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예뻐지니까 주민들이 알아서 집수리를 시작하더라고요. 갈수록 우리 동네에 관심이 많아지는 거죠.”

지난달 찾아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송죽동의 ‘행복한 달팽이들 마을’. 낡은 단독주택과 빌라가 많은 골목 한쪽으론 전날 내린 눈이 채 다 녹지 않아 군데군데 쌓여 있었다.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천천히 골목을 걷다 보니 ‘삼보맨션 사람들’, ‘대경빌라 사람들’이란 글귀가 눈길을 잡아 끈다. 빗물을 빼주는 달팽이 모양의 우수관(雨水管)은 마치 동네 이름을 말해주는 듯했다.

경기도 수원시 송죽동 송죽9통 ‘행복한 달팽이들 마을’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골목 정비에 참여했다.

수원 송죽동 ‘행복한 달팽이들 마을’은 저층 단독·연립주택이 밀집한 낙후된 주거지다. 1.68㎢ 면적에 7778가구(인구 1만9399명)가 산다. 흔하디 흔한 아파트는 이 중 1618가구(20.8%)뿐. 6160가구인 단독주택이 대부분(79.2%)이다. 이 동네 건물 대부분은 지어진 지 25년~30년이 넘었다. 대개 50~60대 노인들이 혼자 거주한다.

주민들은 사회적 약자인 달팽이들이 ‘약하지만 남들보다 천천히, 느리게, 하지만 행복하게 산다’는 의미로 마을 이름을 이렇게 붙였다.

여기서 30여년 넘게 거주한 김은자 행복한 달팽이들 마을 대표는 “저 빌라는 할머니 혼자 사시는 곳인데, 낡은 벽을 고치고 배관 공사도 싹 해 드렸다”며 “담장을 허물어 주차장도 만들고 벽화 작업을 해 ‘아름다운 길’을 만들고 나니 주민 표정도 확 바뀌었다”고 말했다.

행복한 달팽이들 마을 주민들은 낡은 주택과 빌라의 벽을 새로 쌓고 그곳에 벽화를 그려 넣었다. 달팽이 모양의 빗물관도 만들었다.

김 대표가 마을 정비 사업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수원 마을르네상스’ 덕분이다. 수원 마을르네상스는 ‘마을이 다시 태어나다’라는 의미의 르네상스를 붙여 주민들이 스스로 문화와 예술, 건축, 환경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삶의 공간을 만든다는 취지의 수원시 자체 도시재생 프로젝트다.

수원시 마을 만들기 조례에 근거해 지난 2010년 ‘마을 만들기 추진단’에서 출발한 마을르네상스센터는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수원 마을르네상스센터는 상·하반기로 나눠 연 2회 마을르네상스 사업계획서를 공모한다. 수원시 주민 15명 이상이 모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마을 신문 만들기부터 축제·체험·전시 활동, 교육, 돌봄 사업 등 공동체 사업에 도움이 되는 어떠한 아이디어도 가능하다. 사업이 채택되면 1년에 50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이 같은 공동체 사업 추진 경험이 있거나 관련 교육을 추가로 받으면 시설·공간 사업에도 공모할 수 있다. 담장을 허물거나 소공원,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고 텃밭을 가꾸는 등 시설·공간사업 아이디어를 내 채택되면 1년에 2500만원까지(공동체 사업과 합해 최대 3000만원까지) 지원을 받는다.

박상철 마을르네상스센터 사무국장은 자발적인 주민 참여 덕분에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600건이 넘는 마을재생 공모사업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마을르네상스센터의 박상철 사무국장은 “한 해 약 190건의 계획서를 접수하면 140건 정도가 통과돼 전액 지원을 받는다”며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중도 탈락이나 지원금 회수 등의 문제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마을르네상스센터에서는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604건의 공모사업을 추진했다. 수원시 장안구와 권선구, 팔달구, 영통구 등 전 지역에 걸쳐 동네 특성에 맞는 마을 사업이 해마다 새롭게 진행 중이다. 송죽동 외에도 장안구 조원동의 대추동이 문화마을, 권선구 금곡동의 칠보 마을 등이 마을 만들기 우수 사례로 꼽힌다. 두 곳 모두 동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어 마을 만들기 사업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대추동이 문화마을 주민들은 2013년 9월 전통시장인 조원시장 안에 ‘마돈나(마을을 가꾸는 돈가스 나들터) 생돈가스’ 가게를 열었다. 20여개의 좌석을 갖춘 조그만 가게를 열어 이곳에서 나온 수익금으로 주민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복지와 지역 환경 개선사업에도 나서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의 전통시장 안에 문을 연 마돈나 생돈가스 가게.

정순옥 마돈나 사회적 협동조합 부이사장은 “주민 8명이 보증금 6000만원을 모아 가게를 열었다”며 “대부분 40~60대 주부들이라 쉽게 요리할 수 있고 일반인들이 흔히 먹을 수 있는 대중적인 메뉴를 고르다가 돈가스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마돈나 돈가스는 적지만 수익을 낸다는 점에서 지속가능한 협동조합형 마을 만들기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박상철 사무국장은 “센터의 지원은 통상 최대 5년까지라, 그 기간이 지나면 지원이 끊긴다”며 “최종적으로 주민 스스로 사업비를 마련할 수 있도록 자립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금곡동의 칠보 마을 주민들도 ‘칠보꽃밥상’이란 협동조합을 만들어 마을 사업을 해오고 있다. 주변에 논과 밭이 많은 동네 특성을 반영해 아파트 상가에 칠보꽃밥상이란 유기농 반찬 가게를 열었다. 생활협동조합에서 직접 식재료를 조달해 저렴한 가격에 안전한 먹을거리를 판다. 동네 주민들과 직접 모내기, 벼 베기, 텃밭 체험 행사 등 다양한 생태 체험 활동도 하고 있다.

칠보 마을은 수원에서 유일하게 ‘대안학교’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2005년 인근 학부모 20명(10가구)이 출자해 칠보산 자유학교를 세웠다. 현재 초등학교 1~6학년까지 전체 인원이 70여명에 달한다. 지난해에는 20여명 규모로 중·고등학교도 개교했다.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금곡동 LG빌리지 상가 1층에 유기농 반찬을 파는 칠보꽃밥상 가게가 들어섰다.

이계순 칠보꽃밥상 이사장은 “2000년 초반부터 인근 주민들이 공동육아를 시작하면서 어린이집과 방과 후 학교를 만들고 대안학교까지 설립했다”며 “‘교육문화 공동체’란 개념으로 다양한 마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원시의 마을르네상스는 정부가 아닌 민간 주도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마을 만들기 공모 사업에 참여하는 주민들이 계속 늘어나는 것도 고무적이다.

마을르네상스센터에 따르면 공모 사업 참여 모임은 2011년 54개에서 지난해 144개로 5년간 3배 가까이 급증했다. 같은 기간 모임 구성원수 역시 1345명에서 2708명으로 2배가 됐다. 현재 전체 수원시 예산(2조367억원)에서 공모사업 지원액(9억7874억원)은 약 0.05%를 차지한다.

이지훈 마을르네상스센터장은 “‘마을 만들기’란 결국 주민이 주인으로 사는 것을 뜻한다”며 “일회성 사업이 아닌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추구하는 ‘의식 개혁 운동’과도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