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박모씨는 요즘 퇴근하자마자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켠다. 유럽과 미국 시장이 열리는 시간에 원자재 거래를 하기 위해서다. 그는 작년 여름부터 종잣돈 1500만원으로 원자재 가격 하락에 베팅해 1억원 가까이 벌었다. 주로 원유 가격 하락을 예상하고 선물(先物)을 매도해 이득을 봤다. 박씨는 원유뿐 아니라 구리, 백금 등 다른 원자재에도 투자를 한다. 그는 "하룻밤에 400만~500만원을 버는 날엔 잠을 한 두 시간밖에 못 자고 출근해도 기분이 개운하다"고 말했다.

개인 전업 투자자 이모씨. 그는 최근 천당과 지옥을 함께 경험했다. 지난 18일 증시 하락을 예상하고 코스피 선물 매도 계약을 했다가 예상 외로 코스피가 1.3% 이상 오르는 바람에 하루 만에 1700만원의 손실을 봤다. 그는 여전히 4000만원대의 누적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돈을 쉽게 벌고, 쉽게 잃어 투자가 '일장춘몽'같이 느껴진다"고 했다.

새해 들어 글로벌 증시와 원자재 시장 등이 전반적으로 침체 양상을 보이자 '마이너스 베팅'에 참여하는 개인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주가가 오르기를 기대하는 일반적 투자와는 정반대로, 마이너스 베팅이란 주식, 원자재 등 자산 가격이 떨어지는 쪽에 베팅하는 기법을 말한다. 주가 등이 떨어져야 돈을 버는 '청개구리 투자'인 셈이다.

◇'공포'에 투자하는 간 큰 사람들

흔히 '공포지수'라 불리는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 변동성 지수(VIX)를 따르는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한 우리나라 투자자들의 베팅이 작년에 급증했다. 작년 12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기정 사실화되자 미국 증시가 하락하면서 VIX가 급등할 것으로 예상하고 마이너스 베팅을 한 것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9개 VIX 관련 해외 ETF 국내 투자 체결 규모는 작년 6월 550만달러에서 작년 12월 1300만달러(약 160억원)로 136% 급증했다. 이 기간 중 중국 증시 폭락을 시발로 글로벌 증시가 크게 흔들렸고, VIX는 작년 6월 말 18.2에서 금리 인상 전인 12월 중순 24.4까지 34%나 올랐다. 만약 이 기간 중 VIX 등락 폭의 2배로 손익이 결정 나도록 설계된 ETF를 매입했다면 68%의 수익을 낼 수 있었다는 얘기다.

◇올해 들어선 아시아 증시 역방향 베팅 수익률 높아

미국 금리 인상 후 외국 자금이 신흥국에서 빠져나가면서 중국 등 아시아 증시가 크게 흔들리자 아시아 증시에 역방향으로 베팅하는 인버스(inverse) 펀드들이 높은 수익률을 내고 있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중국 상하이종합지수와 반대로 움직이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차이나A인버스ETF는 연초 이후 18일까지 15.3%의 수익률을 냈다. 일본 증시가 떨어질 때 수익률이 높아지는 한국투자운용의 KINDEX일본인버스ETF는 같은 기간 17.1% 올랐다. 최근 6개월 기준으로 17개 인버스펀드의 수익률은 5.2%로 국내주식형(-5.2%), 원자재(-15.6%), 해외주식형(-17.6%) 등 다른 유형 펀드 수익률을 크게 웃돌았다. 최근 1개월간 17개 펀드에 370억원의 신규 투자금이 유입됐다.

전문가들은 마이너스 베팅 역시 하나의 투자 기법으로 자산 가격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18일 현재 인버스펀드의 설정액은 6615억원으로 크지 않다. 국내에 판매 중인 전체 공모펀드(241조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3%도 안 된다. 전문가들은 해외 사례를 봤을 때 인버스펀드가 더 성장할 수 있을 걸로 내다봤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엔 기초자산 가격에 15배로 연동되는 인버스펀드가 나와 있을 만큼 활성화돼 있다"며 "우리나라도 이 펀드의 비중이 장기적으로 전체 펀드 중 5%까지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마이너스 베팅은 자산 가격 움직임이 예상과 반대로 가면 큰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한 투자 기법이라는 지적도 있다.

☞인버스(inverse) 펀드

주가지수·원유값 등 기초 자산 가격이 떨어지면 오히려 수익이 나도록 설계한 금융 상품. 반대로 기초 자산 가격이 오르면 펀드는 손실이 난다.