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일본·대만이 3국 동맹을 맺고, 한국이 지배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 도전에 나섰다. 15일 중국 소후(搜狐)망, 일본 닛케이비즈니스 등에 따르면, 일본의 반도체 설계업체 시노킹테크놀로지(이하 시노킹)는 최근 중국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合肥)시 정부와 공동으로 70억 달러(약 8조3300억원)를 투자해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설립하는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노킹은 일본 최대 메모리 반도체 업체였던 엘피다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사카모토 유키오(坂本幸雄)가 세운 회사. 본사는 일본에 두고 있지만, 주력 엔지니어들은 대부분 대만 출신이다.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변방으로 밀려났던 중·일·대만이 힘을 합쳐 '반도체 코리아'에 도전하는 셈이다.

메모리 반도체란 PC·스마트폰 등에서 데이터를 저장하는 용도로 쓰이는 반도체로 D램과 낸드플래시가 대표 제품이다.

이해관계 맞아떨어진 3국 '도전장'

이번 공장 건설에는 중국 허페이시 정부에서 운영하는 반도체 펀드에서 대부분의 자금을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시노킹은 현재 20∼30여명의 대만 출신 반도체 엔지니어를 확보했으며, 향후 인력 규모를 1000명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중국 공장에서 반도체를 양산하는 시점은 이르면 2017년 하반기, 늦어도 2018년으로 목표를 잡고 있다.

중·일·대만이 함께 손을 맞잡은 이유는 각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일본은 2000년대 중·후반까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과 죽기살기식의 치열한 경쟁(일명 치킨게임)을 펼치다 밀려났다. 시노킹의 사카모토 CEO가 바로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패한 '장수(將帥)'다. 그는 2002년부터 2012년까지 엘피다를 이끌었으나 부진한 실적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미국 마이크론에 회사를 넘긴 인물이다. 이후 호시탐탐 재기를 노린 끝에 작년 6월 시노킹을 설립하고 대만, 중국을 파트너로 끌어들인 것이다.

중국은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다시 한번 메모리 반도체 시장 진출을 노린다. 작년 중국 국영 기업인 칭화유니그룹이 미국의 낸드플래시 업체 샌디스크를 우회 인수하려다 실패했다. 칭화유니는 작년 11월에는 SK하이닉스에 지분 투자를 제의했다가 또 거절당했다. 그런데도 이번에 재(再)도전을 하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중국 정부가 공장 생산 비용을 직접 투자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메모리 반도체가 사물인터넷, 가상현실 등 첨단 산업에 꼭 필요한 핵심 부품이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대만 엔지니어들은 반도체 설계부터 양산, 공장 운영까지 담당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일본에 비해서는 큰 역할은 아니지만 핵심 기술은 대만에서 가져오는 것이다. 대만은 전통적으로 반도체 설계 및 위탁생산(파운드리) 분야에 강하다.

시노킹 중국 공장은 완공되면 월 평균 생산량이 반도체 기판 10만장(12인치 웨이퍼 기준)에 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마이크론의 공장 중 가장 생산량이 많은 일본 히로시마 공장(월 10만9075장)에 육박하는 규모다. 순식간에 세계 3위 기업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경쟁 격화

한국 반도체 업계는 이번 중·일·대만 합작 공장이 당장 큰 타격을 주진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주력 제품군인 모바일D램이나 낸드플래시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기술 격차가 커서 당장 따라잡긴 힘들다는 판단이다. 작년 4분기 세계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점유율 46.4%, SK하이닉스는 27.9%를 차지했다. 둘을 합하면 74.3%에 달한다. 낸드플래시 역시 삼성전자가 33.6%의 점유율을 기록해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

시노킹은 사물인터넷(IoT)용 저전력 D램을 주력 제품으로 생산할 것으로 알려졌다. 양산 목표 시점이 2017∼2018년인 만큼 일반 D램이나 플래시메모리 대신 차세대 제품을 선(先)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만약 차세대 제품에서 중·일·대만 연합군이 저가(低價) 공세로 나온다면, 한국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도 있다.

서울대 이종호 교수(전기정보공학부) 는 "일본의 기술력과 중국의 자본이 손을 잡는 것은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큰 변수가 될 수 있다"며 "한국 업체들이 기술 격차를 더 벌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