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산하 SH공사가 시민 세금을 들여 직원도 모르는 아파트 브랜드를 만들고 4년 동안 묵혀온 것으로 드러났다. 도입 단계에서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SH공사는 2012년 5월 주택 브랜드 ‘해밀리지’를 도입한 이후 4년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지금까지 이 브랜드를 단 단지는 한 곳도 없다.

‘비가 온 뒤 맑게 갠 하늘’이라는 뜻을 담은 순우리말 ‘해밀’에 ‘마을 리(里)’와 ‘땅 지(地)’의 한자를 조합한 해밀리지는 ‘맑고 깨끗한 하늘이 내린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이란 의미다.

SH공사의 주택 브랜드 ‘해밀리지’.

SH공사는 분양 단지와 임대·분양 혼합(소셜믹스)단지에 이 브랜드를 적용할 계획이었다. 당시 분양 및 준공을 앞둔 내곡지구와 세곡2지구를 비롯해 마곡지구, 위례신도시 등에 지어지는 SH공사 아파트가 대상이었다. 이전까지는 SH공사가 공급하는 장기전세주택에는 ‘시프트(Shift)를, 공공임대에는 ‘SH빌(ville)’ 브랜드가 붙었지만, 공공분양이나 임대·분양 혼합단지를 위한 브랜드는 따로 없었다.

SH공사는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공공분양 38개 단지, 1만645가구를 공급했지만, 해밀리지를 달고 분양한 아파트는 단 한 곳도 없다.

해밀리지 브랜드를 달 수 없었던 이유는 주민들이 외면했기 때문이다. SH공사는 지구별로 건축물 작명위원회를 열어 브랜드를 정한다. SH공사 임직원으로 구성되는 작명위원회는 공간 특성, 지역 유례 등과 더불어 ‘입주 예정자의 요구사항’을 살펴 심의한다.

SH공사 관계자는 “아파트 명칭을 시공 건설사 브랜드로 적용하기를 바라는 민원이 많아 해밀리지보다는 주민들이 원하는 민간 건설사 브랜드로 결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 6단지. SH공사가 공급한 이 지구에는 ‘엠밸리’라는 명칭이 붙었다.

실제 서초구 내곡지구의 경우 SH공사는 ‘해밀리지’를 제안했지만, 주민들은 서초포레스타를 요구해 단지 명칭이 서초포레스타로 정해졌다. 민간 건설사의 브랜드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시공 건설사의 브랜드를 요구하는 일도 많다. 강남구 세곡2지구 강남한양수자인 등과 같은 사례다.

지금까지 해밀리지 브랜드로 분양된 단지는 없지만, SH공사는 이 브랜드가 폐기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SH공사 관계자는 “현재도 해밀리지는 SH공사의 공식 브랜드 중 하나며, 작명위원회에서 주민들이 해밀리지 브랜드를 요구할 경우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예산 낭비라는 지적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SH공사는 2010년 8월 ‘SH공사 기업이미지(CI) 및 브랜드이미지(BI) 개발용역’의 일부로 브랜드 개발 용역을 진행했는데, 당시 계약금액은 3억500만원이다. SH공사 관계자는 “당시 CI∙BI 개발용역의 주요 목적은 기업이미지 개선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 브랜드 개발 용역에 든 비용은 전체 계약금액의 10~15%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도곡스타PB센터 수석 부동산전문위원은 “SH공사가 자체 브랜드를 가질 필요는 있지만, 브랜드 선정 이후 어떻게 체계적으로 관리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라며 “브랜드를 계속 홍보하고 하자관리에 노력하는 등 사후 관리에도 철저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시민 세금을 써서 만든 브랜드인데, 쓰이지도 않을 아파트 브랜드가 됐다는 점에서 분명히 예산 낭비 지적을 받을 만하다”고 지적했다.

SH공사 관계자는 “공공주택 브랜드를 보는 차별적 인식이 없어질 수 있도록 사회적 공감대 확보를 위한 노력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