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이 적극적으로 IPO(기업공개) 시장 문을 두드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상장을 준비하던 호텔롯데와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은 물론 올 들어 두산 밥캣, 하림(136480)지주사인 제일홀딩스, 현대오일뱅크, 넷마블 등 대어급 기업들이 상장을 검토하거나 추진 의사를 밝힌 상태다.
그러나 증권업계에서는 글로벌 경기 위축 여파로 증시 상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대기업들이 앞다퉈 상장을 준비하는 것은 이례적이란 분석이다. 일반적으로 증시 상황이 좋지 못하면 기업 가치 평가를 낮게 받아 공모 자금이 줄어 상장을 연기하거나 철회하는 경우가 많다.
◆올해 상장 규모 11조 넘어설 듯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국내 IPO 공모 규모는 1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삼성생명·대한생명 등의 상장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한 지난 2010년(10조908억원)을 넘어서는 규모다.
여기에 최근 상장 계획을 밝힌 대기업까지 포함되면 올해 연간 공모 금액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증시 상황이 좋지 않음에도 대기업들이 잇따라 상장을 검토하는 이유는 기업마다 나름의 속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 상장을 준비하는 대어급 기업들은 자금난에 몰리면서 상장을 계획하거나,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때문에 증시 상황과 무관하게 상장하는 경우가 많다.
◆지배구조 문제 불거진 곳 많아
호텔롯데의 경우 지난해부터 시작된 '형제의 난' 이후 상장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호텔롯데 상장 시가총액으로 약 14조에서 18조원 수준으로 보고 있다.
14조원을 기준으로 해 전체 주식의 40%를 공모한다고 가정하면 공모 규모는 5조600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대내외적 악재로 공모가는 기대에 못 미칠 것이란 분석이 많다. 지난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여파로 중국인 관광객까지 감소, 호텔롯데의 지난해 1~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 증가한 3조6070억원에 그쳤고 영업이익은 2386억원으로 12% 가량 감소했다. 또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면허도 반납해 올해 매출액은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같이 악재가 산적한 상황에서 롯데가 급하게 상장을 추진하는 이유는 일본 기업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해소하고 지배구조 및 경영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호텔롯데가 신주 발행을 통해 상장하게 되면 일본 쪽 지분율이 낮아지고, 그룹 내 복잡한 순환출자고리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
하림 지주사인 제일홀딩스 역시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상장을 진행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증권업계에서는 전부터 하림그룹이 제일홀딩스 상장 후 중간 지주회사인 하림홀딩스와 합병해 이중으로 돼 있는 지배구조를 개선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증시 상황 상관없다" 자금조달 급한 기업들
두산 밥캣이 상장 카드를 빼든 이유는 두산인프라코어유동성 문제 때문이다. 두산밥캣은 지난해 4조408억원의 매출과 385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두산인프라코어 총 매출(연결 기준)의 56%, 영업이익의 1407%를 각각 차지할 정도로 알짜회사다. 최근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등 두산그룹 주요 계열사 4곳의 신용등급이 하향되는 등 업황이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에서 '밥캣 상장'을 통해 그룹의 유동성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두산그룹은 상장 추진과 관련 "두산인프라코어는 우량 자회사인 두산밥캣의 기업공개를 통해 재무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대오일뱅크도 사정이 비슷하다. 현대오일뱅크 지분 91%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현대중공업이 2011년 현대오일뱅크 상장을 검토했던 당시 정유업계의 주가수익비율(PER)은 12~13배 수준에 달했다. 현재는 국제유가 불확실성·글로벌 경기 침체로 7~8배를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도 현대중공업이 현대오일뱅크 상장 카드를 만지는 이유는 재무구조 개선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현대오일뱅크 상장 과정에서 지분 30%만 매각해도 2조원에 가까운 유동성 확보가 가능하다.
◆ "타이밍 나쁘지 않다" 자신감 보이는 기업도
넷마블은 이와는 반대다. 국내 증시에서 게임주가 여전히 선방하고 있어 상장 타이밍이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넷마블은 올해 안에 국내 주식시장이나 미국 나스닥시장에 상장하겠다는 입장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넷마블의 상장 후 시가총액이 7조~10조원에 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전망치가 맞다면 국내 게임 업계 '대장주'가 엔씨소프트에서 (5조2000억원)에서 넷마블로 바뀌게 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국내증시에서 바이오주 밸류가 높고, 추가 투자를 위해서는 상장이 급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