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계 은행들의 순이익이 아시아 경기 둔화와 유가 하락 충격으로 곤두박질 치고 있다.
유럽 최대은행인 HSBC가 지난 4분기에 예상을 깨고 적자를 기록했다고 발표한 데 이어 스탠다드차타드(SC)그룹도 26년 만에 연간 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주요 은행들 모두 줄줄이 저조한 성적표를 공개했다.
금융 강국으로 군림해온 영국의 은행들은 지난해 처음으로 '해외투자·대출 1위' 자리를 일본에 뺏기는 등 구조조정에 따른 후유증이 가시화되고 있다.
◆ HSBC 4분기 어닝쇼크…SC그룹은 26년 만에 첫 적자
영국의 대표 은행인 HSBC는 지난해 4분기에 8억5800만달러(약 1조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고 지난 23일(현지시각) 발표했다. 19억5000만달러의 순익을 기록할 것이라던 시장 전망치를 크게 밑도는 성적이다. 유가 급락으로 에너지 기업들에 대한 부실 대출 규모가 늘어난 결과다. 지난해 HSBC의 부실 대출은 37억달러에 달해 30억달러에 머무를 것이라는 전망치를 크게 웃돌았다.
스탠다드차타드(SC)그룹도 바로 다음 날인 24일 부실한 성적을 내놨다. SC그룹은 지난해 23억6000만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해 1989년 이후 26년 만에 첫 적자를 기록했다.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지역 사업의 부진이 이어진 데다 원자재 가격 급락에 따른 손실이 늘어난 영향이 컸다. 지난해 부실 대출 규모는 40억달러에 달해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었다. SC그룹은 한국 등 주요국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한 데 이어 올해는 경영진의 성과급도 동결할 계획이다.
오는 27일에는 로얄스코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바클레이즈 등도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다. 대부분 은행들이 사업 보고서에서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올해보다 높게 잡고 있지만, 미국 금리 인상과 마이너스 금리 실험 등 신흥국 경제를 짓누르는 불안 요인이 남아 있어 영국계 은행들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英 작년 해외 투자·대출 2위로 하락…3년 새 20% 감소
영국계 은행들은 과거 신흥국에서 공격적인 자산 매입과 원자재 등 위험 자산 투자로 덩치를 불리며 '금융 강국'의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영국 정부가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강력한 자본 규제에 나서면서 최근 일부 해외 사업을 접고 전 사업부 차원의 인원 감축과 자산 매각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신흥국 경제가 휘청거리고 원자재 시장이 급락하며 부실 대출이 늘어난 점도 영국계 은행들의 구조조정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영국 은행들은 수년간 해외 투자·대출에서 선두를 지켜왔지만, 최근 2~3년동안 해외에서 뿌린 돈을 거둬들이기 시작하면서 지난해에는 선두 자리를 일본에 내줬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영국 은행들의 해외 투자·융자 규모는 3조4000억달러로 집계돼 일본(3조5000억달러)에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계 은행들이 3년 새 해외 투자 규모를 30%가량 줄인 것과 달리, 초저금리로 신음하던 일본 금융권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원 개발 프로젝트 등 해외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실적 부진이 이어지면서 영국 은행들은 비용 절감에 안감힘을 쓰고 있다. HSBC는 터키·브라질 사업을 매각하고 5만명의 직원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바클레이즈와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는 최근 한국을 포함한 주요 신흥국에서 철수하기로 했으며, SC그룹은 한국에서 실시한 1000명의 특별 퇴직 포함해 총 1만5000명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인원 감축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