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인공지능인 '알파고(AlphaGo)'가 인간인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결에서 승리한 것은 인류가 새로운 시대로 들어섰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알파고는 인간만이 갖고 있다고 여겼던 직감까지 흉내 낸 창의적인 바둑을 선보이며, 바둑계는 물론 인공지능 전문가들까지 충격에 빠뜨렸다. '인공지능 쇼크'가 한국을 강타한 것이다. 수퍼컴퓨터 업체 클루닉스의 권대석 대표는 "가장 어려운 게임이라는 바둑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긴 것은, 인공지능이 머리를 쓰는 모든 분야에서 인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래 사회의 경쟁력은 누가 인공지능 기술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입을 모은다.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인공지능 연구에 우리 기업과 학계가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공감대도 형성되고 있다.

이세돌 사인 담아… 구글에 알파고와 대결한 바둑판 선물 - 치열한 싸움이었지만, 대결이 끝난 뒤 승자와 패자가 모두 미소를 지었다. 15일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이 끝나고 이 9단(오른쪽)이 사인을 한 바둑판을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에게 선물하는 모습. 딥마인드 측은 대국 현장을 촬영한 사진 액자를 이 9단에게 선물로 증정했다.

김창경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교수는 "인공지능 연구와 투자는 현재 한국이 가진 인공지능 기술력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면서 "인공지능처럼 발전 방향이 명확하게 결정되지 않은 분야는 남들이 간 길을 따라 하지 말고, 전혀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석원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실장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다양한 사고를 가진 소프트웨어 인력을 키우는 전략이 시급하게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파고를 만든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는 인공지능 산업이 큰 인기를 끌지 못하던 2010년 인공지능 연구를 시작했다. 김석원 실장은 "연구와 창업에도 유행을 중시하는 현재의 한국에서는 딥마인드 같은 기업의 탄생을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기업 역시 당장 돈이 되지 않는다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자체 연구를 진행하면서 외부의 좋은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대국의 결과로 인공지능이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는 위기를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 전문가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인류를 뛰어넘는 인공지능은 먼 미래의 일이라고 잘라 말한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도 15일 대국이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인공지능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라고 선을 그었다. 오준호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는 "아직 인공지능은 인간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지능'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설계한 특정 기능을 잘 수행하는 것"이라며 "지금은 인공지능을 두려워할 때가 아니라, 어떻게 인공지능을 잘 활용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15일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이 끝난 뒤 알파고 팀이 미소를 지은 채 기념 촬영을 했다. 오른쪽에서 넷째 여성은 중국의 루이나이웨이 9단으로 기념 촬영에 함께했다.

하지만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과제도 있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을 대신하게 되면 일자리 문제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 감동근 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반복적이거나 기준이 정해진 일에서 사람은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다"면서 "사회 구조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인 만큼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고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생활 속으로 깊이 들어오면 새로운 윤리 문제도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인공지능은 정해진 규칙대로 움직이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함께 살아가는 공존을 위해서는 인공지능을 어떻게 만들고 이용할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허사비스 CEO는 "딥마인드가 구글에 인수되면서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이 '인공지능 윤리위원회를 설치해달라'는 것이었다"면서 "윤리위원회에서 진행한 논의를 학계나 다른 인공지능 업체와 공유하면서 인공지능을 바람직한 방식으로 개발하고, 올바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경 교수는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은 쓰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엄청난 무기가 될 수도 있다"면서 "이미 인공지능이 광범위하게 퍼진 후에 고민하면 늦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