스트는 "이번 발표의 핵심은 가격"이라며 "앞으로 모든 제품에 가격 인하 압박이 거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강대 정옥현 교수(전자공학)는 "애플이라는 브랜드 가치와 소비자들의 선호도를 미뤄봤을 때 아이폰SE가 중저가폰 시장을 상당히 잠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